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문명의 발달이 종교적 상상력과 어떻게 만나는가?”라는 물음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전에 살짝 운을 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들의 종교적 상상력에서 기차라는 운송 수단이 어떻게 그려졌는가를 분석한 글을 읽게 되어 몇 가지 사례들을 간단히 정리해 놓는다. 다음 글에서 뽑은 내용이다.
John M. Giggie, ""When Jesus Handed Me a Ticket": Images of Railroad Travel and Spiritual Transformations among African Americans, 1865-1917," David Morgan & Sally Promey (ed.), The Visual Culture of American Religion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1), 249-266.
1. 글의 제목을 이루는 “예수님이 내게 차표를 주셨습니다.”(Jesus Handed Me a Ticket)라는 표현에 많은 것들이 압축되어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구원에 대한 상상력, 즉 회심(conversion)의 내러티브에서 기차는 구원을 향해 가는 경로의 이미지를 지닌다. 이 표현은 그들의 종교 경험 진술에서 인용된 것이다. 1930년대에 노예 경험을 가졌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종교 경험들을 인터뷰를 통해 모은 책, <<God Struck Me Dead>>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이 책에 나오는 다른 이야기를 번역해서 소개한 적이 있다.) 이야기에서 흑인은 기차역에서 예수님 옆에 서 있었던 강렬한 꿈 이야기를 한다. 꿈에서,
내 무릎이 약해졌고, 나는 꿇어앉아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가 꿇어앉았을 때 예수님이 내게 차표를 주셨습니다. 차표에는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일어나서 창문에서 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플랫폼에 서 있는 세 사람과 함께 내 자리로 가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God Struck Me Dead>>, 147.)
2. 원래 기차는 식민주의의 전형적인 이미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익히 경험된 바 있듯이, 기찻길 부설은 침탈을 위한 경로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복자의 입장에서 기차는 미개척지(처녀지)를 정복하는 이미지를 지닌다. 당시 미국 백인들이 가졌던 기차 이미지가 그런 것이었고, 1870년 신문에 실렸던 <위대한 서부>(The Great West)라는 아래 그림에는 그러한 기차 이미지가 나타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기차를 구원의 이미지로 수용한 것에는 다른 측면의 역설성이 있다. 그것은 기차가 해방의 공간이기는커녕 차별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노예 해방 이후에도 미국 남부 지방에는 공공시설에서 백인과 흑인의 이용을 분리하는 법안이 존속되었다. 버스에서 흑인의 자리가 따로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차에서도 백인과 흑인의 자리는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최고 우등석에는 흑인의 이용이 아예 금지되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 생활에 자리하게 된다. 어떤 경우엔 버려진 객차나 기차역이 교회 건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역의 위치는 교회 성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교회의 위치는 항상 역을 중심으로 지시되었다. 삶의 이정표는 점차 종교 경험의 이정표로 상상된다. 한 목사(J. W. Spearman)의 편지에서, 초대 교부들의 업적은 천국으로 가는 열차의 기관사의 일에 비유되었다. 그들이 한 일은 “갈보리 역에서 표를 사서 그리스도의 피로 도장을 받아 주 그리스도를 만나러 가는 승객들”의 일과도 같은 것이었다.(254)
루이지애나의 한 목사(Rev. Pierre Landry)는 헌금 모금을 위한 방법으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가상의 열차표를 팔았다. 20불부터 1불까지 특등석에서 2등칸까지 다양한 표를 팔았다. 당시 현실에서는 흑인들이 살 수 없었던 특등석 표를 팔았다는 점에서, 약간의 해방의 의미도 담고 있는 기획이기도 했다.
루이지애나의 한 목사(Rev. Pierre Landry)는 헌금 모금을 위한 방법으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가상의 열차표를 팔았다. 20불부터 1불까지 특등석에서 2등칸까지 다양한 표를 팔았다. 당시 현실에서는 흑인들이 살 수 없었던 특등석 표를 팔았다는 점에서, 약간의 해방의 의미도 담고 있는 기획이기도 했다.
4.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종교 경험은 그들의 음악에서 잘 묻어나는데, 기차에 대한 경험 역시 음악에 반영되어 있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불린 가스펠이나 블루스 중에서 기차가 구원과 관련되어서 노래되는 것들이 몇 곡 있다. 내가 구할 수 있었던 노래 중에서는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Blind Lemon Jefferson)이 부른 "All I Want Is That Pure Religion"이 있다. 읊조리듯이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노래 중간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예수님이 나의 기관사가 되어서 요단 강을 두려움 없이 건너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When you're journeyin' over Jordan don't have no fear, Hallelu.
When you're journeyin' over Jordan don't have no fear, Hallelu, Hallelu.
Journeyin' over Jordan don't have no fear,
Jesus gonna be my engineer.
Sayin'you gonna need that pure religion, Hallelu, Hallelu.
5. 기차와 구원 이미지의 결합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 로메어 비어든(Romare Bearden)의 작품 <소식>(Tiding, 1973년)에서 아름답게 표현된다. 1911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나 남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비어든에게 기차역은 할머니, 목사님 등을 만나는 장소였다. 기차는 다른 세계로부터 오는 무언가를 상징하였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라는 전통적인 종교화 주제를 재해석하여 콜라주로 제작하였다. 천사가 와서 성모에게 아기 예수에 대해 알려주는 장면에서(둘은 모두 흑인으로 묘사된다), 뒤에 보이는 기차는 기쁜 소식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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