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에 맬러리 나이의 <문화로 본 종교학>을 교재로 삼아 강의를 했다. 교재의 모든 부분을 순차적으로 따라가지는 않았지만 70% 정도 분량을 필요에 따라 재배치하여 사용했으니 이 정도면 상당히 교재를 많이 활용한 수업이다.(2장 문화와 3장 권력을 상당 부분 생략했다.) 이 교재 덕에 내 수업은 상당히 새로운 수업이 되었다. 그 새로움에 대해 간단히 기록해둔다.
기존의 종교학개론 계열의 교양과목(즉 세계종교 계열이 아닌 종교학 교양과목. 내 경우는 인간과 종교)은 종교현상학적 입장을 강조한다. <종교와 세계관> 같은 교재가 대표적이다. 기존의 종교학 주류의 입장, 엘리아데의 입장을 주로 소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신화나 상징을 이야기하면 엘리아데의 개념(시간의 주기적 소거, 중심의 상징 같은) 위주였다. 즉 상징의 보편적 의미를 설명하지, 상징의 사회적 맥락을 말하지는 못한다. 탈랄 아사드는 커녕 메리 더글러스나 빅터 터너 정도의 사회적 설명도 힘들었다.
그러나 <문화로 본 종교학>은 상당히 다르다. 이 책은 엘리아데 이후의 종교학, 사회과학적 종교학의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냥 최근 연구가 잘 소개되었다는 걸 넘어 종교학의 패러다임 변화를 온전히 반영한 교재이다. 가르칠 내용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기서는 탈식민지와 지구화의 맥락에서 권력과 젠더에 의해 규정되는 상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과거 종교학 강의의 감동 코드는 대거 삭제되었다. 이 교재에서 엘리아데를 다루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엘리아데는 몇 페이지 할애되어 설명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존 힉과 패키지로 묶여 보편적인 종교적 실재 개념에 근거한 이론가로 평가된다. 그렇게 엘리아데를 별 볼 일 없이 처리하느라 강의가 좀 애매해진 감이 있기도 하다.(다음에는 이 부분은 별도로 보강하려고 한다.) 사회과학 이론이 많이 등장해 힘에 부치는 면도 있었다. 알튀세, 부르디외, 스피박, 이리가라이 등, 내가 책을 읽어보지도 못한 학자들을 설명한다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어서 대강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내가 종교학을 강의하면서 이야기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주제들(예를 들면 젠더의 문제)을 이야기하느라 생소한 적도 많았다.
물론 교재 덕분에 도움이 된 부분이 훨씬 더 많다. 일단 “종교란 인간이 하는 것”이라는 교재의 기본 입장이자 강력한 출발점인데, 이 입장이 나와 너무 잘 맞는다. 종교 개념, 젠더, 의례, 텍스트 등의 서술이 잘 되어있어 내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나갈 바탕이 되어 주었다. 이 책이 열어주는 종교학 강의의 새로운 지평은 아마도 이전의 강의로 회귀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