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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두드림으로 통하다

by 방가房家 2023. 6. 3.

1848년 미국 뉴욕의 폭스 자매의 집에서 들렸던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를 죽은 영혼의 메시지로 해석했던 것이 심령술Spiritualism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고 흔히 이야기한다.(앤 테이브스의 경우에는 앤드류 잭슨 데이비스의 활동에 의해 1843년부터 운동의 바탕이 마련되었다고 지적한다.) 심령술 유행의 핵심적인 행위는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를 통하여 영적 존재와 소통하는 것이다. 이 행위를 ‘rapping’이라고 부르는데 영한사전에서는 “(영매와 영 사이의) 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의한 교신”이라고 적절하게 풀이하고 있지만 번역어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우리 문화에서 그런 현상이 개념화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두드림’이라고 번역하기로 한다.심령술은 1850, 60년대에 미국에서 유행하였고, 사람들은 집에서 테이블에 둘러앉아 두드림을 통해 망자의 영과 소통하였다. 1854년에 발표된 유행가 "spirit rappings(정령의 두드림)"의 악보 표지에는 이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듀크대 도서관을 통해 이 노래의 악보를 볼 수 있으며, 이 악보를 연주하고 노래 불러준 블로거 덕분에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사실 영혼과 두드림을 통해 소통한다는 것은 다소 소박하게 느껴진다. 시각적으로 대면하거나 영매의 육성을 통한 전달보다는 간접적이고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그 간접성은 고등학교 때 분신사바를 하면서 스무고개 식으로 영의 의도를 물어갈 때의 그 느낌이다. 이런 방식이 당시에 유행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두드림이 당시 최신의 테크놀로지에 부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앤 테이브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초기에 심령술사Spiritualist들은 두드림raps을 전신기 건반의 두드림taps에 비교하면서 심령과의 소통을 전보에 비유하였고, 최면술에서 배운 힘이나 유체(流體)를 전기에 비유하였다. ‘심령 전보’spiritual telegraph라는 이미지는 새롭게 일어나는 운동을 일반 심령술사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알려주었던 관념 복합체의 표현이다.
Ann Taves, <<Fits, Trances, & Visions: Experiencing Religion and Explaining Experience from Wesley to Jame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9), 172.
정령의 두드림과 전신의 두드림. 미지의 저쪽 세계로부터 전달되는 두드림은 19세기 중반 대중들에게 큰 울림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새로운 에너지원이었던 전기 역시 영적인 힘에 대한 좋은 비유가 되었다. 어떤 심령술사는 심령술 모임을 ‘전신기 건전지’에 비유하고 남녀 성원을 양극과 음극으로 비유하기도 했다.(같은 책, 174) 당시 전선기에 전기를 공급한 것은 납전지라고 하는데(자세히는 모르겠다), 심령술 운동의 바탕이 된 공동체를 건전지에 비유한 것이다.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종교경험이 당대의 기술력과 만나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는 부분. 특히 통신이나 교통과 같은 소통의 기술에 민감하게 조응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절대자와의 소통, 저세계와의 소통은 종교사를 걸쳐 중요한 주제였다. 우리나라 마을에 세워진 솟대는,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지만 원래는 메신저 오리를 통해서 하늘과 소통하려는 안테나 역할을 했던 오래된 상징이다.
망자의 영과의 소통을 하필은 똑똑 두드림을 통해 하게 된 것은 당시 강력하게 등장한 소통의 도구인 전신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한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전화가 발명되고 전신의 유행이 지나갔을 때 두드림의 경험이 주는 효과도 상쇄되었으리라. 전에 ‘텔레폰’이라는 찬송가에서 하느님과의 소통의 열망이 새로운 기술에 담겨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간단히 한 적이 있는데, 삐삐, 이메일, 휴대폰, 아이폰 등 급격히 변하는 소통 기술의 발달이 현대의 종교경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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