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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320

어둠 속의 고양이, 짖는 개, 수레, 칼 종교학자 웬디 도니거의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이 할머니 글을 너무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 읽을 땐 좀 능글능글 눙치는 어투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이번에 보니 쉽게 썰 풀듯이 하면서도 빈틈이 없다. 나는 이 학자의 입장에 찬성하는 쪽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글을 읽었는데도, 딱히 흠 잡아낼만한 구석이 없었다. 만만치 않은 내용인데 참 쉬운 말로 쓴다. 일상적인 표현과 이야기들, 그리고 문학과 각종 신화에서 가져온 이야기들로 포스트모던 비평의 주제들까지 다 소화해내고 또 방어한다. 일상으로부터 길어올린 글쓰기와 학문하기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내가 알기로 종교학자 중 이런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종교학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꿈을 탐사하는 엘리아데 식의 로망은 사라졌다고 .. 2023. 5. 3.
유골/사리(relic) “유골/사리”(relic) Gregory Schopen, Critical Terms for Religious Studies 14장 영어 "relic"은 라틴어 "relinquere"(남기다)에서 유래한다. 유골은 ‘뒤에 남은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사리(舍利)의 산스크리트 어원은 몸이라는 의미의 "saria"(복수형 "sariani"가 사리를 의미함), 혹은 구성 요소, 근본 물질이라는 의미의 "dhatu"이다. 어원에서 동서양의 죽음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나지만, 유골/사리에 대해서 말해진 것과 사람들이 행한 것은 비슷하다. 종교개혁자들은 유골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칼뱅의 글("An Admonition Showing the Advantages Which Christendom Might Derive.. 2023. 5. 3.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거시적인 안목으로 인류의 종교사를 조망하면 우리는 비교적 선명하게 ‘종교의 역사적 변천’을 기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종교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이 따로 있지 않은 채 ‘종교적’이었던 시대, 종교라는 것이 구분될 수 있는 문화로 등장하면서 각기 개개 종교들이 자신의 절대성을 당해 문화권 안에서 규범적인 것으로 발휘하던 ‘종교’의 시대, 문화권의 단절이 소통 가능하게 열려지면서 하나의 문화권 안에 여러 종교들이 공존할 수밖에 없게 된 ‘종교들’의 시대, 그리고 삶의 모든 양태들이 스스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면서 특별히 종교라는 전승된 문화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자체를 ‘종교적’이라고 읽어야 비로소 삶의 모습이 묘사될 수 있.. 2023. 5. 3.
“여기”의 종교, “저기”의 종교, “어디에나”의 종교 Jonathan Smith, "Here, There, and Anywhere," Relating Religion. 발제문. “여기”의 종교, “저기”의 종교, “어디에나”의 종교 고대 후기의 지중해 연안 종교들의 지형을 서술하기 위한 유형론을 제시하는 글이다. “여기”(here)의 종교, “저기”(there)의 종교, “어디에나”(anywhere)의 종교라는 세 유형인데, 고대 후기 이 지역의 특징은 어디에나의 종교가 확산되면서 두드러진 유형이 되었다는 점이다. 1. 여기의 종교: 가정 종교 여기의 종교는 가정 종교(domestic religion)로, 가정과 매장지에 주로 근거를 둔다. 가족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이다. 연속성에 대한 위협으로는, 첫째, 전쟁, 질병, 재난, 귀신의 공.. 2023. 5. 3.
고린도전서, KIN Jonathan Smith, "Re: Corinthians," Relating Religion. 의 발제문 Translation 파푸아 뉴기니 앗발민 사람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전통 종교들과 긴밀히 얽혀있는 앗발민 사회의 일상생활을 버릴 수는 없는 일: “기독교 개종에도 불구하고, 여기 사람들은 통상 고유의 사회 종교적 관계들의 역사에 의해 구성된 주거지, 경계, 혈통 집단이라는 토착 지형 속에 자리잡고 사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인식의 지형 위에서 기독교를 해석하는 상황에서, 여러 선교 사례들에서 쟁점이 되는 “번역”의 문제가 대두된다. (주41번 참조) 1980년대 이 지역을 강타한 두 종교 운동들--기독교 부흥운동과 하물 숭.. 2023. 5. 3.
미국의 종교 음식 Nora L. Rubel, “Food,” S. Brent Plate (ed.), , London: Bloomsbury, 2015. 1.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먹었을 때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다. 기독교인이 성찬대(聖餐臺)에서 하는 의식 중에 하느님을 먹을 때 구원이 온다.” 많은 기독교인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있는 은혜로운 식사를 매주 재연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영성체(wafer)와 포도주를, 어떤 이[개신교인]는 원더브레드와 웰치 포도 주스를 먹을 것이다.(96) 2. 음식은 실질적으로 종교 집단 내에서 돈을 끌어모으는 역할(fundraiser)을 할 때가 많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톨릭 교구의 스파게티 파티나 네이션 오브 이슬람(Nation of Islam)의 빈파이(bea.. 2023. 5. 2.
석마를 탄 앨리스 아래는 1905년에 대한제국을 방문해 수잔 손택의 후임으로 1년간 황실 ‘서양전례관’으로 일했던 독일 여인 크뢰거가 쓴 조선견문기이다. 1909년 독일에서 출판된 이 책이 논란이 된 것은 아래 내용 때문이다. 여기서 묘사된 앨리스의 행위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엘리스의 남편 롱위즈가 뉴욕타임즈를 통해 책 내용이 허위이고 크뢰벨은 거짓말쟁이라고 언플을 했다. 진위여부는 논란으로 남아있었지만, 최근에 코넬도서관에서 사진기자 월러드 스트레이트의 사진이 발간되면서 사실이 입증되었다. 철없는 여성의 해맑은 모습이 전해지는 사진이다. 문제가 되는 행위가 일어난 곳은 명성황후의 묘소(1919년 현재의 홍릉으로 옮겨졌지만, 1905년에는 청량리의 숭인원 자리였음)였다. 갑자기 뿌옇게 먼지가 일더니, 위세 당당하게 말을 .. 2023. 5. 2.
스타(Starr)의 의상 프레더릭 스타(Frederick Starr)는 1891년부터 31년간 시카고대학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한 인물로, 말년에는 일본에서 주로 연구하였다. 한국에도 관심이 많아 1910년대에 네 차례에 걸쳐 방문하였고 “Korean Buddhism”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는 일본에 거주하는 동안 미국 대학교수로서 명망 높은 인물이었다. 정치계, 학계를 비롯해 많은 인물과 교류하였고, 그 영향력은 한국 방문에도 활용되었던 것 같다. 다음 글에서 그의 의상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요약, 인용하겠다. Robert Oppenheim, “‘The West’ and the Anthropology of Other People's Colonialism: Frederick Starr in Korea, 1911–1930,” 64-.. 2023. 5. 2.
종교의 노이로제 세속과 종교가 미신의 제거를 위해 협력하는 관계로 설정되어 있지만, 종교는 끊임없이 세속으로부터 미신의 출처를 마련해준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특히 이미 기득권을 획득한 세계종교가 아닐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이비종교는 미신으로부터 자양분을 받는다.……미신은 전염병과 같다. 언제 어디에나 있고, 항상 잠입 태세를 갖추고 있어서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그래서 종교는 늘 미신의 영역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노이로제’ 상태에 처해 있다.……백백교는 최악의 ‘스캔들 메이커’로서 그 위험성을 알려주는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다. 장석만, “1937년 백백교 사건의 의미”, (모시는사람들, 2017), 276-277. 한국 사회에서 백백교와 그 후예들이 계속 호출되는 이유를 선명하게 설명한 글. 종교와 미신이라는 .. 2023. 5. 2.
성인전, 성유골 성인전은 보편적 진리를 예증하기 위해 특수한 사실을 희생하여 쓰여진 글. 성인전의 내용이 오늘날 ‘역사적 사실’이라고 간주되는 것에 근접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중세 성인전 작가가 성인 전기를 집필한 목적은 성인의 인격이나 개성에 관한 모든 것을 독자에게 말해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모든 시대 모든 성인에게 공통되는 성스러움의 보편적인 특징을 어떻게 보여주는가를 예증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예증이 성인의 생애와 죽음의 독특한 점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시되었기 때문에 성인의 보편적 특징을 예증하는 본보기와 일화들은 특정 성인의 생애에서 반드시 따올 필요가 없다.……성인전은 특정 사실보다 본원적 진리를 우선시하는 성인의 정형화된 세계관, 즉 다른 성인전에서 조금씩 따온 ‘상.. 2023. 5. 2.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종교적 발언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주술적 치료를 거부하고 합리적 의학을 제창하였지만, 그들에게 현대 과학의 태도를 지나치게 뒤집어씌우면 오해가 생기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합리성을 추구하였지만 반종교적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내세운 것은 새로운 종교적 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래는 전집에 나온 인상적인 내용으로, 다음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반덕진, (휴머니스트, 2005).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시작은 이렇다. 그들이 신을 거명한 것은 면피용이거나 관습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진심이 담겼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다. “나는 아폴론 신, 아스클레피오스,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 파나케이아, 그리고 모든 남신과 여신을 두고 그들을 나의 증인으.. 2023. 5. 2.
종교적/세속적 물질 경험 현대인과 종교적 인간의 물질 경험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엘리아데는 재치 있게 ‘communion’(교감/성만찬)을 사용한다. 현대인들은 물질을 다루면서 성스러움을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 기껏해야 미적인 경험을 얻는 정도이다. 그는 ‘자연 현상’으로만 물질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시의 종교 체험과 현대의 ‘자연 현상’ 경험을 갈라놓는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빵과 포도주라는 성만찬의 요소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종류의 ‘물질’로 확장되는 교감(communion)을 상상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미르체아 엘리아데, , 이재실 옮김(문학동네, 1999), 146-147, 번역 수정) 엘리아데의 패기 넘치는 지적. 그는 현대인과 종교인의 단절을 강조하는 입장인데, 이 부분에서는 살짝 (변형된) 연속성을 주장한다.. 2023. 5. 2.
새로운 죽음 전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해석의 전권을 위임하는 일은 당연했다. 중세에는 이러한 죽음의 예술(ars moriendi)을 담당하는 주체가 영적 대리인, 즉 목사나 신부였으며, 현대에는 의사가 전권을 위임받아 ‘백의白衣를 두른 반신半信’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추세이다.……성직자들이 죽음의 순간이 도래했다고 확신하였을 때 그 사람에게 영원한 안식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성스러운 ‘마지막 향유’를 이마에 떨어뜨리는 행위는 사망 직전 단 한 번 이루어졌고, 이는 수백년 간 절대불변의 임종 예식 절차로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오늘날 천주교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마지막 향유’는 더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의사가 가지는 전지적 후견자로서의 태도는 특히 임종과 관련해서 볼 때 근본적.. 2023. 5. 2.
조선 사찰과 기생 한 일본인이 1932에 쓴 조선 기생관광에 대한 책에서 사찰 이야기가 나온다. 사찰이 유흥의 장소로 사용된 것은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일인데, 일제강점기에는 기생 관광과 관련된 곳들도 있었던 것 같다. 통상 기생과는 세 곳에서 놀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조선의 사찰이다. 불사와 주색은 꽤 인연이 먼 구색이나 사실이므로 잘잘못을 가릴 필요가 없다. “산 있고 절 있고 꽃 있고 한국 기생 나오니 우토”라는 시구가 있다. …… 경성 부근에는 왕십리나 청량리 방면에 몇몇 사원과 암자가 있으며 또 한강의 남쪽 강변에서 산으로 들어간 곳에도 온천 숙박시설과 연락을 취하며 손님을 맞는 절이 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청량리로 이어진 간선 도로에서 좌측으로 들어간 〇〇사일 것이다. 절을 중심으로.. 2023. 5. 2.
슈바이처의 선교 경험 슈바이처의 선교 회고록에서 인상 깊은 몇 구절을 발췌. 원서를 확인할 수 없어 대부분 번역서를 따름. 2016년 출판된 책이지만 사실상 1976년 번역이어서 옛 어투가 정겹다. ‘토인’(土人)이 ‘native’의 번역인 것은 이번에 새삼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다. ‘자연아’(自然兒)는 무엇을 번역한 것인지 모르겠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16). 1. 주술의(呪術醫)로 불린 슈바이처 토인들 사이에서 나의 이름은 ‘오강가’라 불린다. 갈로아 말로 ‘주술사’라는 뜻이다. 흑인의 의술자는 모두 동시에 주술사가 되므로, 의사에 해당하는 다른 말이 없는 것이다. 나의 환자들은 병을 고치는 자는 또한 병을 멀리서 일으키는 힘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좋은 사람이.. 2023.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