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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바빌론 강가에서 부른 귀향 노래

by 방가房家 2023. 7. 16.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는 디스코 그룹 보니엠(Boney M.)이 불러 잘 알려진 노래이다. 그런데 이 노래를 둘러싼 의미의 껍질을 하나하나 들여다볼수록, 만만치 않은 종교적 가치가 이 문화적 상품 안에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여건이 된다면 보니엠의 노래를 플레이해서 장중한 인트로와 더불어 글을 읽어주시면 좋겠다.

 

 

1.

우리 대부분에게 이 노래는 옛날 팝송의 하나이다. 노래 첫 구절을 우리 귀에 들리는 대로 변형해서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By the rivers of Babylon]라고 장난치는 데서 보이듯이(몬더그린mondegreen이라고 부른다), 단박에 의미가 통하지는 않는 영어 노래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팝송이 미국 노래가 아니라는 사실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보니엠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그룹이 아니다. 보니엠은 1974년에 독일의 프로듀서 프랑크 파리안(Frank Farian)이 서인도제도 출신 뮤지션을 모아 만든 4인조 그룹이다. 지금은 생각하기 어렵지만 1980년대 우리가 즐긴 노래 중에는 유럽 대중음악계가 기획한 그룹의 것이 많고, 우리나라에서 이지 리스닝팝으로 사랑받았다.(다른 유명한 예로는 징기스칸Dschinghis Khan이 있다) 다시 말해 보니엠의 아프리카적임은 유럽의 상업적 기획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전달한 메시지의 의미가 덜해진 것은 아니지만.

 

 

2.

종교 연구자들은 이 노래의 가사가 성경 <시편> 137장을 사용한 것임을 알아챌 수 있다. 가사 앞부분은 다음과 같다.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and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이 노래는 예루살렘 왕국이 멸망한 후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의 망국(亡國)의 한을 표현한다. 그들은 고향으로부터 바빌론 강변까지 호송되어 온 후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시온산을 추억하며 울고 있다. 게다가 그들을 호송하는 장수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이스라엘 왕국을 찬양하던 노래를 여기서 불러달라고 하고 있다. 식민 지배자의 술자리에서 애국가를 불러주는 상황과도 같은, 망국의 설움이 절정에 당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후렴구 가사 “Let the words of my mouth, and the meditation of my heart, be acceptable in thy sight.”(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역시 <시편> 19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성경 인용만으로 가사가 구성된, 흔치 않은 대중가요이기도 하다. 디스코 음악으로 받아들여져서 그렇지, 사실 가사 내용은 구슬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3.

덜 알려진, 진짜 중요한 내용은 여기부터다. 이 노래의 원곡은 1970년 레게 그룹 멜로디언즈(The Melodians)가 발표한 것이다. 보니엠이 이 노래를 디스코 버전으로 편곡하여 1978년 앨범에 수록한 것이 크게 히트한 것이다. 원곡은 우리가 아는 꾸밈새가 빠져 있고 처연한 정서가 잘 표현된다. 그리고 음악적 느낌보다 중요한 차이는 노래의 종교적 배경이다.

 

레게 음악은 라스파타리 운동(Rastafari movement)이라는 자메이카의 신종교를 배경으로 한다. 라스파타리는 1930년대 자메이카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독자적인 성서 해석을 바탕으로 아프리카계 이주민의 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였다. 라스파타리는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Haile Selassie I, Ras Tafari)를 신격화하였고 그의 통치 기간에 예언이 성취될 것이라고 믿고 아프리카로의 이주를 희망하였다. 더 큰 맥락에서 보면 20세기초 북미대륙의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들은 자신의 아프리카 정체성을 재인식하였고, 그것을 기독교적으로 표현한 것이 성서 전통에서 아프리카의 중요한 의미를 강조하는 에티오피아주의(Ethiopianism)였다. 더 나아가 아프리카 재이주(Back-to-Africa movement)를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자메이카의 라스파타리는 기본적으로 당시 북미의 범아프리카주의의 맥락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이해된다.

라스파타리는 아프리카인들이 불의한 서구 사회, 바빌론의 압제 아래 놓여 있다고 가르친다. 거기서 벗어나 약속된 땅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가르친다. “바빌론 강가에서가 인용한 시편 구절에 나타나는 구도이다. 게다가 노래에서는 바빌론을 지칭하는 그들(they)사악한 자들’(the wicked)라고 바꿈으로써 의미를 강화하였다. 또 멜로디언즈가 부른 원곡에서는 라스파타리 노래임을 드러내기 위한 세부적인 변형들이 있다. 예를 들어 주의 노래’(Lord’s song)라는 표현은 하일레 셀라시에 1세를 가리키는 알파 왕의 노래’(King Alpha’s song)로 변화되었다. 노래가 가진 라스파타리 색채 때문에 발매 당시 자메이카 정부는 체제전복적이라는 이유에서 이 노래를 금지하기도 했다.

 

 

4.

라스파타리 운동에 속하든 그렇지 않든, 이 운동의 정신을 수용한 많은 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많은 가수의 연주를 찾아 들어보니 이 노래가 가스펠처럼 광범위하게 향유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운동 가요가 지닌 힘도 느껴진다. 인상 깊게 들었던 버전은 다음과 같다.

스위트허니(Sweet Honey) 

 

스카탈라이츠(The Skatalites)

 

네빌브라더(The Neville Brothers)

 

 

 

5.

자메이카에서 이 노래는 라스타파리 운동의 정신, 즉 성경 이야기를 흑인 해방의 서사로 받아들이고 사악한 백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제작되었다. 이후 독일에서 결성된 흑인 그룹 보니엠이 디스코로 리메이크한 버전이 세계적으로 히트하여 우리 귀에도 익숙한 곡이 되었다. 이 노래는 보니엠의 곡이 되면서 라스타파리 색채를 지우고 성경 언어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구절에 담긴 아프리카계 자메이카인 해석 공동체의 염원은 오롯하다.

우리는 디스코 풍 노래 안에 담긴 망향(望鄕)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원래 이 노래가 망향의 정서를 담은 성경 구절을 자기 자리에서 해석하여 더 적극적으로 귀향(歸鄕)이라는 움직임을 추진했던 종교 공동체의 희망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요즘 종교 컨텐츠의 변화/변형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다. 아프리카인의 트랜스애틀란틱(transatlantic) 경험에서 비롯한 종교적 생산물이 글로벌한 자본의 가공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들려주는 바빌론 강가에서를 틀어놓고, 나는 종교문화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고 남는 것이 무엇인지 상념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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