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공부91 스미스와 올바른 종교학 조너선 스미스의 학문 세계를 정리할 일이 생겨 읽은 책이 샘 길(Sam Gill)의 올바른 종교학: 조너선 스미스를 바탕으로>(2020)이다. 2017년 스미스가 사망한 이후 그의 학문적 성과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출판된 책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수십 년째 스미스와 길의 책을 읽으며 종교학을 공부해 왔던 터라 둘 다 친숙한 학자이다. 그 둘의 대화를 듣는 기분으로 읽은 책이다. 샘 길은 북미 원주민(Native American) 종교 연구자로, 스미스와 전공 분야는 달라도 이론적 관심을 공유하며 작업해 왔다. 예를 들어, 스미스의 꼼꼼한 자료 비평에 자극받아, 원주민 자료가 학자들에게 변용되어 인용되는 방식을 추적한 이야기 따라가기>(Storytracking, 1988)를 저술한 바 있다.스미스의 학.. 2024. 7. 17. 바빌론 강가에서 부른 귀향 노래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는 디스코 그룹 보니엠(Boney M.)이 불러 잘 알려진 노래이다. 그런데 이 노래를 둘러싼 의미의 껍질을 하나하나 들여다볼수록, 만만치 않은 종교적 가치가 이 문화적 상품 안에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여건이 된다면 보니엠의 노래를 플레이해서 장중한 인트로와 더불어 글을 읽어주시면 좋겠다. 1. 우리 대부분에게 이 노래는 옛날 팝송의 하나이다. 노래 첫 구절을 우리 귀에 들리는 대로 변형해서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By the rivers of Babylon]라고 장난치는 데서 보이듯이(몬더그린mondegreen이라고 부른다), 단박에 의미가 통하지는 않는 영어 노래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팝송이 미국 노래가 아니라는 사실은 유념할 필요가 있.. 2023. 7. 16. 코로나 시대의 좀비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 녀석은 날마다 좀비 놀이를 해달라고 성화다. 좀비 흉내를 내고, 총으로 좀비 쏘아죽이는 놀이를 하면서 저녁 시간이 다 간다. 나는 이쪽 문화에 시큰둥해서 끝까지 본 좀비 영화도 별로 없지만,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좀비는 이 시대의 지배적인 상징이다. 좀비의 유래와 영화적 발전에 관해서는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꽤 알려진 편이지만, 그 변화를 종교연구자의 관점에서 정리해보고 싶다. 여기에는 상징의 생명력에 관한 중요한 쟁점들이 녹아 있다. 공동체 바깥의 존재 좀비는 아이티의 부두교 주술사 보코르(bokor)가 노예처럼 부리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다. 보코로는 특정한 사람에게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독극물을 사용하여 가사(假死) 상태에 이르게 하고 무덤에 집어넣는다. .. 2023. 6. 4. 동작구 종교 이야기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산 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고장의 내력을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종교 이야기라면 귀를 쫑긋 세우는 직업적 습관 탓에, 그리고 최근에 관련된 작업을 한 덕에, 귀에 익은 내 주변 지명들에 얽힌 종교적 사연들이 하나둘 쌓였다. 현재 지자체에서는 동작구를 사육신묘를 근거로 ‘충효의 고장’으로 브랜드화하고 있다. 하지만 동작구는 유교 문화 외에도 숱한 종교들의 만남과 자리 잡기가 명멸한 곳이다. 나는 이 글에서 근대 이후의 종교적 변화들을 기독교들을 중심으로 풀어가려 한다. 1. 노량진이 경기도 과천군에 속했던 대한제국기 이야기다. 이 지역에는 도성 외곽의 무당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1906년에 일제가 노량진에 인천수도공사를 설립하자, 일제에 의한 토지와 가옥의 무.. 2023. 6. 4. 일상화된 코로나의 아픔 1. 코로나 천만 시대에 좋아진(?) 것이 있다.(코로나의 위험을 경계하는 것이 여전히 필요한 태도이겠으나, 사회적 태도 변화를 말하는 것이니 너그러이 보아주셨으면 한다.) 이젠 코로나가 일상적인 질병으로, 덜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누그러지고 있다. 2년 전에 우리가 이것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겼는지를 떠올린다면 이제는 심리적으로 이를 극복하고 위드코로나에 접어들고 있음이 실감난다. 물론 인식의 변화에는 의학적 환경이 기본 바탕이 된다. 모두 알고 있듯이, 한편으로는 코로나19라는 같은 이름을 쓰고 있지만 코로나는 여러 변이를 거쳐 실질적으로 다른 질병이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차례의 백신 접종을 통해 견뎌낼 몸이 사회적으로 준비되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이와 더.. 2023. 6. 4. 페티시즘 개념을 통해서 본 개신교와 무속의 만남 개신교 선교사의 페티시즘 개념에 관한 글. 이 주제에 대해 옛날에 쓴 논문을 대폭 수정하고 자료를 추가해서 이번에 발표한 글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섞어 엄청 길게 올려본다. 1. 머리말 2. 페티시즘 개념사: 만남과 물질 (1) 페티시즘의 출현 (2) 종교학의 페티시즘 (3) 경제학과 심리학의 페티시즘 3. 선교 현장의 페티시즘 (1) 전도된 물질적 가치 (2) 페티시 파괴: 개종의 세레모니 (3) 페티시즘의 학문적 서술 4. 맺음말 페티시즘 개념을 통해서 본 개신교와 무속의 만남 1. 머리말 2008년에 제작된 영화 는 숙희(송혜교 분)가 무당의 딸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독실한 재미교포 개신교 집안에 시집간 이후를 그린 이야기이다. 남편이 사망한 이후 숙희는 옆집 젊은 부부와 가.. 2023. 6. 4. 하필 이럴 때 종교학 강의라니 (이 글은 비대면으로 진행된 필자의 인간과 종교 강의 인사말이다. 종교에 대한 말을 꺼내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강의 인사말이라는 형식으로 답답한 마음을 정리해본 것이다.) https://crrc.tistory.com/2555 우리는 사회적 거리를 두고 특별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채 학기를 시작하는 일은 경험해보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사회 활동이 정지하다시피 한 지금, 경제를 비롯한 우리 일상의 여러 영역은 타격을 입고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종교 역시 그러합니다. 종교사적으로 꼽힐만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어, 아마 코로나19가 지나간 이후 종교계 모습도 많이 바뀔 겁니다. 학생들은 아마 종교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수강 신청을 했겠지만, 한두 달 지난 지금 시점에 그.. 2023. 6. 4. 인디언 기우제 “인디언 기우제”는 작년 말의 유행어이다. 유시민 작가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한 표현이다. 죄가 있어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다고 믿고 뭔가가 나올 때까지 계속 수사를 들이미는 것을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라고 불렀다.(2019년 12월 3일 알릴레오) 이 표현은 호응을 얻어 인터넷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올해 초에는 진중권이 “비는 기우제를 드리자마자 주룩주룩 내렸다”라고 되받아치면서 뜻이 더 혼탁해졌다.) 여기서 인디언 기우제란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 결국 비가 온다는 뜻이다. 나는 검찰에 대한 유시민의 비판에 동의하지만 이 표현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인디언을 무도한 검찰에 빗댄 것은 인디언의 명예훼손이고, 인디언이라는 한 무리의 사람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을 .. 2023. 6. 4. 치아와 종교 이번에 한국종교문화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실린 글이다. 내가 일하는 곳의 여건 때문에 애정을 갖게 된 종교 현상들을 간단히 언급했다. 언젠가 논문으로 쓰려고 눈독 들인 현상들. 치아와 종교 치의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한 지 일 년이 되었다. 이 분야에서 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시작한 일이었다. 의료의 목적은 단순한 통증의 경감이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감소이다. 환자를 단순한 물리적 치료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만나야 한다는 각성이 의학계를 바꾸고 있다. 따라서 의료 교육에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접근은 중요하며 종교학은 이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오늘날 좋은 의료 교육기관이 되기 위해 인문학 교육은 필수이며, 치의학대학원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새.. 2023. 6. 4. 종교는 무엇에 담겨 전달되는가? #1 미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 한 무슬림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올렸다. “쿠란의 디지털 파일을 삭제하면 신성모독인가요?” 쿠란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도 적용해야 하느냐는 이 질문에 대해 채택된 답글은, 불경한 의도를 갖지 않고 즉 공경하는 마음을 가진 채 파일을 삭제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가적인 반응으로는 화면에 디스플레이된 상태의 쿠란은 신성하지만 파일 상태는 그렇지 않으므로 삭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2 몇 년 전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홈페이지를 활성화하기 위한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한창 블로그에 빠져 있던 나는 홈페이지를 연구자들의 팀블로그 형식으로 운영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내 의견에 대해 한 선생님이 게시판에 올릴 같은 내용을 .. 2023. 6. 3. 빅데이터와 종교 연구 두 달 전 쯤 연구모임 소식지에 쓴 간단한 글이다. 거창한 제목에 이런 저런 말을 했지만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종교연구자들이여 가끔 엔그램 하고 놀자.” 1.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라는 것이 혹시 내 공부와도 연결될 수 있을까 궁금해서 책을 조금 뒤적거려 보았다. (세종서적, 2014)에는 빅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여러 사례들이 나온다. 누군가는 쇼핑카트로부터 정보를 수집하여 구매 패턴과 브랜드 충성도를 분석한다. 누군가는 블로그 글들을 수집하여 성향에 따라 인간군을 선별한다. 선별된 인간 유형은 마케팅, 선거 전략, 수사, 연애 사업 등에 활용된다. 이전 같으면 별 쓸모가 없는 잡스러운 정보들이 ‘많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쓸모를 찾아나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하지만 돈을 벌거나 실제적.. 2023. 6. 3. 원시종교 강의를 시작하며 소위 세계종교 지도라는 것을 보면 그 자의성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한국은 중국종교를 의미하는 갈색으로 칠해져 있다. 물론 엉터리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지도에는 불교 색으로, 어떤 지도에는 기독교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그 어느 것도 한국인의 종교적 삶을 일방적으로 단순화한 것에 불과하다.) 많은 신자를 보유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전파된 주요 종교인 세계종교. 그러나 지도에는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세계종교를 헤아리고 남은 공간을 채워주는 ‘기타 등등’의 종교가 있다. 옛날 표현으로는 원시primitive 종교, 요즘 순화된 표현으로는 기초primal 종교, 부족 종교, 토착indigenous 종교 등으로 불리는 종교들이다. ‘원시종교’는 세계종교의 잔여 범.. 2023. 6. 3. 종교학의 테크 트리 종교학과의 첫 만남을 만들어주는 1학년 전공과목을 준비하다 보니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이 이 학문을 배우는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지에 대해 반성할 부분이 많이 눈에 띈다. 얼마 전 한 선생님께 종교학도 테크 트리를 제대로 갖추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다. 무엇이 준비 단계이고 무엇이 고급 단계인지 온통 헝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목들의 체계 문제라기보다는 그 체계를 운영하는 현실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일단 내가 아는 몇몇 체계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내가 나가고 있는 한 종교학과의 과목 체계. 단순한 편의 구성이다. 큰 줄기는 이론 분야와 전통 분야이다. 이 두 계열의 각 분야들이 고루 섞여 있고 그것이 1,3,4학년에 배치되어 있다. 이 체계는 좀 고.. 2023. 6. 3. 두드림으로 통하다 1848년 미국 뉴욕의 폭스 자매의 집에서 들렸던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를 죽은 영혼의 메시지로 해석했던 것이 심령술Spiritualism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고 흔히 이야기한다.(앤 테이브스의 경우에는 앤드류 잭슨 데이비스의 활동에 의해 1843년부터 운동의 바탕이 마련되었다고 지적한다.) 심령술 유행의 핵심적인 행위는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를 통하여 영적 존재와 소통하는 것이다. 이 행위를 ‘rapping’이라고 부르는데 영한사전에서는 “(영매와 영 사이의) 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의한 교신”이라고 적절하게 풀이하고 있지만 번역어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우리 문화에서 그런 현상이 개념화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두드림’이라고 번역하기로 한다.심령술은 1850, 60년대에 미국에.. 2023. 6. 3. 종교학사에서 구조적인 선행이라는 논리 뒤르켐은 의 논의를 시작하면서 이른바 ‘원시종교’를 다루는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원시의 추구가 새로운 맥락에서 이루어짐을 밝힌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원시, 그리고 기원의 문제가 연대기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라는 접근방식의 전환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연구는 종교의 기원이라는 낡은 문제를 다시 제시하되 새로운 조건 아래 제시하는 것이다. 만약 기원적인 것이 절대적인 최초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문제는 절대 과학적인 것이 아니게 되겠지만, 이 점은 반드시 배제되어야 한다. 종교가 존재하기 시작한 절대적인 순간은 있을 수 없으며, 그 지점은 마음속으로 우리를 그곳에 갖다놓는 우회적인 방법으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인류의 제도들처럼, 종교는 어.. 2023. 6. 2.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