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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상차림의 원칙

by 방가房家 2023. 6. 4.
홍동백서와 어동육서와 같은 말들은 유교 경전의 근거가 없다는 주장(성균관 의례부장)이 몇 년 전 신문에서 소개되었고 올해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법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격식을 갖추느라 고생하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뉴스이다. 모르기에 집착해왔던 법도에 무슨 근거가 있는지 따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뉴스에는 그 다음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으로, 홍동백서와 어동육서가 근거가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분명 홍동백서는 <주자가례>에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교 엘리트의 입장에서 경전적 근거가 없다고 할만하다. 하지만 제사의 법도는 경전의 공백 때문에 실천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법도는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정성스레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전승과 실천에서 추출할 수 있다. 홍동백서, 어동육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원칙이다. 다음 논문을 읽으면서 이러한 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심일종, "유교 제례의 구조와 조상관념의 의미재현: 제수와 진설의 지역적 비교를 중심으로," 인류학박사논문(서울대학교대학원, 2017).
 
이 논문은 한국 여러 지역의 수없이 다양한 상차림 속에서 유의미한 원칙, 의례의 질서가 생성되고 지속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논문에서 어동육서에 관한 부분만 발췌하였다. 논문을 읽으며 이해하게 된 주요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1. (원래는 간소한 차림이었던) 차례 상차림을 기제사 차림과 다르지 않게 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2. 홍동백서, 어동육서에 대한 언급은 조선 유학자들의 문집에서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등장한다. 경전에 비어 있지만 실제 의례현장에서 요구되는 원칙들을 유학자들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 존재했던 것이다.
3. 생선의 배와 등을 어느 방향으로 할지 논쟁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우연한 계기에서 취하게 된) 특정 행위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풍성한 의미의 층이 전수된다. 
 
제사상의 법도가 경전적 근거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낭설인 것도 아니다. 이것은 의례의 질서가 생성되는 일반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살아있는 의례 공부의 재료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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