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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90

사람 사람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했다. 미국 인류학자들이 북미 원주민들의 삶을 “기록”할 때, 그들은 원주민들의 “사람”이라는 범주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스 사상이었든, 성서에 바탕을 둔 것이었든, 서양 문화에서는 인간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해서 인간이 자연계의 다른 존재들과 구별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북미 원주민들의 세계관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은 호모 사피엔스 종만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동물들이나 식물, 그리고 바위와 같은 자연물까지 “사람”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자연의 사물들이 사람의 범주 안에 들어있다는 것들은 그들과 인간들과 다름없는 “관계맺음”--상호존중을 포함해서 의사소통, 선물 교환 등의 관계--을 가진.. 2023. 5. 31.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0.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는 에이스 침대의 광고가 나온 것이 1993년이니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광고의 인상은 또렷하다. 당시 초등학생들이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질문에 침대를 골랐다는 일화도 여전히 생각난다. 위치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기존 범주를 교란하는 것은 상당히 유효한 전략이다. (이 글 참조) 종교라는 언어의 쓰임새를 정리하는 중이다. 내 연구의 입장에서, 종교는 담론(discourse)이다. 이 말은 종교라는 말에 어떤 본질이 내재해 있는 게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의 정치적 입장에서 따라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언어라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라는 말을 놓고 여러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 2023. 5. 31.
젠장맞을 삼단논법 프라이스(Robert Price)라는 신학자의 "Damnable Syllogism"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읽다가 든 몇 가지 생각. 1 이 글의 제목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켄트웰 스미스의 다음 문장에서 비롯한다. “몇몇 사람들에게나 설득력 있는 이런 논리를 갖고서, 대다수의 인류의 삶이 전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또는 지옥에나 갈 것이라고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너무 무대뽀이다. 내 이웃을 정죄(damnation)하는 것은 삼단논법(syllogism)에 의존하기에는 너무 중차대한 문제인 것이다.” 정죄의 삼단논법(damnable syllogism), 이렇게밖에 번역하지 못하는 내 어학 실력을 용서해주길 바란다. (종교를 전공으로 하긴 하지만, 종교와 관련된 미국의 일상 언어는 너무 어렵다. 미국인들의 무의식.. 2023. 5. 31.
중심의 상징, 그리고 권력 “중심의 상징”이라는 개념은 엘리아데의 이야기 중에서 아마 가장 잘 알려진 이론일 것이다. 엘리아데는 [우주와 역사], [종교사개론], [이미지와 상징]과 같은 주저서들에서 중심의 상징을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인간은 물리적인, 균질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세계의 중심을 설정하고 공간을 의미화한다. 중심의 상징을 통해 혼돈의 공간을 질서의 공간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인간 실존의 기본적인 양태이다. 그래서 종교 전통들은 중심을 이야기한다. 세계의 중심은 하늘과 인간을 소통시켜주고, 한편으로는 지하세계와 맞닿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간은 성스러운 나무, 성스러운 산, 그리고 성스러운 도시들을 통해 중심의 상징을 구축해 왔다. 고대 서남아시아의 지구라트와 바빌론, 이슬람의 메카, 중세 .. 2023. 5. 31.
종교 개념에 관련된 책들 오늘은 내가 요즘 공부하는 과정을 살짝 스케치해 본다. 내 지도교수는 켄 모리슨(Kenneth Morrison)이라는 할아버지이다. 그는 북미 원주민 종교 전공자인데, 특히 북미 원주민과 백인 문화의 만남(encounter)의 양상에 관심이 많다. (북미 인디언 종교를 공부하지도 않는) 내가 그를 지도교수로 삼은 것은 그가 혼합현상(syncret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 만남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 기독교를 기술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 바로 이 ‘만남’에 관한 것이어서, 그에게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는 요즘 약간 다른 관점의 연구를 시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서구의 개념들, 이를 테면 종교라든지 자연/초자연의 이분법의 적용으로 인해 북민 인디언 종교의 서술이 전반적.. 2023. 5. 31.
신정론이라는 물음과 해답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라는 신학 용어가 있다.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신정-론(神正論) [--논] 명[철학] 신은 악이나 화를 좋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신은 바르고 의로운 것이라는 이론. 이 세상에 악이나 화가 존재한다는 이유를 들어 신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이론에 대응하여 생긴 것이다. 종교 전통에서 이것은 참 고전적인 물음이다. 자기 주변에서 착한 사람이 고난을 받고 못된 인간들이 떵떵거리고 잘 사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거의 보편적인(?) 경험에 속한다. 그럴 때마다 과연 이 세상의 법칙성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이 세계를 주재하는 신은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솟구쳐 오르게 된다. 이 세계의 본질을 고통으로 규정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치는.. 2023. 5. 31.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아프리카 유산 미국의 인류학자 헤르스코비츠(Herskovits)는 1941년에 (The Myth of the Negro Past)라는 책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역사적 유산에 대한 다섯 가지 신화(허구)가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학계에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하나하나 논박하였다. 다섯 가지 신화는 다음과 같다. 1. 흑인들은 천성적으로 어린애같은 성격이라, 불만족스러운 사회 상황에도 쉽게 적응하여 그것을 기꺼이, 심지어는 기쁘게 받아들인다. 이는 노예보다는 차라리 소멸을 선택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과는 반대된다. 2. 아프리카에서 보다 열등한 부류가 노예가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더 지적인 부류는 습격당했을 때 노예 상인의 덫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했기 때문에 화를 면했을 것이다. 3. 흑인들은 아프리카 전 대륙.. 2023. 5. 31.
얼굴과 이름은 다를지라도 여전히 당신을 믿고 있습니다 캐리비언 베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카리브 만에 있는 서인도 제도에 있는 나라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그리 익숙한 이름들이 아닐 것이다. 바로 이 지역에 혼합현상(Syncretism)의 중요한 사례들이 있다. 이 지역은 노예 무역을 통해 아프리카 사람들이 강제로 이주된 곳이다. 아프라키에서 온 노예들은 전통 문화를 몰수당하고 기독교를 강요받았다. 예를 들어 1685년의 아이티 흑인법에 따르면, 노예들은 도착한 지 8일 이내에 의무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전통 신앙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이런 기막힌 상황에서 아프리카인들은 기독교의 외피 안에 전통 신앙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행태의 종교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들은 가톨릭 성인들에 아프리카 신들을 겹쳐 놓고 숭배하였다... 2023. 5. 31.
현대 종교학 이론 수업 “Religion502: Contemporary Theories of Religion,” 이것은 이번 학기(2004년 봄학기)에 들은 한 수업이다. 현대 종교 이론들을 정리하는 이 수업은 대학원 필수 과정이다. 이 수업은 내게 중요했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한다면, 내가 미국에 건너가 공부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이론에 대한 갈증”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원에 있을 때 내가 갖고 있었던 막연함 두려움 중 하나가, 내가 세계의 이론적 흐름에서 이탈해 있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70년대에 유학하신 선생님은 70년대의 학문을 가르치고, 80년대에 유학하신 선생님은 80년대의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 한국 대학원 커리큘럼의 현실이었다. “현대” 이론은 간헐적으로 다루어지기에, 대학원생들끼리 세미나라는 일종의 비정.. 2023. 5. 31.
“나는 당신같은 외부인이 두렵습니다.” 종교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 그것은 실제적으로는 종교를 믿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일이며, 그리하여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하게 된다. 어떠한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지든 간에, 연구자는 그 종교인에게 타인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 설정에 관련된 논의는 종교학 방법론에서 (시원한 해답 없이) 많이 논의되는 주제인데, 로리스라는 인류학자의 한 논문이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 여기 간추린다. (Elaine J. Lawless, "I was afraid someone like you... an outsider... would misunderstand": Negotiating Interpretive Differences between Ethnographers and Subje.. 2023. 5. 31.
자료 획득과 인문학하기 인문학 대학원생이 되면, 약간이나 가지고 있던 낭만이 깨어지며 인문학의 현실을 직면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유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선 그저, 주제를 극도로 한정지어서, 내가 겪었던 자료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겉으로는 인문학이 고매한 이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인문학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은 자료(reference)이다. 이 평범한 명제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대학원의 입문 과정에서 있는 일이다. 자료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고, 그래서 그 물질의 취득 과정에서 한국에서 학문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제3세계 지식인으로서의 위치라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문제들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 2023. 5. 31.
고전 종교학사 수업을 듣고 강의 제목: Classical theories of Religious Studies 2003년 가을 학기, Joel Geroboff 교수 이 강의의 실라부스를 처음 접할 때 교재목록을 보고 느낀 것은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접하는 생소한 학자의 글은 별로 없었다. 새로운 시각을 위해 수업 도입부에 제공된 아티클도 , 내가 직접 참가한 수업은 아니지만, 몇 해 전 정진홍 선생님의 수업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진 에서 발췌된 것이었다. 처음 듣는 학자도 없고, 어느 정도는 읽거나 많이 들어본 텍스트로 짜여진 이 수업이, 처음에는 만만하게 보였다. 하지만 읽은 책이든 아니든 일주일에 한 권 정도씩 읽고 그걸 내 관점에서 정리하여 글을 쓰는 게 쉽게 진행될리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난 놀라울 정도로 많은.. 2023. 5. 31.
기적의 종류 이승환의 노래 중에 "덩크 슛"이란 게 있다. "덩크슛 한 번 할 수 있다면, 내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이승환처럼 키가 작은 한 소년이 덩크슛 해봤으면 하는 소망을 말하는 것이 노래의 내용이다. 그리고 노래의 말미에서 덩크슛의 소원은 이루어진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지만, 들릴 듯 말듯한 라디오 중계 방송 소리로 슛 장면이 중계된다. 그것은 한 현대 도시인의 꿈이다. 그것이 이루어진 것을 하나의 "기적" 이라고 표현한다면 깜찍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소망의 이루어짐을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수사법을 넘어서는 경우를 우리는 종교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흔히 기적은 초자연적인 신의 개입이라고 이야기된다. 예수의 부활에서 볼 수 있듯이 불가능함을 이루는 정도야 종교사에서 기적이라고.. 2023. 5. 31.
세계 종교 수업 시간에... 며칠 전 “세계의 종교” 수업 시간의 칠판을 그대로 옮겨 본다. 이 수업은 일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입문 강의로, 난 조교로서 이 수업에 참관한다. 보시다시피 동아시아 종교를 다루는 대목이다. Taoism cosmic harmony / social harmony Chuang-Tuz, Holiness=Simplicity, power=relation to Tao Tao Te Ching, yin/yang, Wu-Wei Reality: process, dynamic flow human being: essentially good Confucianism Confucius, Chun-Tzu=superior man Li = principle of Harmony, Yi = internalization Jen(Ren).. 2023. 5. 31.
삶을 문자화한다는 것 “삶을 문자화 한다는 것, 그것은 문화적인 폭력일 수 있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주제가 요즘 학계에서 자주 제기되는 문제의식 중 하나인 것 같다. 아사드(Talal Asad)의 (The Genealogies of religion) 5장은 번역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국 인류학자들의 글을 분석하면서, 그는 인류학자들, 특히 상징을 다루는 학자들의 작업에는 “상징은 언어적 의미로 완전히 이해가능하며, 따라서 우리의 언어로 번역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얼핏 보면 당연하게 보이는 전제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의 상징 체계, “상징들이 의미하는 바”를 캐내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 번역이라는 것, 일종의 문화적 호완성을 만드는 것이다... 2023.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