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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종교와 스포츠

by 방가房家 2023. 4. 18.
 
이창익, <<종교와 스포츠>> (살림, 2004)
내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처음 실감하게 해주는 것은 사람들의 몸짓이었다. 그닥 유쾌한 것은 아니다. 여유없는 황급한 몸놀림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여전히 부족한 거친 움직임들. 그런 것들이 사람들이 띄엄띄엄 살던 사회에 익숙해있던 내게 이 사회를 상기시켜준다. 몸짓 속에는 이 사회가 압축적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미세한 몸짓의 차이와 변화를 놓고서 할 말이 참 많다. 우리 몸 속에 새겨진 역사, 문화, 삶의 환경에 대해 풍성한 이야기가 가능하므로.
서점에 갔다가 아는 선배가 새로 쓴 책을 발견했다. [종교와 스포츠 –몸의 테크닉과 희생제의]라는 책이다. 아, 멋진 일이다. 책을 통한 만남이라니. 어쩌면 당사자와의 만남 자체보다도 더 반가운 일이 될 수 있을 정도다.
작은 책이지만 참 근사하다. 종교와 스포츠라는 흥미만점의 주제를 다루긴 하지만, 이 책에 가벼운 이야기는 없다. 의례로 대표되는 종교 문화의 핵심적인 속성과 몸을 훈련시키는 스포츠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연관되느냐를 다루는 깊이 있는 논의를 하고 있다. 이 책이 심각하리라는 것은 (저자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다. 진작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심각한 이야기를 매끈하게, 술술 읽히게 풀어 썼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첫 장을 매우 잘 썼다고 생각한다. 몸에 대한 개념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주입되어 공유된다는 일반적인 논의를 매혹적으로 제시하며 종교와 스포츠 이야기로 성공적으로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와 스포츠라고 하면 어떤 연결고리를 떠올릴 수 있을까? 나같으면 신자와 관중의 집단적인 흥분 정도를 떠올리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논의하는 연결고리는 “몸”이다. 스포츠야 몸이 당연히 떠오르지만, 종교에서 몸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새로운 이론적 논의에 속한다. 일단은 신화와 교리 중심인 기존의 종교 연구에서 탈피하여 의례 중심의 종교 연구를 정리하여, 몸을 준거로 종교를 서술하는 방법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중요한 이론적 논의이다. 종교와 스포츠의 유비야 몸을 중심으로 한 종교 서술이 이루어지면 부가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는 거니까.
몸과 사회의 관련성에 대한 이론이라고 하면 흔히 미셀 푸코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푸코 반세기 이전에 이 부분에 대한 통찰력있는 논의를 제시한 학자가 마르셀 모스이다. 이 책에서 뼈대로 삼고 있는 이론적 통찰은 마르셀 모스의 저작들, 특히 [몸의 테크닉]에서 오고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이 책의 특이한 점이다. 모스는 최근에 [증여론]이 번역된 것 이외에는 우리나라에 잘 소개되어 있지 않다. 모스를 비롯한 프랑스의 뒤르켐 학파 학자들, 그리고 그 유산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레비-스트로스와 멀게는 종교학자 조나단 스미스가 이 책의 주된 이론적 자원인데 이러한 인용은 우리나라 학계에서 매우 신선하다.
종교와 스포츠의 연결을 몸의 테크닉과 희생제의라는 두 차원으로 구체화하고 있는데, 나는 몸의 테크닉 논의에 더 끌린다. 희생제의 쪽 논의는 구조적 유사성 이상의 내용을 얻기 힘들고 구체적인 분석에서 활용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반면에 몸의 테크닉을 놓고 종교와 스포츠를 연결지어 논의한 부분은 앞으로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킬 여지가 많고 사례를 찾아 분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이견이 많이 있다. ^^
이건 저자와 내가 성향이 달라서이지 책의 문제는 아니다. 책의 성격상 대담한 일반화가 가끔 발견되는데, 그 중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약간 있다. 예를 들어, 근대 종교를 개신교를 통해 일반화시키는 부분은 의문이 남는다. 과연 개신교를 몸의 테크닉에서 멀어지는 종교로 규정할 수 있는지도 확신이 안 서지만, 개신교를 중심으로 삼아서 현재 종교사의 경향을 몸보다는 정신의 테크닉에 집중하는 흐름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그러나 총평은 이런 멋진 책을 써낸 선배가 부럽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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