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른(Louise Jordan Miln)의 <<이상한 나라 한국>>(Quaint Korea)은 다소 낯선 책이었다. 책의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Louise Jordan Miln, <<Quaint Korea>> (London: Osgood, McIlvaine & co., 1895).
이 책의 10장은 한국의 종교에 관한 것인데, 제목이 아예 “한국의 무종교”(Korea's Irreligion)이다.(10장 내용은 첨부파일을 볼 것.) 19세기 말의 ‘종교 없음’ 서술들을 모으던 나로서는 눈에 띄는 제목. 사실 이처럼 노골적으로 종교가 없다고 말한 글도 드물다. 글은 학자의 글이라기보다는 아마추어 문필가의 냄새가 났다. 면밀한 논증보다는 개성이 강하고 소신이 뚜렷한 문체가 흥미로운 글이다. 일반인의 시각이다 보니 오히려 당시 종교에 대한 담론을 더 잘 드러낸다는 장점이 있다.
밀른에 관련된 글을 하나 찾을 수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고 내용은 파일로 첨부해놓았다.
James F. Lee, "Louise Jordan Miln and her Unorthodox View of Korea," <<Korean Culture>> 16-2 (Summer, 1995): 12-16.
이 글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일단 밀른이 “그녀”라는 것. 더 놀라운 것은 여배우였다는 것. 글에 따르면 그녀는 1890년대에 영국군이 있는 캘커다, 콜롬보, 도쿄, 상하이 등을 돌아다니며 연극 공연을 한 배우였다. 후에 아시아 여행의 경험을 출판하여 인기를 끈 작가가 되었다. 한국에 언제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글에서는 그녀가 기고한 신문 기사를 바탕으로 1888년에 서울에 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글에는 여배우 시절 사진이 실려 있는데, 내가 자료의 저자에게 이런 연예인 같은 사진이 있다니. 생소하다. 이 글에서는 밀른의 책 중에서 한국 여성에 관한 입장에 주목한다. 당시 다른 저자들과는 달리 한국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한 개성적인 주장이 많다는 것.
내가 읽은 것은 종교에 관한 부분뿐이고, 그 중에 몇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0장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10장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는 종교가 없다. 이것은 거친 표현이고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언급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큰 맥락에서 옳다고 믿는다. (226)
틀림없이 한국인 중에는 신실하고 진정 종교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 그런 사람들은 너무 적어서 그들 때문에 한국에 종교가 있다고 하는 것은, 현재 영국에 얼마 안 되는 신지학회원(Theosophist)들을 갖고 한국 사람들에게 영국이 신지학회를 널리 받아들인 나라라고 강변하는 꼴이 될 것이다.(226)
그녀의 표현은 대담하다. 하지만 대담한에 뒤따르는 (저자 자신이 느끼는) 꺼림칙함 역시 느껴진다. 그래서 저자는 미신과 종교의 경계를 긋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미신을 종교에 포함시키는 학자들도 있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종교라는 개념을 구사하고, 그에 따라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님을 그녀 역시 직감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녀에게 한국 종교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무교=미신이므로 종교 아님. 유교=행위 규범이므로 종교 아님. 불교=종교이긴 하지만 힘을 잃은 상태. 이것은 전형적인 당시 서양인들의 생각이다.
누가 감히 미신을 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우리가 미신과 종교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유교를 개인적이고 행위의 종교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면, 도성 밖 멀리에 지어져야 하기에 흩어져 있는 몇 개의 사원들, 평민들로부터도 무시 받는 중들이 살고 있고 기도나 참회가 아니라 왕족과 귀족의 여가를 위해 사용되는 이 사원들이 국가 종교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국에는 특별히 종교가 없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227)
그녀는 솔직하게 한 발 물러선다. 종교가 없다는 것은 진짜 없다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 존재의 문제보다는 태도의 문제라는 것. 이것 역시 ‘종교 없음’ 서술의 이면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내가 한국에 종교가 없다고 하는 것은, 한국에 종교가 전적으로 부재(absence)하거나 결핍 (paucity)되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바로 한국에서 종교가 존경을 받거나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하는 말이다. (228)
맺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종교 혹은 무종교는 이와 같다. 평민들에게는 미신이 있다. 평민들, 왕족, 그리고 그 사이의 사람들에게는 조상 숭배가 있다.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불교를 말하는 것 같다]의 하나로부터 나온 나라가 그리스도의 종교를 박해하고 조상 숭배를 열정적으로 해왔다니, 이상한 일이다.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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