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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하비에르, 그 이름

by 방가房家 2023. 6. 2.

한글의 발음 표기 능력이 우수한 탓이라고 생각되는데, 우리나라에서의 외국 인명 표기는 어떻게 보면 지조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하게 바뀐다. 발음 표기가 제한된 일본어나, 잘은 모르겠지만 중국에서도 그러리라 생각되는데, 외국인명이나 지명 표기가 한 번 정해지면, 그것이 아무리 원어 발음과 동떨어진다고 해도, 고집스레 처음 표기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수시로 바뀌면서 원래 발음에 다가가려고 한다. 한문의 제약이나, 가타카나의 제약에 비해 다양한 발음 표기가 가능한 한글을 사용하여 계속적인 수정이 이루어진다. “외국인 표기에 있어서는 그것을 받아들인 문화권의 관습의 역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늙은 학자들의 볼멘소리가 무색해진다.

나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물론 한글로 다른 나라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한다는 것은 하나의 환상이지만, 보다 합리적이고 비슷한 표기가 발견된다면 그 쪽으로 바꾸어 나간다는 “지조 없음”이 우리 문화의 탄력성을 보여주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외국 인명 한글 표기의 원칙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정착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발전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얘기가 다소 장황해졌는데,
이번에 일본에 처음 온 예수회 선교사 “Francis Xavier”에 대한 글들을 찾아보면서 실로 다양한 표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비에르, 쟈비엘, 자비엘, 사비에르, 사베리오, 하비에르 등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하비에르로 정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스페인 현지 발음을 반영한 것(정확히 확인한 것은 아니다)이며, 또 한국의 가톨릭 교회에서 정식으로 사용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Xavier”에 대해서 “하비에르”라고 표기하는 추세가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학술적 성과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축구 관련 언론 보도에서 정부의 시행령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축구계의 인명 변화에 대해서는 아래에 있는 익뚜의 축구 만평에 잘 요약되어 있다.) 현재 아르헨티나 주공격수 역할을 하는 젊은 친구가 “하비에르 사비올라”이다. 그 덕택에(‘때문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비에르 표기는 이전부터 있었다.) 선교사 하비에르에 대한 표기도 자리가 잡힐 것 같다.


참고로 현재 인터넷 언중의 성향을 살펴보자.
구글로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하비에르’ 54,200건
‘사비에르’ 25,400건
‘자비에르’ 16,100건
‘사베리오’ 5000건
‘자비엘’ 520건
‘쟈비엘’ 7건
‘샤비엘’ 6건

하비에르에 대한 표기가 유난히 다양했던 것은, 천주교 측에서 통일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사베리오’의 경우), 일본을 통해 매개된 지식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영문 표기야말로 구제하기 힘들 정도로 변형될 수밖에 없는데, 초기 일본 기독교사를 언급한 일본 전공자들의 표기가 그 영향을 받아 제각각이 된 탓이 크다. 이 변화는 언론에서 먼저 주도하고, 학자들의 저서에서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구닥다리 표기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 의해 매개된 표기의 예를 하나 더 들면, 하비에르 이후 일본 선교를 담당하는 “Valignano"는 ‘발리나뇨’로 표기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생각하는데, 일본 쪽 전공자의 책을 보면 ‘바리그냐노’, ‘바리냐노’ 등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분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종교학계에서도 학자 이름 표기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인 종교학자 “Mircea Eliade”는 한쪽으로는 미르세아/미르체아/멀치아/머시아/멀세아 등으로 표기되고 다른 쪽으로는 엘리아데/엘리아드/일리아드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었다. 루마니아 이름이다보니까 미국 사람들의 발음들이 지멋대로이고, 그들을 통해 매개된 한국에서의 표기도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는 ‘미르치아 엘리아데’로 정리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 못지않게 발음하기 힘든 이름이 네덜란드 종교현상학자 “Van der Leeuw”이다. 보통 ‘반 델 레우’로 부르는데, ‘반 데어 레에우’, ‘반 드르 레우후’ 등의 표기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그런데 아래 만화에 따르면 앞부분의 기준은 마련되었다. 
네덜란드 골키퍼 ‘판데르 사르’의 예를 좇아서, 이제 종교학계에서도 그를 “판데르 레이우"로 불러야하지 않을까... ('Leeuw'의 발음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학계가 축구계(그리고 때로는 연예계)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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