류성민의 [성스러움과 폭력](살림, 2003)은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의 논의를 이해하기 좋게 해설해주는 책인 동시에 여러 측면에서 보완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지라르의 책에는 흥미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폭력은 인간 사회에 상존하는 위협이고 종교 제도는 이 폭력을 제어하는 사회적 장치라는 게 요지이다. 폭력과 종교는 상반된 것이라는 상식을 뒤집어 종교의 성스러움과 폭력은 아예 본질적인 관련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완전히 낯선 생각은 아니다. 우리가 “희생양”이라는 말을 일반 사회의 맥락에서 사용할 때 그런 생각이 전제에 놓여있다.) 지라르의 책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문학 평론에서 출발한 작업이라 약간은 생소한 그리스 문학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서,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 레비스트로스 등을 텍스트 삼아 이론적 논의를 이끈다. 친절한 책이기보다는 지랄맞은 책에 가깝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지라르의 [희생양]은 구체적인 종교현상을 다루어 좀 나을 것이다.)
류성민의 책은 지라르의 논의가 종교 일반에 어떤 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친절히 풀어 설명해준다. 희생제의가 왜 이런 연구에서 중심적인 사례가 되고, 희생제의에 대한 주요 연구들을 소개해서 이론적인 기초를 마련해주고, 다양한 종교문화에서 희생과 폭력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간단히 개관해준다. 그런 점에서 책의 전반부는 지라르 이론에 대한 좋은 해설이라고 생각된다.
책의 후반부는 유대교(혹은 구약) 전통의 희생제의가 후대에 어떻게 윤리적인 쪽으로 발달되었는가를 소개한다. 단적으로 말해 아브라함의 희생제의로부터 예수의 자기 희생으로의 종교 개념의 발달 과정을 보여준다. 지라르가 제대로 이야기한 부분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그의 논의를 종교사의 맥락에 위치시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
[폭력과 성스러움]과 [성스러움과 폭력]이라는 제목 차이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지라르에게는 폭력이 중요한 현상이다. 그걸 사회 내에서 제어하는 방법으로 성스러움이라는 개념이 동원된 것이다. 반면에 류성민은 종교학자의 자리에 있다. 종교사에서 폭력에 대한 대응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말로 희생(犧牲)이라는 단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희생(犧牲)[히―][명사]
1.신명(神明)에게 바치는 산 짐승.
2.뜻밖의 재난 따위로 헛되이 목숨을 잃음. ¶폭력에 희생되다.
3. (남이나 어떤 일을 위하여) 제 몸이나 재물 따위 귀중한 것을 바침. ¶친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다.
1번 뜻이 어원에 가까운 것으로 종교적 맥락을 지닌다. 그러나 1번 뜻으로 말을 해서 알아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은 추상화 윤리화된 의미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맥락이라면 희생의례라고 분명히 말해주어야 할 것이다. 영어 단어의 양상도 비슷하다. “sacrifice”의 뜻은 다음과 같다.
sac-ri-fice [s kr f is]
1 (신에게) 산 제물을 바침; (신에게 바친) 산 제물, 제물
2 희생(시킴); 희생적 행위; 희생물
어원에 가까운 1번 뜻보다는 윤리화된 의미로 현대에는 주로 통용된다. 이런 언어의 변화는 바로 종교사를 반영한 것이며, 그 종교사의 해설이 이 책 후반부의 주된 내용이다.
(사족). 성스러움과 폭력의 상관성 논의는 주로 희생제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논의는 현대의 쟁점들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가? 요즘의 종교와 분쟁, 즉 종교와 연관된 집단 폭력이라는 난해한 문제에 이 이론들은 도움을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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