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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토테미즘과 프로야구: 롯데 갈매기

by 방가房家 2023. 6. 2.

1. 토테미즘과 프로야구 팀

프로야구 팀들의 상징들이 기능하는 방식을 보면, 나는 토테미즘이라는 종교현상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토테미즘의 중요한 특성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1)주변에서 볼 수 있는 성스러운 동물들을 이용하여 세계의 분류체계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한 부족을 이루고 있는 12씨족들에 각각 해당하는 동물을 지정한다. 2)동물을 부여받은 무리에 속한 성원들은 그 동물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말해진다. 예를 들어 곰 씨족의 사람들은 곰의 후손들이라고 불리며 곰의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곰을 먹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씨족의 정체성을 갖는다.
현재 프로스포츠, 특히 프로야구 팀들의 마스코트가 작동하는 방식에는 이 토테미즘의 원리가 살아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야구의 세계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존재들로 구성된다. 호랑이, 사자, 비룡, 독수리, 곰, 거인, 쌍둥이, 히어로. 비록 언어적 연결의 차원에 불과하지만, 팀 선수들에게 마스코트의 속성이 부여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기아의 선수에게는 ‘포효하다’는 표현이, 한화의 선수에게는 ‘비상하다’라는 사용되는 게 그 예이다. 우리나라 야구의 곰 씨족들은 어울리지 않게 날쌔게 뛰어다니는 일명 ‘발야구’를 하지만, 그들의 속성으로 강조되는 것은 곰 같은 끈질긴 근성의 야구이다. 말은 꿰어 맞추면 되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오래 전 이만수가 선수시절에 했던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양준혁일수도 있다) “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
2. 자이언트 토템의 문제점

물론 이런 연결은 완벽하지 못하다. 각 팀의 상징들의 힘에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창단된 지 오래되지 않은 것과 같이 현실적인 이유들이 많이 작용한다. ‘히어로’는 (구단 상황도 그렇지만) 아직 자리잡지 못한 상징이다. 1년밖에 안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을 머릿속에 형상화시키기가 무척 힘들다. 마스코트 인형 턱돌이가 나름 활약하기는 했지만, 전체 이미지를 만드는 데는 한참 모자란다. 슈퍼맨을 로고에 썼던 삼미 슈퍼스타즈에도 미치지 못한다. 히어로의 전신인 ‘유니콘’도 성공한 상징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서양의 신화적 동물을 우리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그리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것은 지금 와이번스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트윈스’도 고전 중이라고 생각한다. 이 마스코트는 처음 나올 때 “럭키+금성”이라는 기업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며 LG라는 브랜드를 안착시키는 데 공헌하였지만, 현재는 쌍둥이라는 존재가 왜 성스러운 상징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득력이 주어지지 않는다. 도대체 쌍둥이의 속성을 갖고 야구선수의 플레이를 형용하는 글짓기가 불가능하다.
연륜을 자랑하며 상징으로서의 힘도 축적된 것들은 아무래도 프로야구 창단 원년부터 내려온 이름들이다. 라이온스, 타이거즈, 베어스, 자이언츠, 그리고 몇 년 후에 참가하긴 했지만 이글스가 오랜 역사를 통해 상징의 힘을 갖고 있는 팀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중에서 자이언츠만은 예외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삼성 라이온스와 더불어 1982년도 창단할 때의 이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두 팀 중 하나이다. 다른 팀들이 이런저런 변화를 겪을 때, 두 팀만이 고스란히 유지되며 브랜드의 가치를 쌓아온 것이다.

그러나 ‘자이언츠’는 우리의 인식 속에 그다지 강한 이미지를 형성하지 못한다. 호랑이, 사자, 독수리, 곰 등이 역동적으로 뛰어다니는 세계에서, 거인은 우뚝하니 혼자 서있을 뿐이다. 도대체 한국인의 심성에서 “거인”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한국의 상징체계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등장하는 거인이 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기간테스(Gigantes)로부터 유래한 자이언트가 한국인들의 심성에 어떠한 울림을 줄 수 있었을까?
좋다. 새로운 상징이 도입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통적인 상징 자원의 도움을 받지는 못한다 해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의미는 충분히 쌓여나갈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롯데는 자이언츠의 이미지는 쌓아나가는 데 실패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미국과 일본 팬들에게 어떤 자이언츠 이미지를 형상화해왔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외부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샌프란시스코는 배리 본즈의 호쾌한 야구가 연상되고, 요미우리는 닥치는 대로 비싼 선수들 사들이는 공룡 구단이 연상된다. 롯데 자이언츠는 플레이 스타일에서도, 구단 운영에서도 거인을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라이온즈와 타이거즈가 장쾌한 홈런포를 날릴 때, 자이언츠는 단타를 똑딱똑딱 치고 열심히 뛰는 플레이를 보였다. 홈런보다는 넓은 외야를 지닌 사직구장을 이용한 2루타나 3루타를 생산하는 것이 롯데를 대표하는 타격이다. 지금이야 이대호라는 걸출한 4번타자를 갖고 있지만, 그 전의 롯데는 1992년 우승 당시 5명의 3할 타자로 상징되는 단타 위주의 팀이었다. 하긴 이대호가 있었던 작년 시즌에도 ‘이대호와 여덟 난쟁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갖고 있었다. 한편 롯데의 구단 운영에 있어서의 거인답지 못함은 롯데팬이라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겪어온 터이므로 여기서는 상세히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결론은 롯데라는 팀은 거인이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
자이언트라는 상징의 불모성(不毛性)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창단 때부터 10년 정도 사용된 로고이다. 자이언트라는 상징을 형상화할 엄두를 내지 못한 구단은 롯데 자이언츠의 약자 L과G의 조합으로 된 무의미한 도안을 내놓았다. 거인이라는 이미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다시피 했다. (이것은 연세대와 고려대의 마크가 독수리와 호랑이라는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비해 글자의 조합으로 된 서울대 마크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1990년대 들어 거인이 들어간 도안을 도입해 이미지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긴 했지만, 이 때늦은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아마도 자이언트라는 상징은 프로야구가 창단될 때, 롯데 관계자가 외국 구단들의 이름 중에서 성의 없이 하나 골라온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 이름은 무성의한 도안과 더불어 팀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남아있다. 하지만 그 다음 이야기는 반전의 이야기이다. 이제 팬들에 의해서 주어진 ‘갈매기’가 롯데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

 

4. 야구장, 집단흥분의 도가니

야구장의 관중석은 집단흥분으로 가득 차는 곳이라는 점에서 뒤르케임적인 공간이다.(‘~적인’이라는 현학적인 표현은 좀 어색하지만 더 좋은 말을 찾지 못했다.) 그의 저서 <<종교 생활의 기본 형태>>에서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모델인 "집단흥분으로 가득 찬 공동체"의 모습은 시위 현장에서도 볼 수 있지만, 야구장의 관중들에서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관중과 집단흥분의 연결은 너무 전형적이어서 식상한 느낌마저 준다.(종교학 보고서를 채점하다보면 흔히 만나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집단흥분이 ‘어떻게’ 영속화되어 기념되는가를 좀 더 정교화해서 설명하는 것은 이보다는 덜 식상하다. 뒤르케임은 사회가 생겨나는 시원적인 순간, 그 때의 집단흥분이 어떤 특정한 대상에 “부착”된다고 설명한다. 흥분에서 비롯한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주변에 있는 자연물에 부여된다. 이것이 토템이 생겨난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이 뒤르케임의 “상징 이론”이기도 하다.

집단에 대한 이념이 특정 상징에 부착되어 표현되는 것을 뒤르케임은 ‘표상한다’(represent)라고 했다. 이 때 이념과 상징물 사이의 관계는 논리적인 필연성을 지닌 것이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양자의 관계는 자의적(arbitrary)이다. 뒤르케임은 국가의 상징인 깃발의 예를 들어서 이 자의성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뒤르케임은 ‘상징론’은 기표와 기의의 자의적 연결을 이야기한 소쉬르의 ‘기호론’과 일맥상통한다. [학자들 중에서는 비슷한 시기(소쉬르가 약간 앞선다)에 비슷한 생각을 한 두 학자간의 영향관계를 찾아보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서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 이외의 주장을 하기는 힘들다.]
나는 집단흥분이 주변의 대상에 부착되어 상징을 형성한다는 뒤르케임의 이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줄만한 좋은 예를 올해 프로야구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롯데 자이언츠의 갈매기 상징이다.



5. 부산 갈매기의 상징화

올 한 해는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이 중흥한 해라고 이야기될 수 있다. 흥행의 측면에서는 부산의 야구 열기가 되살아난 해라고 정리될 수 있겠다. 그리고 상징적인 측면에서는 롯데의 갈매기 상징이 완전히 생명력을 얻는 해라고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롯데의 상징인 자이언츠는 불모성을 지닌 상징으로 이름 외에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 채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비어있던 부분을 채워주는 상징이 등장했으니, 그것은 갈매기 상징이다. 롯데의 경기가 마무리 지어지는 시점에 관중석에서는 어김없이 “부산 갈매기” 노래가 나왔다. 그 노래는 롯데 관중들의 집단적 열광을 함축하는 노래로 굳어졌고, 롯데 팬들의 야구 관람 행위의 대미를 이루는 절차로 자리잡았다. 이 노래의 반복을 통해 롯데와 ‘부산 갈매기’의 연결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처음에 ‘갈매기들’은 롯데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 시작하였지만, 이제 와서는 롯데 야구단 자체를 상징하는 말로 성장하였다. 이제 롯데의 ‘거인들’이라는 표현은 그리 와닿지 않지만 롯데의 ‘갈매기들’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 표현이 되었다. 외국인 선수 가르시아를 가리켜 “멕시코산 갈매기”라고 하듯이.
최근의 롯데 구단의 마스코트 작업에는 상징의 이동이 반영되어 있다. 거인의 형상화를 포기하고 이제는 갈매기의 형상화를 통하여 롯데의 구단 이미지를 형성한 것. 그리고 이 형상화 작업은 롯데에 대한 응원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 올해 준플레이오프에서 정점에 달했다. 바로 사직구장(그리고 대구 구장에도) 대형 갈매기 풍선이 등장한 것이다. 비록 롯데에 대한 열광은 세 경기만에 짧게 끝났지만, 그 열광은 대형 갈매기로 흔적을 남겼다.
 
6. 집단흥분이 갈매기에 부착되다

올해 롯데 팬들의 열정은 야구판에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응원문화일 것이다. 파도타기나 부산갈매기 합창, 신문지 응원 등에 선수들 응원가, “마!”라는 함성 등 다채로운 응원이 야구장을 달구었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야구장에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중에 어떤 것이 몇 년 전부터 해왔던 것이고 어떤 것이 올해 추가된 것인지 정확히 가려내지는 못한다. 어찌되었건 올해 이 응원문화가 전성기를 이루었고, 이 문화에서 “생산된” 것들은 “집단의 창조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부산 갈매기”에만 논의를 집중한다면, 갈매기는 집단흥분이 대상에 부착될 때의 의외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수 문성재의 노래 “부산 갈매기”는 응원가로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다. 1982년에 나온 문성재 1집의 히트곡은 ‘춤추는 작은 소녀’였고 이 노래로 문성재는 10대 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에 비해 같은 앨범에 실린 ‘부산 갈매기’는 주목받지 못한 노래였다. 그 이후 가수 활동을 지속하지 않은 문성재씨에게도 사직구장에서 이 노래가 불려진 것은 의외였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사직의 야구팬들이 이 노래를 부른 것은 당시 응원단장으로 활동하던 유퉁씨에 의해서였다. 결코 흥겨운 응원가라고 볼 수 없는 이 노래는, 승리에 익숙한 팀이라기보다는 패배의 설움에 더 익숙했던 롯데 팬들의 정서에 울리는 바가 있었으리라. 이 노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보다도 더 사랑받는 노래가 된다. 그러나 이 노래의 ‘채택 이유’를 설명을 시도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앞서 말했듯이 집단흥분이 주변의 대상에 부착되는 것에는 우연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부산 야구팬들의 집단적인 정서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정서가 부착될 그 무엇이 필요했던 것이고, 하필 그 때 ‘부산 갈매기’라는 노래가 불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노래와 집단정서의 친연성이 전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필연적인 관계성보다는 집단정서의 형성이 더 중요한 현상이라는 이야기이다.

갈매기가 롯데의 상징이 되어가는 과정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개입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노래가 반복적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관중들에 의해 불려지면서, ‘부산 갈매기’는 의미 있는 노래가 되었다. 그 시작이 어찌되었든 반복해서 불려졌다는 것이 오늘의 갈매기를 있게 한 핵심적인 요인이다. 반복을 통해서 갈매기가 롯데의 상징으로 부상하게 되었고, 올해의 열기를 통해서 확고한 자리를 얻게 되었다. 앞으로 몇 년 내에, 자이언츠는 갈매기라는 새로운 상징으로 대체될 것이 확실하다.
갈매기가 롯데의 상징으로 자리잡는 과정, 이것은 뒤르케임의 토템 문양에 대한 이론을 선명하게 예증하는 사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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