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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벌레966

건물과 종교 1. 종교 개념과 건물이 긴밀하게 결합한 것은 우리 언어의 특징이다. 우리는 종교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교회에 다닌다”, “절에 다닌다”, “성당에 다닌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교회, 절, 성당이 그 종교 자체처럼 받아들여진다. 우리말에만 있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 “go to church”라는 숙어가 있는데, 이것은 “예배를 본다”는 의미이지 개신교 소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어 단어 ‘church’는 개신교와 천주교 건물 모두를 가리킨다. 한국어에서만 교회와 성당이 엄격히 분리된다. 언제부터 이런 표현이 자리 잡았을까? 2. 천도교 교당 건축에 관한 발표를 듣던 중에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건축물이 종교를 구성하는 핵심이라는 생각은 한국에서 종교 개념이 형성되는 초기부터 .. 2023. 6. 4.
하필 이럴 때 종교학 강의라니 (이 글은 비대면으로 진행된 필자의 인간과 종교 강의 인사말이다. 종교에 대한 말을 꺼내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강의 인사말이라는 형식으로 답답한 마음을 정리해본 것이다.) https://crrc.tistory.com/2555 우리는 사회적 거리를 두고 특별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채 학기를 시작하는 일은 경험해보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사회 활동이 정지하다시피 한 지금, 경제를 비롯한 우리 일상의 여러 영역은 타격을 입고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종교 역시 그러합니다. 종교사적으로 꼽힐만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어, 아마 코로나19가 지나간 이후 종교계 모습도 많이 바뀔 겁니다. 학생들은 아마 종교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수강 신청을 했겠지만, 한두 달 지난 지금 시점에 그.. 2023. 6. 4.
종교적인 것의 시대 아래는 최근 탈종교 상황을 개괄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쓴 글이다. 2020년 2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쉽게 쓰겠다던 애초 생각은 금방 헝클어져 여러 주제가 섞여 들어갔다. 방향이 여러 갈래이니 쉽게 읽히기는 글렀다. 아울러 한국의 무종교 인구에 관해 더 정리된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종교적인 것의 시대 필자는 수년간 대학에서 종교학 교양 수업을 강의하고 있다. 종교와 무관한 국공립대학의 학생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들을 통해 종교에 대한 한국 사회 일반의 정서를 느끼게 된다. 2015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종교인구는 44% 정도이고, 20대의 종교인구는 35% 정도이다. 필자가 강의실에서 체감하는 바가 통계와 비슷하다. 요즘 대학생 중 종교가 있다고 말하는 학생은 열 명 중 세 명 정도이다. .. 2023. 6. 4.
메시아(=알마시히) 1. 넷플릭스 드라마 (2020)는 스릴러물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종교 스릴러”인데, 여기서 긴장은 “이 사람이 진짜(real)일까, 아닐까”에서 조성된다.(영어 표현으로는 “conceive or con”) 종교 스릴러라니, 신선한 긴장이다. 이 드라마의 매력이자 논란거리는 무려 이슬람과 기독교를 아우르는 메시아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 남자를 추종하는 사람은 시리아의 무슬림과 미국의 개신교도이다. 두 회중을 동시에 이끄는 종교 지도자! 이 기묘한 결합을 위해 드라마는 공을 들였고, 이 상상력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충분히 볼 만하다. 2. 한 북미 학자의 글 “Netflix’s Iranian ‘Messiah’ Is a Gift to Trump and His Evangelical Base”에서는 이란 출신.. 2023. 6. 4.
인디언 기우제 “인디언 기우제”는 작년 말의 유행어이다. 유시민 작가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한 표현이다. 죄가 있어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다고 믿고 뭔가가 나올 때까지 계속 수사를 들이미는 것을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라고 불렀다.(2019년 12월 3일 알릴레오) 이 표현은 호응을 얻어 인터넷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올해 초에는 진중권이 “비는 기우제를 드리자마자 주룩주룩 내렸다”라고 되받아치면서 뜻이 더 혼탁해졌다.) 여기서 인디언 기우제란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 결국 비가 온다는 뜻이다. 나는 검찰에 대한 유시민의 비판에 동의하지만 이 표현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인디언을 무도한 검찰에 빗댄 것은 인디언의 명예훼손이고, 인디언이라는 한 무리의 사람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을 .. 2023. 6. 4.
선교사의 만남의 경험과 우상숭배 우상숭배라는 주제로 청탁 받은 글로, 11월호에 실렸다. 잡지에 실린 것과 동일한 원고는 아니다. 기고글에 분량 제한이 있기 때문에 찾아놓고 넣지 않은 자료들을 아래에는 대괄호 속에 삽입하였다. 대부분은 논지를 흐리거나 불필요해서 제외한 것이지만 아래엔 그냥 남겨두었다. 철저하게 선교사 용법에만 근거를 두고 정리한 우상숭배 개념이다. 선교사의 만남의 경험과 우상숭배0. 일반적인 여행과 마찬가지로 선교는 낯선 문화와의 만남의 경험을 동반한다. 그러한 만남의 순간에, 특히 종교적 만남의 순간에 선교사가 처음 접한 문화적 정황을 포착할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하는 경우는 빈번하게 있으며, 새로운 용어를 찾기 전까지는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언어를 활용하여 타자를 묘사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된다. 선교사들이 언급하는.. 2023. 6. 4.
라즈니쉬가 꿈꾼 유토피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는 다루는 자료의 깊이에 있어서나 그 문제의식에 있어서나 놀라운 작품이다. 나는 이 다큐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넷플릭스에 지불한 돈이 아깝지 않았다. 이 다큐는 라즈니쉬가 미국에 설립한 공동체가 설립되었다가 와해되는 1980년대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놀랍게도 이미 죽은 라즈니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핵심 인물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당시의 영상 자료들이 상당히 충실하게 보존되어 적절하게 활용된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다큐의 차분한 관점이다. 다큐는 반대 입장을 충분히 전하면서도 라즈니쉬 교단 추종자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았다. 교단이 당시 미국 사회에 일으킨 파문도 놀랍지만, 그보다 핵심적인 것은 추종자들이 어떻게 라즈니쉬에 매력을 느꼈는지, 어떻게.. 2023. 6. 4.
종교학 성공담? 요즘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왕왕 있다. 그래서 이런 책도 찾아보게 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정보는 많지만 건질 것은 많지 않은 책이었다. 정말 중요한 내용(인문학이 어떻게 그들의 성공에 기여했는가?)은 조금 언급된 내용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핵심에 대한 취재가 잘 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종교학 사례가 책의 1장에 조금 나오는데 그친 아쉬움도 있다.(사실 내가 책을 산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는데). 종교학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종교학 전공자 마이클은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분야의 일을 전반적으로 준비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인문학을 전공해야 한다고 강력히 추천한다. 그는 2학년.. 2023. 6. 4.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람들 (책 광고) 내가 쓴 글이 포함된 책이 나왔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뉴스레터 내용을 골라 뽑아 만든 책 (모시는사람들, 2018). 이 책은 연구소 3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책으로, 이만큼 많은 종교 전문가가 이처럼 다채로운 주제들에 대해 발언해왔다는 연구소의 자부심이 담긴 책이다. 나는 37인의 저자 중 한 명이자 53편의 글 중 두 편으로 참여하였다. (책에 실린 글의 옛 형태는 이 블로그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연구소의 30년 생존에 대한 자축의 성격을 갖는다. 연구소를 소개하는 데 주로 할애된 머리말은 이를 보여준다. 연구소와 인연 있는 분들이 나눠 가진 것만으로도 재고가 상당히 충당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일반 독자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도 그것이 궁.. 2023. 6. 4.
메리 더글러스 (책 광고)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책 한 권 번역한 것이 인연이 되어, 혹은 발목이 잡혀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의 이론을 소개하는 작은 책을 냈다. 종교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인류학자 해설서를 쓰다니, 이것은 본업에서 이탈한 것인 동시에 그만큼 더글러스가 종교학에서 중요한 이론가라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더글러스에 대해 종교학의 입장에서 쓴 편파해설서이다. 한편으로는 종교를 공부하면서 그에게서 배운 것에 고마워하며 주요 개념들을 정리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학문에서 종교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궁금해하며 글을 썼다. 나는 더글러스의 개인사에 대해서 전혀 모른 상태에서 몇 년 전에 그의 책을 번역했는데, 이번에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이런 것도 모르고 번역을 한 게 .. 2023. 6. 4.
차례 상차림의 원칙 홍동백서와 어동육서와 같은 말들은 유교 경전의 근거가 없다는 주장(성균관 의례부장)이 몇 년 전 신문에서 소개되었고 올해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법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격식을 갖추느라 고생하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뉴스이다. 모르기에 집착해왔던 법도에 무슨 근거가 있는지 따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뉴스에는 그 다음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으로, 홍동백서와 어동육서가 근거가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분명 홍동백서는 에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교 엘리트의 입장에서 경전적 근거가 없다고 할만하다. 하지만 제사의 법도는 경전의 공백 때문에 실천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법도는 조선 시대부터 .. 2023. 6. 4.
치아와 종교 이번에 한국종교문화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실린 글이다. 내가 일하는 곳의 여건 때문에 애정을 갖게 된 종교 현상들을 간단히 언급했다. 언젠가 논문으로 쓰려고 눈독 들인 현상들. 치아와 종교 치의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한 지 일 년이 되었다. 이 분야에서 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시작한 일이었다. 의료의 목적은 단순한 통증의 경감이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감소이다. 환자를 단순한 물리적 치료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만나야 한다는 각성이 의학계를 바꾸고 있다. 따라서 의료 교육에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접근은 중요하며 종교학은 이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오늘날 좋은 의료 교육기관이 되기 위해 인문학 교육은 필수이며, 치의학대학원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새.. 2023. 6. 4.
연애와 종교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개제된 칼럼. 오래 전에 습작한 글 “새로운 주술론, ” 이후에 발전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잘 되지는 못했다. 좀 더 현실감 있는 이야기와 엮을 생각도 있었는데 분량이 다 되어 책 메모로만 끝났다. 미리 기고했다가 연구소 사정으로 한 달 묵혀둔 글인데, 그 사이 시국이 급변하는 바람에 세상 분위기와는 매우 다른 생뚱맞은 글이 되었다. [이 글은 수정, 보완하여 다음 책에 수록되었다.한국종교문화연구소, (모시는사람들, 2018).] 연애와 종교  사랑은 종교를 비유하여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 중 하나이다. 당장 떠오르는 아가서와 각종 신비주의 문헌들을 비롯해 종교사 전반에 걸쳐 논할 자료들이 무궁무진할 것이다.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중에서도 현대인의.. 2023. 6. 4.
대통령의 현몽들 종교에 의한 국정농락이라고 하여 현재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정작 ‘최순실의 종교’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나도 궁금해 죽겠다. 대통령이 사용한 특이한 몇몇 표현들이 그와 관련 있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아버지 최태민의 종교에 대해서는 손톱만한 정보들이 있지만, 최순실은 최태민의 실질적 계승자이며 현몽과 계시의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것이 전부이다. 무엇을 계승하였고 어떠한 세계관을 만들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단어는 ‘현몽現夢’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태민이 박근혜와 처음 접촉한 것은 육영수의 현몽을 계기로 한 것이었다. 현몽은 환시나 환청과는 구별되는 전통적인 종교체험 방식인데, 이것이 이들 종교의 토대를 이루는 경험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이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맥.. 2023. 6. 4.
종교혐오 시대에 종교 가르치기 거의 몇 년 만에 대학신문을 펴보았다. 내 글이 실렸기 때문이다.(마음에 들지 않는 내 얼굴 사진이 작게 나오도록 찍었음.) 강사들이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코너에 원고 청탁을 받았다. 코너 성격상 꼰대 스타일의 글이 나올 수밖에 없는 각이다. 안 그러려고 종교학 강의 홍보 쪽으로 쓰긴 했지만 훈계조는 어쩔 수 없다. 아래에 비슷한 제목으로 올린 메모(종교혐오 시대에 종교 공부하기)에 좀 저 말랑말랑한 소재를 집어넣고 제법 교훈적인 마무리를 덧붙여 완성한 글이다. 종교혐오 시대에 종교 가르치기 “종교가 없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연애 관련 팟캐스트 '불금쇼'의 한 출연자가 연애 상대의 조건으로 한 말이다. 종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하는 말이었다. 여기서 출연자가 언.. 2023.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