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 벌레966 “성(聖)과 속(俗)”에서 “진(眞)과 속(俗)”으로 이 글은 원래 김형효의 에 대한 서평 과제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김형효는 원효나 불교 전공자도 아니고, ‘원효 책의 서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솔직한 목표를 위해 그 책을 썼고, 나는 그러한 목표에 맞게 김형효 덕분에 원효의 서문(述大意)을 다시 읽어보고 이해하고 그 구조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김형효 책에서 얻은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김형효가 주장하는 존재론적 혁명과 같은 이야기들은 그의 장광설이라 생각하지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한 것을 비판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필요한 일도 아니다. 그런 것보다는 그를 통해 원효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생긴 것에 고마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형효를 통해 원효를 읽자, 전에 가졌던 관심, 즉 .. 2023. 6. 2. <아트라하시스>의 결정적 장면들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인 신화 는 와 더불어 창세기 홍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인들의 독서는 대부분 이 지점에 집중된다. 를 통해 안티기독교인들은 성서의 이야기가 이전부터 존재한 신화를 베껴먹은 날조된 것이라는 증거를 잡았다고 흥분하며, 어떤 기독교인은 성서의 이야기가 그 이전의 역사책(?)에 기록된 문자 그대로의 진실임이 증명되었다고 감사드린다. 그러나 는 창세기가 형성되기 천년 이전(기원전 1700년 경)에 기록된 문헌이고, 그 자체를 이해하는데 있어 성서와의 관련성이라는 현대 독자의 논쟁들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성서의 유사한 대목과의 비교는 우리에게 ‘재미’를 주는데, 여기서 재미란 같은 신화적 재료를 갖고 고대의 신화저자들이 자신의 지적인 맥락에서 .. 2023. 6. 2. 종교경험 언어들의 번역 사정 서양 사람들에게 동양의 종교 언어들이 가진 신비함은 다음과 같이 예기치 못했던 효과를 자아낸다. 1997년에 출판된 (영어) 책 명단에는 “Zen”(禪)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197개의 제목들이 있었다. 그들 중 77개는 선(禪)을 생활의 어떤 분야에 적용한 지침서들이다. 이 중에는 , , 심지어는 도 있다. 같은 유형이 도교에 대한 대중 서적들에도 나타난다. , , 등. (Thomas Tweed & Stephen Prothero (ed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339.) 그들은 선이나 도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말에 무언가가 있는 듯 싶어서 많이들 사용한다. 정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 대단한 것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2023. 6. 2. 메소포타미아의 질펀한 이야기와 창조 모티브 신화에서 창조신화를 가장 우선적인 것으로 놓는 것은 성서 차례에 익숙한 사람들이 갖기 쉬운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성의 문제와는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엘리아데도 창조신화를 가장 중심적인 신화로 보았는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창조신화는 가장 먼저 상상된 신화가 아니다. 신화는 삶의 문제에 대한 설명으로 출발하며, 창조신화의 우주론을 생각할 정도로 인식이 추상화되는 것은 후대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신화는 신화적 사유의 열매에 해당하지 뿌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대에 집성된 신화 자료에서 창조 이야기는 첫머리에 온다. 그것은 성서뿐만 아니라 많은 신화 자료들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논리상 창조 이야기가 우선하는 것이지, 실제 신화 형성의 차원에서는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성.. 2023. 6. 2. 대박(大舶)의 꿈 앞의 글에서 초기 천주교와 정감록 전승의 관련성을 언급한 鈴木信昭의 이라는 논문 중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작은 대목이 있다. 강이천은 중국으로부터 서학 자료를 많이 구해온 사람이고, 그래서 그의 집에는 서학책과 세계 지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강이천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김건순은 강이천 집에 있는 세계지도를 토대로 서양 선박에 대한 확신을 깊게 하였다고 한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강이천은 정감록적인 예언 전통을 천주교의 도래와 연결지어 생각하였는데, 그 중요한 매개가 된 것이 당시 서해와 남해에 출몰한 이양선(異樣船)이었다. 정감록 전승에서 진인이 오는 경로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가장 많은 것은 진인이 서해나 남해의 어느 섬으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들어온다는 내용이었다. 강이천을 비롯한 신자들은 서해 쪽.. 2023. 6. 1. 뱀다루기와 종교학하기 서평으로 제출하기 위해서 쓰긴 썼는데.... 서평의 장르적 성격을 무시한 크로스오버 글쓰기 ;; 학술지에 실린 모습 주제서평: 뱀다루기와 종교학하기: 스네이크 핸들링에 빗댄 종교 연구 태도의 논의들 Dennis Covington, Salvation on Sand Mountain: Snake Handling and Redemption in Southern Appalachia, New York: Penguin, 1995. Robert A. Orsi, "Snakes Alive: Religious Studies between Heaven and Earth," Between Heaven and Earth: The Religious Worlds People Make and the Scholars Who Study .. 2023. 6. 1. 주술의가 되었던 탐험가, 카베사 카베사 데 바카(Alvar Núñez Cabeza de Vaca)는 스페인 원정대의 일원으로 아메리카 탐험에 참여하였다가 1528년 지금의 플로리다 지역에 난파당한 사람이다. 그 이후 8년 동안 그는 북미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는 북미 원주민들의 무리의 도움을 받아 생존할 수 있었으며, 그들과 어울려 지금의 뉴멕시코 지역까지 걸어서 이동하였고, 결국 멕시코 지역에서 스페인 원정대를 만나 돌아오게 된다.(그가 여행한 지역에 대해서는 아래의 지도를 클릭해서 확인해볼 것) 그는 거의 원주민 사회의 일원이 되다시피 생활하면서 경험한 일을 후에 책(Naugragios)으로 출판하는데, 이 책은 유럽에서 여행기로 인기를 끌어왔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당시의 문화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가치를 갖는다... 2023. 6. 1. 종교의 짜장면 1. 내 입맛은 전형적인 한국식은 아니다. 매운 것 잘 못 먹고, 김치 많이 안 먹고, 특히 국이나 찌개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이런 입맛은 미국 가서 생활할 때 편하게 작용하였다. 예외적일 때를 제외하고는 국 없이 밥, 고기 반찬, 김치, 그리고 물(때로는 콜라!),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그래도 가끔 한국 음식을 그리워했다. 내가 그리워한 한국 음식은 된장찌개가 아니었다. 가장 생각났던 음식은 짜장면이었다. 나는 미국 있을 때 중국 식당에 참 많이 갔는데 물론 거기엔 짜장면은 없다. 그 다음 생각난 것은 돈까스였다. 돈까스가 포크 커틀릿(pork cutlet)의 변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인지 미국에서는 폭찹(pork chop)은 있어도 돈까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끔은 한국의.. 2023. 6. 1. 빼빼로 먹으며 요즘은 빼빼로가 제철이라 싱싱하고 가격도 싸다. 우리 동네 슈퍼에서는 여섯 봉다리가 든 빼빼로 큰 통을 2200원에 판다. 만족스러운 가격이라 몇 통 사와서 책장에 빼빼로를 가득 꽂아놓고 먹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는 성스러운 날 대접을 못 받고 있지만, 이 날이 의미가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내가 대충 봐 온 것에 따르면, 일시적 유행처럼 보였던 이 날이 해가 갈수록 사그라지기는커녕 점점 힘이 붙어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된 날로 인정받는 분위기이다. 이제 거의 십년이 된 것 같다. 이 날의 경과에 대한 한 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빼빼로데이의 유래는 1994년 부산에 있는 여중고생들이 1의 숫자가 네번 겹치는 11월 11일 친구끼리 우정을 전하며 '키 크고 날씬하게 예뻐지자'는 의미에서 빼빼로.. 2023. 6. 1. 카치나, 뭉게구름 카치나(Kachina)는 북미 원주민 주니족, 호피족에서 영적인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는 호피족의 예를 통해서 내가 이해한 것을 대강 정리해본다. 카치나는 호피족의 생활을 돌보아주는 영적인 존재들인데, 기본적으로 카치나를 이루는 것은 돌아가신 조상의 영이다. 조상들 중 훌륭한 분들은 하늘로 올라가서는 서쪽으로 이동한다. 그리하여 조상들의 기운은 호피족의 신성한 산인 샌프란시스코 봉(San Francisco Peaks)에 모여들어 거기서 구름을 형성한다. (샌프란시스코 봉은 플래그스탭 바로 북쪽에 위치한, 애리조나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Snowbowl"이라는 스키장이 있는 이 산은 호피 보호구역으로부터는 꽤 떨어진 곳이지만 여전히 그들의 성스러운 순례지이다.) 애리조나 북동부 건조한 고산지대에 .. 2023. 6. 1. 종교가 답해주는 물음 곡식 창고가 무너져 깔려죽은 사람 이야기는 아잔데인의 주술에 대한 에반스 프리차드의 설명에서 등장하는데, 내가 참 좋아하는 부분이다. “종교가 답해주는 물음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주제에 대해서 구체적이면서도 명징한 깨우침을 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종교학자들 사이에서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로, 언젠가 어느 개론 책에서도 보았던 것 같다. 더글러스 책에서 만난 이 부분을, 꽤 길지만 그냥 죽 옮겨보았다. (에반스 프라차드의 책에서 직접 확인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글러스 책에서 옮김.) 낡고 썩은 곡식 창고가 무너져내려 그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을 죽게 했을 때, 그 사건은 마법의 탓이 된다. 아잔데 사람들은 낡고 썩은 창고가 무너지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사람이 몇 시간씩 그 그늘 아래 앉아 있다보면 날이 흐.. 2023. 6. 1. 페티시즘(fetishism) 페티시즘(fetishism), 혹은 주물숭배는 종교 현상에서 유래한 말이되 종교 현상을 기술하는 용어는 못 된다. '주물숭배'라는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특정 사물에 대한 경배, 그럴듯해 보이지만 오해에서 비롯한 서술이다. 묵주 기도를 하는 천주교인이나, 탑돌이를 하는 불교인들도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렇게 기술될 수 있는 것이다. 페티시즘은 1700년대 유럽인이 아프리카인들의 종교 생활을 서술하면서 쓰이기 시작한 용어이다. 주목할만한 것은 페티시즘이 아프리카인들의 종교를 서술하는 용어가 아니라 “종교 없음”을 서술하기 위한 용어였다는 것이다.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 p.13.) 유럽인 여행자 로이어(Godefrey Loyer)의 1714년의 기록에 보.. 2023. 6. 1. 불교-비불교 논쟁 라는 불교 언론에서 한국SGI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한국SGI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벌인다는 기사였다. 한국SGI가 그 동안의 탄탄한 성장을 바탕으로 활동을 개진하고 있는데, 일본 이미지가 최악인 지금 상황에 적응하여 독도 망언 규탄대회를 여는 등 왜색 종교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현명함도 엿보이면서 석탄일을 잘 치룬 모습이다. (*최근 SGI의 활동은 종교계 전반에서도 주목받는 흐름인 것 같다. 의 다음 기사 참조. 한국SGI, 대중화 시동거나 ) 그런데 의 시선이 삐딱하다. 신문의 논조는 한국SGI가 불교로 취급되어도 되는가라는 문제제기이다. 기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단 시비가 불교판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기사 마지막 부분의 내용이다. 불교계가 우려하는 부분도 바로 이런 점이다. 한국불교와는 상.. 2023. 6. 1. 사람 사람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했다. 미국 인류학자들이 북미 원주민들의 삶을 “기록”할 때, 그들은 원주민들의 “사람”이라는 범주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스 사상이었든, 성서에 바탕을 둔 것이었든, 서양 문화에서는 인간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해서 인간이 자연계의 다른 존재들과 구별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북미 원주민들의 세계관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은 호모 사피엔스 종만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동물들이나 식물, 그리고 바위와 같은 자연물까지 “사람”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자연의 사물들이 사람의 범주 안에 들어있다는 것들은 그들과 인간들과 다름없는 “관계맺음”--상호존중을 포함해서 의사소통, 선물 교환 등의 관계--을 가진.. 2023. 5. 31.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0.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는 에이스 침대의 광고가 나온 것이 1993년이니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광고의 인상은 또렷하다. 당시 초등학생들이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질문에 침대를 골랐다는 일화도 여전히 생각난다. 위치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기존 범주를 교란하는 것은 상당히 유효한 전략이다. (이 글 참조) 종교라는 언어의 쓰임새를 정리하는 중이다. 내 연구의 입장에서, 종교는 담론(discourse)이다. 이 말은 종교라는 말에 어떤 본질이 내재해 있는 게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의 정치적 입장에서 따라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언어라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라는 말을 놓고 여러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 2023. 5. 31. 이전 1 2 3 4 5 6 7 8 ··· 6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