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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벌레966

종교 개념의 세번째 영역 얼마 전에 피터 바이어(Peter Beyer) 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서구적인 종교 개념이 비서구사회에 적용된 과정을 개괄하는 강연이었는데 나에게 너무 익숙한 내용이어서 그런지 다소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그가 청중들의 수준을 다소 낮게 설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돌같이 단단한 논의 전개는 인상적이었지만, 내용은 다소 평범해서, 도대체 그의 대표적인 이론 작업인 지구화(globalization)에 대한 논의가 종교에 대한 이론적 논의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회의만 느낀 채 강연장을 떠났었다. 오늘 종교 개념에 대한 다음 논문을 읽고서 그의 학자로서의 저력을 느끼게 되었다. 최근 종교학자들의 종교개념 논쟁을 깊이 있게 정리하고 자신의 대안도 설득력 있게 제시한 글이다. 그의 대표.. 2023. 6. 3.
종교학이 신화학을 말하다 최근에 신화를 다루는 중요한 종교학 서적들의 번역이 쏟아져 나왔다. 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서평을 하나 써서 기고하였는데, 방대한 폭의 책들을 한데 모아 이야기하느라 애를 많이 썼다. 솔직히 말하면 상당히 거친 글이 되었다. 하지만 신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머리속에 든 것을 박박 긁어서 쓴 글이기 때문에 새로 제대로 써보라고 해도 더 나은 글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쓰기로 했던 것 자체가 무리했던 것. 글은 신통치 않아도 공부는 많이 되었다. 다루어진 책들은 (이학사, 2008), (이학사, 2009), (청년사, 2007)이다. 막스 뮐러로부터 비롯해서 종교학사 내내 신화는 종교 연구의 중심적인 주제였다. 그래서 종교학 연구자에게 신화를 종교현상의 일부로 연구하는 것은 당연.. 2023. 6. 3.
종교학사에서 구조적인 선행이라는 논리 뒤르켐은 의 논의를 시작하면서 이른바 ‘원시종교’를 다루는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원시의 추구가 새로운 맥락에서 이루어짐을 밝힌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원시, 그리고 기원의 문제가 연대기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라는 접근방식의 전환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연구는 종교의 기원이라는 낡은 문제를 다시 제시하되 새로운 조건 아래 제시하는 것이다. 만약 기원적인 것이 절대적인 최초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문제는 절대 과학적인 것이 아니게 되겠지만, 이 점은 반드시 배제되어야 한다. 종교가 존재하기 시작한 절대적인 순간은 있을 수 없으며, 그 지점은 마음속으로 우리를 그곳에 갖다놓는 우회적인 방법으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인류의 제도들처럼, 종교는 어.. 2023. 6. 2.
"자리 잡기" 번역 출간 [2023년 현재 이 책은 절판되어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습니다.] 드디어 조너선 스미스의 가 로 번역되어 나왔다. 올해 초에는 이 책의 마무리 작업 때문에 온통 신경을 썼다. 블로그도 쉬어야 할 정도로. 이런 작업을 ‘일상’적으로 하는 출판사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보도 자료로 작성한 글이다. 현대 종교학계의 큰 별, 조너선 스미스 종교학이라는 학문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학과로서 정착하게 된 데에는 엘리아데라는 큰 학자의 덕이 크다. 그가 타계한 지 한 세대가 되어가는 지금, 엘리아데의 지적 울타리 안에 있는 대다수의 종교학 연구자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엘리아데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엘리아데의 자식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엘리아데의 지적인 유산을 어떻게.. 2023. 6. 2.
종교는 자연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인류 역사에서 종교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곤 한다. 원시인들은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미지의 자연 현상에 대한 두려움에 가득 차서 살았다. 어느 날 번개가 ‘꽝!’ 치는 날 밤, 그들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신의 존재를 상상하였고, 그것이 종교의 기원이 된다... 종교학사에서는 백 년 전의 책에서 찾을 수 있는 설명이지만, 상식의 세계에서는 지금도 흔히 통용되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이원복의 만화 의 첫 부분에서 종교의 첫 단계를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글 끝에 첨부된 그림을 참조할 것.) 요즘 읽고 있는 책, (E.J. Brill, 1994)의 5장은 이런 식의 설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있어 재미가 있었다. 게으른 내가 하는 식으로 낡은 이론이라고 .. 2023. 6. 2.
토테미즘과 프로야구: 롯데 갈매기 1. 토테미즘과 프로야구 팀 프로야구 팀들의 상징들이 기능하는 방식을 보면, 나는 토테미즘이라는 종교현상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토테미즘의 중요한 특성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1)주변에서 볼 수 있는 성스러운 동물들을 이용하여 세계의 분류체계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한 부족을 이루고 있는 12씨족들에 각각 해당하는 동물을 지정한다. 2)동물을 부여받은 무리에 속한 성원들은 그 동물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말해진다. 예를 들어 곰 씨족의 사람들은 곰의 후손들이라고 불리며 곰의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곰을 먹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씨족의 정체성을 갖는다. 현재 프로스포츠, 특히 프로야구 팀들의 마스코트가 작동하는 방식에는 이 토테미즘의 원리가 살아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야구의 세계는 .. 2023. 6. 2.
여배우 밀른이 본 한국종교(1895년) 밀른(Louise Jordan Miln)의 (Quaint Korea)은 다소 낯선 책이었다. 책의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Louise Jordan Miln, (London: Osgood, McIlvaine & co., 1895). 이 책의 10장은 한국의 종교에 관한 것인데, 제목이 아예 “한국의 무종교”(Korea's Irreligion)이다.(10장 내용은 첨부파일을 볼 것.) 19세기 말의 ‘종교 없음’ 서술들을 모으던 나로서는 눈에 띄는 제목. 사실 이처럼 노골적으로 종교가 없다고 말한 글도 드물다. 글은 학자의 글이라기보다는 아마추어 문필가의 냄새가 났다. 면밀한 논증보다는 개성이 강하고 소신이 뚜렷한 문체가 흥미로운 글이다. 일반인의 시각이다 보니 오히려 당시 종교에 대한 담론을 더 잘 드러.. 2023. 6. 2.
종교학 고전에 사용된 한국 자료들 한국종교라는 ‘자료’가 서양 종교학 이론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찾고 있는 중. 종교학 고전들을 읽다가 만나게 되는 코리아. 그다지 중심적인 사례도 아니고 구석진 내용들이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전의 글, 한 종교학 책에서 한국에서 출처를 찾지 못했던 것을 얼마 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인용하면, 판데르 레이우의 (분도출판사: 1995) 79-80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사실 원시인들의 세계는 영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아직 잘 볼 수 있다: "영들이 하늘 전역과 땅 한치까지 모두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길가에서, 나무나 바위나 산 위에서, 골짜기와 강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밤낮으로 영들은 사람들의 말을 엿듣고, 사람들 주위를 배회하며, 그들 머리 위로 날.. 2023. 6. 2.
일제 사진을 통해 읽은 민속종교 큰 사진들을 사용하여 올린 발표용 포스트. 무라야마 지준의 사진을 모아 낸 책 의 서평으로 쓴 것인데, 내용이 다소 확대되어서 사진 자료를 통해서 한국 종교를 어떻게 읽을지에 대해서도 좀 건드리는(건드리고 싶어하는) 글이 되었다. 화면이 커서 글을 읽기엔 좀 산만하겠지만... 일제 사진을 통해 읽은 민속종교 무라야마 지준(사진), 노무라 신이치(해설), 고운기 옮김, (이회, 2003) 1. 사진으로 종교를 읽다 최근 종교학계에서는 시각 자료를 통해 종교를 읽어내려는 관심이 늘고 있다. 대표적 예로는 사진을 통해 미국 대공황기의 종교생활을 섬세하게 읽어낸 맥다널(Colleen McDannell)의 (Picturing Faith)를 들 수 있다.1) 그녀는 1930년대 말 미국 정부 주도로 수집된 사진 자.. 2023. 6. 2.
책이라는 물질과 학문 1. 내가 (푸른역사, 2007)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은 책이라는 물질적 존재가 학문을 일으키는 바탕이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일깨우는 장면들이었다. 특히 한국 성리학의 발달이 책의 공급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얼핏 보면 유물론적일 수도 있는) 필자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 상식으로는 고려 후반인 1300년경 성리학이 전래됐고, 성리학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아 1392년 조선이 건국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성리학 전래로부터 약 100년 이후 성리학에 입각해 조선이 건국됐으니, 건국 당시 성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해다. 1300년경에서 1392년까지 전래된 성리학 서적은 , , 등 몇 종에 지나지 않았고, 그 이해의 수준도 낮았다.(87) 사정이 좀 나아.. 2023. 6. 2.
의례에 대한 알짜 사실들 조너선 스미스의 ‘의례 이론’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다음 글을 골랐다. Jonathan Z. Smith, "The Bare Facts of Ritual,"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이하의 내용은 이 글에서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목들을 뽑고 그것을 다른 사례들을 들어서 해설하는 방식을 취한 한시간 분량의 강의안이다. 1. 대본에 없는 것 1-1. 의례에 관한 두 이야기: 우연한 요소의 개입 [글 처음에 인용된 두 이야기를 그대로 소개하였다. 의례에 우연한 요소가 개입된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이다. 우연성이 언제든 들어올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이야기.] 표범들이 갑자기 사원에 들어와 의례용 잔에 든 물을 마셔버렸다... 2023. 6. 2.
하비에르, 그 이름 한글의 발음 표기 능력이 우수한 탓이라고 생각되는데, 우리나라에서의 외국 인명 표기는 어떻게 보면 지조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하게 바뀐다. 발음 표기가 제한된 일본어나, 잘은 모르겠지만 중국에서도 그러리라 생각되는데, 외국인명이나 지명 표기가 한 번 정해지면, 그것이 아무리 원어 발음과 동떨어진다고 해도, 고집스레 처음 표기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수시로 바뀌면서 원래 발음에 다가가려고 한다. 한문의 제약이나, 가타카나의 제약에 비해 다양한 발음 표기가 가능한 한글을 사용하여 계속적인 수정이 이루어진다. “외국인 표기에 있어서는 그것을 받아들인 문화권의 관습의 역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늙은 학자들의 볼멘소리가 무색해진다. 나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물론 한글로 다른 .. 2023. 6. 2.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있어 종교적 이미지로서의 기차 “기술 문명의 발달이 종교적 상상력과 어떻게 만나는가?”라는 물음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전에 살짝 운을 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들의 종교적 상상력에서 기차라는 운송 수단이 어떻게 그려졌는가를 분석한 글을 읽게 되어 몇 가지 사례들을 간단히 정리해 놓는다. 다음 글에서 뽑은 내용이다. John M. Giggie, ""When Jesus Handed Me a Ticket": Images of Railroad Travel and Spiritual Transformations among African Americans, 1865-1917," David Morgan & Sally Promey (ed.), The Visual Culture of American Reli.. 2023. 6. 2.
새로운 주술론, <비밀번호486> 종교를 설명하는 것과 연애를 설명하는 것에는 비교할 거리가 풍성하다. 그 비교가 위험에 빠지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종교와 사랑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관점들을 많이 얻게 된다. (이런 논의는 학자들의 글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내가 최근에 본 것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종교에 대한 보테로의 글이 기억난다.) 기본적으로 종교와 연애는 삶(흔히 사소한 일상들)을 의미화하는 과정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기억이나 추억에 의해서 전에는 사소하던 어떤 장소나 때나 사물이 성스러운 것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 할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의미화의 기본 구조는 종교나 연애나 동일하다. 미지의 타자에 다가서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둘의 공통된 양상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성(異性)을 완전히 파악.. 2023. 6. 2.
냄새 없는 종교 1. 감각의 문제에 관련된 종교사 연구를 많이 한 클라센은 에서 근대 문화에서 냄새가 본능의 영역으로 쫓겨나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 서구에서 냄새가 평가절하된 것은 18,9세기에 벌어졌던 감각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이 시기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이성과 문명을 주도하는 감각은 시각이며, 이와 반대로 후각은 광기와 야만의 감각이라고 규정했다. 다윈과 프로이트 등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후각은 뒤쳐지고 시각이 우선권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냄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대인은 진화가 덜 된 야만인, 타락한 프롤레탈리아트이거나 변태, 미치광이, 천치 같은 비정상인이라고 간주되었다. 유럽의 지식 엘리트들에 의해 이루어진 냄새에 대한 이 같은 강력한 폄하는 후각의 지위에 오래도록 영.. 2023.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