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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종교경험 언어들의 번역 사정

by 방가房家 2023. 6. 2.
서양 사람들에게 동양의 종교 언어들이 가진 신비함은 다음과 같이 예기치 못했던 효과를 자아낸다.
1997년에 출판된 (영어) 책 명단에는 “Zen”(禪)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197개의 제목들이 있었다. 그들 중 77개는 선(禪)을 생활의 어떤 분야에 적용한 지침서들이다. 이 중에는 <<선(禪)과 창조적 경영>>, <<골프 기술의 선(禪)>>, 심지어는 <<선(禪)과 기저귀 가는 방법>>도 있다. 같은 유형이 도교에 대한 대중 서적들에도 나타난다. <<경영의 도(道)>>, <<야구의 도(道)>>, <<모성의 도(道)>> 등.  (Thomas Tweed & Stephen Prothero (eds.), <<Asian Religions in America: A Documentary History>>(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339.)

그들은 선이나 도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말에 무언가가 있는 듯 싶어서 많이들 사용한다. 정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 대단한 것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것이 말의 유행의 이유가 된다. 서양 사람들을 비웃을 것 없다. 그것은 그 사회에 존재하지 않은 개념이 들어올 때 늘상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 생활을 돌이켜보면, 서양 사람들의 경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어휘들이 그런 식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정확치 않지만 그럴듯한 번역어들, 무언가 중요할 것이라는 믿음만이 있는 그런 언어들이 우리의 사고와 말을 채우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말이다.

소걸음님의 글을 통해 소개받은 <<번역어 성립사정>>에는 중요한 성찰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그 중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지금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번역할 때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또한 중요하다. 사회(社會), 개인(個人), 근대(近代), 권리(權利), 자유(自由) 등 동아시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낯선 개념들을 소개할 때, 혹은 자연(自然)과 같이 전에 존재하던 어휘에 새로운 서구적 관념을 덧입힐 때의 사정들을 아는 것은 그 사유의 과정의 측면에서도, 그리고 현재까지 미치는 작업의 결과와 효과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그러한 경우, 없던 관념을 이해시키고자 했던 초기 번역자들은 기존의 말들을 이용하고 문맥의 조정을 통하여 의미를 통하게 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 노력이 한계에 다다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한자 조어(造語)를 통한 새 개념을 사용하게 된다.
새 개념을 만들어 집어넣는 것은 어찌 보면 간단한 해결책인데, 그 새 개념은 의도치 않은 효과를 낳는다. 의미 소통을 위한 번역자의 절치부심은 망각되고, 새로운 말은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뭔지 모르게 있어 보이는 신비한 속성을 지닌 말로서 유행을 하게 된다. 저자는 이것을 카세트 효과라고 부른다. 뜻은 잘 모르지만(아니면 대충 안다고 생각하면서) 너도 나도 ‘자유’니, ‘민주’니 떠들어대지만 사실 그에 대한 이해는 별로 없는, 그러한 상황이 근대 동아시아에서는 많이 빚어졌다. 자기도 잘 모르면서 남발하는 거창한 언어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생활이 전부 번역어 탓은 아니겠지만, 상당 부분은 번역의 문제에 기인한다는 저자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더구나 의미를 소통하고자 했던 노력의 과정도 생략된 채, 서양 개념에 대한 일본인들의 조어를 그냥 받아들인 우리나라의 경우, 카세트 현상은 더 심하다고 생각된다.

‘종교’ 역시 그러한 번역어 정착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탐구되어야 할 단어이겠지만 그에 대한 생각은 다음으로 미루어둔다. 개인이나 사회만큼 심각한 말들은 아니어도, 종교 분야에서도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멋있어 보여서 사용되는 말들이 상당히 많은데, 한 예를 들면 에스터시(Ecstasy)가 떠오른다. 망아경(忘我境)으로 흔히 번역되는 이 단어의 용례는 무당의 경험, 신비체험 뿐 아니라 사랑,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견되며, 마약의 이름 덕분에 더욱 중층적인 의미를 형성하였다.
 

우리 문화권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접하는 일은 전공 분야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데, 얼마 전 그런 녀석들을 무더기로 만난 적이 있어 간단히 기록해 놓는다. 최근에 읽은 중요한 종교학 책이 테이브스(Ann Taves)의 <<Fits, Trances, and Vision>>이다. 제목부터가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fits"는 발작, 경련 등으로 사전에 나오지만, 이 경우 종교적 신비경험에 동반된 몸의 부르르 떨림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병적인 뉘앙스가 아닌 다른 단어를 찾아야 한다. "trance"도 어렵다. 그냥 트랜스라고 하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vision"은 환상(경험)이라는 번역이 정착되는 추세인 것 같은데 두고 봐야겠다. 나는 환시(幻視)라는 번역을 생각했는데 이 단어의 까다로움에 대한 내 생각은 이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 책은 종교경험을 지시하는 용어가 학자나 종교인들에 의해 어떻게 다양하게 규정되어 왔는지를 탐구한다. 동일한 종교경험이 명명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어떻게 경계지워지고 이름이 붙여지고 그에 따라 죄악시되거나 칭송되었는지를 미국 종교사를 따라 대각성운동부터 20세기 초반 심리학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여기에는 종교경험에 대한 숱한 이름들이 나오는데, 그것들은 서구 사회의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 사용된 말들이다. 상응하는 말이나 경험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매우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보고 이 책을 번역하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첫 단락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이 책은 종교적 용어와 세속적 용어로 다양하게 설명된 일군의 비자발적 경험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비자발적 경험에는 통제되지 않는 육체적 움직임들(fits, bodily exercises, falling as dead, catalepsy, convulsions), 무의식적인 발화(crying out, shouting, speaking in tongues), 비정상적 감각 경험(trances, visions, vocies, clairvoyance, out-of-body experiences), 그리고 의식이나 기억의 전환(dreams, somnium, somnambulism, mesmeric trance, mediumistic trance, hypnotism, possession, alternating personality)이 포함된다.

괄호 안의 단어들은 그냥 영어 그대로 노출시켜 놓았다. 이들 열거된 단어들 중에는 번역할 말이 주어진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꽤 된다. 책 서두에 나온 말들인 만큼, 이 단어들은 종교경험을 일반화하여 표현하는 용어들이고 우리말로 번역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책의 본문에서 다루어지는 내용들은 더 기가 막힌데, 거기서 나오는 단어들은 특정 역사적 시점에서 통용된, 그래서 현대 영어에는 존재하지 않고 사료에나 존재하는 말들이라 번역이 될 수 없고,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표현들이 많다. 만일 내가 정신과 의사였다면 이런 말들을 번역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낯선 어휘들을 원어 그대로 발음하며 지적인 권위를 누리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우리말로 인문학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 문제가 되는 것이리라.

이러한 신기한 경험들을 우리말로 표현하는 데 가장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곳은, 학술적인 작업에서는 많이 보지 못했고, 회의주의자들의 사전 한글 번역판이 긴요한 성과를 축적하였다고 생각한다. 영어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단어들도 눈에 많이 띄지만, 그것들 역시 번역한 웹지기의 고심의 결과들임은 분명하다. 학자들도 제대로 하지 않은 외로운 작업을 한 그 분께 고마움을 표한다. (위에 열거된 단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옮길 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으로 미루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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