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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원시종교 강의를 시작하며

by 방가房家 2023. 6. 3.

 

소위 세계종교 지도라는 것을 보면 그 자의성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한국은 중국종교를 의미하는 갈색으로 칠해져 있다. 물론 엉터리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지도에는 불교 색으로, 어떤 지도에는 기독교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그 어느 것도 한국인의 종교적 삶을 일방적으로 단순화한 것에 불과하다.) 많은 신자를 보유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전파된 주요 종교인 세계종교. 그러나 지도에는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세계종교를 헤아리고 남은 공간을 채워주는 ‘기타 등등’의 종교가 있다. 옛날 표현으로는 원시primitive 종교, 요즘 순화된 표현으로는 기초primal 종교, 부족 종교, 토착indigenous 종교 등으로 불리는 종교들이다.
‘원시종교’는 세계종교의 잔여 범주를 일컫는 구닥다리 명칭이다. 권력의 주변부에 속한 사람들의 종교로, 유럽인들에게 타자화된 종교 전통이다. 게다가 요즘은 그 안에 담긴 경멸적인 함의 때문에 사용되지도 않는 말이다. 그런데 종교학과에 ‘원시종교’라는 수업이 개설되어 있으니 이 무슨 연구인고? 내가 수업을 준비하면서 던졌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원시종교라는 시대착오적 강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강의를 만든 학과 측의 의도는 잘 모르겠고 중요하지도 않다. 나는 이 강의를 통해 전달할 것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생각해보았고, 세 가지 답을 얻어 강의 내용을 구성하였다.

(1) 원시종교라는 말을 낳았던 초기종교학의 역사를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종교학의 핵심적인 성격을 이해하게 된다. “종교학은 접촉의 과학”이다.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 얻은 사유가 낳은 학문이다. 원시종교라는 타자화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우리는 타자 인식의 문제라는 현대의 이슈가 종교학의 중심 이슈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2) 원시종교는 이론적 생산성을 갖는다는 역설을 지닌다. 원시종교는 대부분 피지배자의 종교였고, 관찰자나 학자들에게 만만한 관찰대상이었다. 그들에 대해 아무렇게나 지껄여도 된다는 방만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여러 창조적인 이론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되기도 했다. 이것이 초기 종교학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애니미즘, 토테미즘, 마나이즘, 페티시즘 등 초기 종교학을 구성했던 희한한 설명들이 모두 원시종교를 원천으로 생산되었다. 엘리아데의 종교이론도 원시종교를 빼면 무너질 것이다. 종교학의 이론 발달에는 비겁한 면이 있다. 기독교 같은 힘 있는 종교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종교들을 재료로 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기 학설들이 현재의 문화 현장에서 생명력을 갖고 있는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다. 고전 이론을 재음미하며 이들이 현대 문화에 가질 수 있는 유용성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3) 그렇다고 원시종교는 이론적 구성물이라는 결론을 내고 끝낼 수는 없다. 과연 세계종교에서 배제된 토착 종교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원시종교는 역설적으로 ‘현대종교’이다. 원시종교를 구성하는 자료는 모두 서양과의 접촉 이후 생산된 자료이고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대에 그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있느냐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이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이 수업에서는 북미원주민Native American 종교를 소개한다. 다른 수업에서는 소개될 기회가 없는 그들의 문화를 공부하면서 북미원주민들이 현대 미국사회라는 맥락에서 자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투쟁하였는지, 그리고 현재 그들에게 전통 종교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기회를 갖도록 한다.

(2013년 2학기 원시종교 강의를 시작하면서)

강의계획서:

Primitive_religion_syllabus.pdf
0.06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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