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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로티 벨, 선교 편지 중에서

by 방가房家 2024. 6. 29.

로티 벨, 고영자&이은상 옮김, <로티 벨 선교 편지: 1895~1897> (보고사, 2022).

 

로티 벨은 1901년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활동이 많지 않은 인물이지만, 편지를 통해 정착하던 때의 이야기를 상세히 남겨주었다.

 

1. 식생활 적응 문제. 선교사 부인들이 한국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티 벨은 그래도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보이지만,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의 불결함에 놀라는 대목이 자주 있는데, 음식 문제도 이와 연결된다.

 

1895.5.26.
많은 선교사 부인들이 한국 음식은 먹지 않으려고 하지만, 저는 그걸 먹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들의 친구가 되려면 음식 먹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많은 것에 눈을 감아야 할 것임을 압니다. 왜냐하면 어떤 음식이든 그것이 저희 기준으로 볼 때 청결하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허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제가 가끔 한국 음식을 먹는 이유로 몸이 아파질까 봐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남자들은 시골로 여행할 때 모두 한국 음식을 먹고, 드루 의사는 아주 좋아하기까지 합니다. 더러움에 대해서 한 예를 들자면, 저희가 방문했던 집의 여주인이 접시와 숟가락을 자기 치마로 닦았습니다! 아주 깨끗한 치마도 아니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입을 청소하라고 물을 주고 그 물을 뱉어낼 그릇을 준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네요. 그것이 필요하기도 했던 것이, 매워서 입안이 거의 타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친절하고 손님을 환대하기 위해서 이들은 종종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여줍니다.(126)

 

이 년 후, 자기 집에서 일하던 여성의 결혼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도, 그는 잔치 음식을 거의 먹을 수 없었다.

 

1897.6.12.
나도 힘들지만 어느 정도라도 잔치 음식을 먹어야 했다.……나는 음식이 가득 놓인 작은 상 옆 방바닥에 앉았다. 상 가운데 커다란 놋그릇에는 마카로니를 삶은 것 같은 "국수cooksu"가 놓였는데, 그것이 따뜻했다면 나도 먹을 수 있었겠지만, 차가워서 삼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릇에 매운 무와 배추 피클이[=깍두기와 배추김치가] 있었고 몇 가지 종류의 캔디와, [=], 한국 대추, , 그리고 곶감이 있었다. 나는 국수 몇 입에, 피클을 조금 먹고, 캔디와 대추를 먹어 본 다음에 더 이상은 포기했다. 그 예쁜 아가씨가 내가 젓가락을 사용할 줄 몰라서 커다란 놋숟가락으로 먹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워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한국 음식을 잘 먹을 줄 몰라서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한국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왔을 때 그들에게 보통 하는 말이다.(448)

 

 

2. 캐나다 독립선교사 맥켄지의 죽음. 그는 철저한 한국적 생활을 하던 중 일사병(혹은 영양실조)과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죽음은 서양식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는 이론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당시 서울에 거주하던 선교사들의 중론이었다.

 

1895.7.11.
안 좋은 소식은 독립선교사로 시골에 나가 있는 맥켄지 선교사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선교지에서 혈혈단신 혼자였는데 한국 열병인 "임병"으로 너무 아파하다 그만 미쳐서 자신을 총으로 쐈다. 그는 이곳에 온 지 2년여밖에 안 되었지만 한국말을 썩 잘했고, 훌륭하게 선교 사역을 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의 죽음이 선교사들이 본국에서의 재정지원 없이 토착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론이 오류라는 또 하나의 실례인 것 같다. 맥켄지 씨는 한국인들과 한국인 집에 살았고,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처럼 방바닥에서 자고 그들의 음식을 먹었다.(165-166)

 

 

3. 초기에 첩이 있는 이를 신자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로티 벨은 일부다처제를 승인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이지만, 꽤 격렬했던 당시 논쟁을 상세히 전달해주는 편이어서 의미 있는 기록이다.

 

1895.10.23.
일부다처제에 대한 토론은 길고 다양했다. 결국, 1년 간 아내가 둘인 남자에게는 세례를 주지 않는다는 임시 조건 하에 최종 결정이 1년 뒤로 미뤄졌다. 많은 남자들과 심지어는 여지들까지 아내를 여럿 가진 남자들을 교인으로 받이들이자고 하는 일이 나에게는 흥미롭고 놀랍기도 했다. 그들은 성경이 그런 입장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진과 같이 점은 남자들은 물론이고 언더우트 박사, 모켓 씨, 리 씨, 베어드 씨, 전킨 씨 둥이 아주 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않는다. 놀랍게도 레이놀즈 씨가 두 의견 사이에서 주저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내년까지는 그의 눈이 더 열리기를 바란다. 스튜어트 씨, 듀보스 의사, 허드슨 테일러 등도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포기해야 될 후처들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학대받는 본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그들이 바로 둘 이상 아내를 가진 남자들과 그들의 부인 모두를 교인으로 받아들이자는 쪽이다. 본 부인이 자녀를 낳지 못하고 둘째나 셋째 부인에게 아이가 있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본 부인에게 자녀가 있어도 그 부인과 자녀들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는 경우도 먼저 경우만큼 흔하다. 내가 보기에 올바른 해결책은 단하나, 후처를 포기하되 후처와 그 자녀들의 생계를 지원해야 한다.(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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