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966

사람을 일컫는 방房 네덜란드의 한국학자 왈라벤의 다음 논문에는 “무당의 범주”라는 부록이 짤막하게 실려 있다. 간단하지만 주목할만한 내용이어서 번역해 실어둔다. Walraven, Boudewijn C.A. "Shamans and Popular Religion Around 1900," In Henrik H. Sorensen, ed. (Copenhagen: Seminar for Buddhist Studies, 1995), 130. 신문에서 ‘방房’으로 끝나는 다음과 같은 이름들을 볼 수 있었다. 방은 제주도에서 무당을 가리키는 말인 심방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을 가리키는 접미사이다. 이 이름들이 개인의 별명을 의미하지 않음은 그 맥락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첫 번째 이름[작두방]은 겉으로는 그런 식으로도 사용되긴 했지만. (.. 2023. 4. 27.
절에서 지내는 제사 현재 절에서 지내는 천도재에 관한 논문에서 흥미로운 진술을 볼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한 절의 주지께서 하신 말씀. 제사를 점점 절에서 많이 지내는 추세죠. 이제 제사 많은 집 같은 경우에는 하루로 정해가지고 지내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벌써. 1년 제사 지낼 거를 쫙 모아서 하루에 다 잡아가지고 절에서, 아주 합동천도제로 해버리는 거야.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는 날은 작은 아들은 교회 다녀, 셋째아들은 천주교 다녀, 하나는 뭐 절에 다녀, 가지각색이야. 막 요새 그렇다고 다종교시대니까. 그러니까 염불 하다보면 ‘하느님 아버지시여’ 하는 사람도 있고, ‘성부와 성자, 성신…’, 하하! (연구자: 큰절은 합니까?) 그런 사람은 큰절 안하죠. [구미래, “불교 천도재에 투영된 유교의 제사이념”, 편.. 2023. 4. 27.
일본의 초목불성론 일본 종교에 대한 한 발표에서 듣게 된 초목성불론. 일본다운 기묘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일본 중세에는 ‘초목실개성불’(草木悉皆成佛)이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경문처럼 널리 칭해졌다. “초목이라도 성불할 수 있다”는 뜻의 초목성불론은 원래 중국에서 온 것이다. 중국에서 초목성불론의 주장은 공空이라는 절대적 입장에서 볼 때 중생(인간)과 초목(자연)은 동질적이며, 양자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데에 그 핵심이 있다. 그래서 중생이 성불하면 초목도 성불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붓다(깨달은 자)의 절대적인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가 평등하게 진리 그 자체이고 거기서는 중생과 초목의 구별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초목성불론이 일본에 수용되자 미묘하게 변질되고 만다. 즉 일본에서 초목성불론은 공이나 부처의 절.. 2023. 4. 27.
유교 귀신론 간단 메모 논문 두어 편 읽고 정리할 내용은 아니지만, 더 깊이 공부할 기회는 없을 것 같아 유교 경전에서 귀신에 관련한 중요한 원문 몇 개를 정리해 본다. 유학의 귀신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원문들이다. 참고한 논문은 다음과 같다. 김현, “귀신: 자연철학에서 추구한 종교성”, 한국사상사연구회, (예문서원, 2002). 차남희, “16`17세기 주자학적 귀신관과 의 귀신관”, 40-2 (2006년): 5-25. 1. 원시유교 경전에서 귀신론 논의의 역사를 관통하는 두 줄기는, 제사 대상으로서의 귀신의 존재를 승인하려는 태도와 자연현상의 일환으로서 합리화하는 태도라고 생각된다. 고대 문헌에서 이 두 태도를 볼 수 있다. 귀신의 덕을 찬양하는 은 제사에서 받들어지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이다.(후에 다산은 이 구.. 2023. 4. 27.
누구든지 무엇인가 가르쳐줄 수 있다 에코의 에는 갑자기 ‘학문적인 겸손’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제목만 보면 에코 분위기와는 다른 내용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역시 그는 하나마나한 훈계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음은 그의 체험에서 비롯한 조언이다. 어느 날 파리의 어느 책 손수레에서 필자는 조그마한 책자 하나를 발견하였다.……그 책은 발레라는 어느 수사의 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필자는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레 수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되풀이할 뿐 전혀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한 불쌍한 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가 그 책을 계속 읽은 것은 ‘학문적인 겸손’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고집 때문이었고 필자가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필자는 계속 읽었고, 어느 지점에선가 거의 괄호 안에 들어있듯이 아마도.. 2023. 4. 27.
빗나간 해석 기독교인들은 일본의 압제에 애국적 순교자가 되었다. 평범한 한국인은 기독교인이 되어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침략자에 대한 저항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1919년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선언문을 발표했을 때 서명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기독교인이었다. 그 당시 한국의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불과했다. 최근에 일어난 박해는 폭력의 정도에서 일본인들의 박해를 따라갈 수 없지만 여전히 계속 이어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남한의 군사독재에 맞서 대중의 저항이 커지자, 교회는 개혁을 강하게 요구했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함께 전국 시위를 주동하고, 주교와 신자들은 정치범이 되어 수없이 감옥에 갇혔다. 한국 교회는 해방신학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고친 민중신학으로 발전시켰다. 반정부 지도자 김대중은.. 2023. 4. 27.
중국 육조시대의 사후세계 이야기 차은정 선생님의 발표를 통해 중국 육조시대의 지괴소설(志怪小說) 중 한 편을 구경하게 됨. 소개받은 이야기는 에 실린 글로, 죽었다가 열흘 있다 다시 살아난 조태(趙泰)의 이야기이다. 그는 죽어있던 동안 그가 구경한 사후세계의 모습을 상세히 전한다. 처음에 그는 병졸들에게 끌려가서 대기하다가 명부에 이름이 적힌 것을 확인한 후 생전에 했던 행위의 선악에 대해 심문을 받는다. 그는 관리가 되어 지옥을 순찰하게 된다. 모래를 나르는 지옥과 불지옥을 다니다 부모와 형제를 만나기도 한다. 그는 부처님이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제도하는 ‘개광대사’라는 공간을 본 후, 지옥의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다른 업보를 받는 ‘수변형성’이라는 공간을 구경한다. 사후세계의 심판이라는 관념과 윤회설이 어떻게 결합되어 설명되는지 이.. 2023. 4. 27.
마나로서 지녀진 예수 필요한 부분이 있어 선생님의 옛 글을 찾아보았다. 정진홍, “토템과 마나의 예수”, 217호(1976년 7월): 54-58. (이 글은 후에 (1986)에 수록된다.) 파일: Totem_Mana_Jesus.pdf 종교학 용어 셋을 인상적으로 사용해서 한국의 예수 이미지가 정립되지 않았음을 비판하는 글이다. “교회 안에서 토템이 되어버린 예수상, 신학에 의해서 터부가 된 예수상, 그리고 신도들에 의하여 마나로 화해진 예수상”(58)이 그 내용이다. 조금 더 상세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이처럼 교회는 예수 토템의 기치를 휘두르며 세상-다른 토템-과 스스로를 구분하는 열심 속에서 예수의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신학은 교회와 신도들을 질책하는 오만한 자리에서 예수의 이미지를 터부화시켰으며, 신도들은 제각기의 삶의.. 2023. 4. 27.
다이몬, 신이 아닌 존재 플라톤의 에서 ‘다이몬’에 대해 설명해주는 대목을 만나다. 은 에로스에 대한 찬양으로 이루어진 대화를 싣고 있는데, 그 중에서 중심으로 이루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 더 정확하게는 소크라테스가 들은 디오티마의 이야기이다. 소크라테스는 디오테마에게 배운 것을 소개한다. 그 중에는 에로스가 신이 아니라는 내용이 있다. 그는 묻는다. “그러면 도대체 에로스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는 가사적인(죽을 수 있는) 것과 불사적인 것의 중간자라 할 수 있지요.” “디오티마여! 그 중간자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소크라테스여! 그것은 위대한 정령이라 할 수 있지요. 사실 정령(daimon)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신과 가사적 존재의 중간자라 할 수 있답니다.” 정령은 신이 아니고, 신과 인간을 매개.. 2023. 4. 27.
신, 궁극적 실재의 방편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신을 믿는 것”이라고 종교를 정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이 기독교 위주의 종교 개념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의는 계속 상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을 강조하는 기독교식의 정의를 교정하는 가장 좋은 사례는 뭐니 뭐니 해도 불교이다. 유럽의 불교인들은 서구적인 종교 개념의 문제를 가장 민감하게 알아차린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독일의 불교”라는 김명희 선생님의 발표의 한 대목이다. 달케(Paul Dahlke, 1865-1928)는 종교가 인격신에 대한 믿음과 동일시되면 종교로서 불교를 정의할 때 불교가 ‘신 없는 종교’의 구조를 갖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문제시하였다. 그리하여 달케는 종교는 ‘신에 .. 2023. 4. 27.
크루소의 종교 소설 는 1719년에 출판되었다. 맥그레인은 이 소설에 나타난 타자와의 만남의 양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크루소의 경우에 그와 타자 사이에 가로놓인 것은 19세기 진화론적 인류학의 경우처럼 시간이 아니라 종교이다. 역사적 시간이 아니라 지리적 종교가, 직선적 시간이 아니라 공간적 종교가 가로놓인 것이다. 크루소의 외딴 섬은 기독교적인 지리 내에 위치한다. 지구 표면은 무엇보다도 기독교적 관심의 모눈이라는 위도와 경도 아래 존재한다.…… 크루소가 보기에 ‘야만인’들은 벌거벗었고 자신은 옷을 입었다. 그들은 벌거벗었고 그는 총으로 무장했다. 그들은 벌거벗었고 그는 영혼에 기독교로 무장하였다. 타자는 원시인(primitive)이 아니라 야만인(savage)이다. 기독교적인, 종교적인 인식 내에서 타자가 출.. 2023. 4. 27.
생활난의 원인을 말해주는 창세기 일본 그리스도인과 ‘생활’이라는 특이한 주제에 끌려 들어갔던 발표회. 일본 여성 근대교육가로서 유명한(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된) 하니 모토코(羽仁もと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계부라든지, 가정잡지, 교육 등 다소 독특하면서도 우리 생활과 무관하지 느껴지지 않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타이트’한 생활 관념이 기독교 신앙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 발표자는 하니 모토코의 신앙이 ‘독특하다’고 표현하였는데, 그 독특함은 창세기에 대한 그녀의 독창적인 해석에서 잘 드러난다. 그녀가 창세기에서 읽어내는 주제는 ‘진보를 위한 싸움’이다. 그녀에 따르면 태초에 아담과 이브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영성의 눈을 떠서 자신들의 ‘생활’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하느님 아버지.. 2023. 4. 27.
겐테가 본 한국종교(2) 19세기말, 20세기초 서양인들의 종교묘사는 서울에 변변한 종교건물이 없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대표적인 예는 비숍) 겐테도 그러한 예를 따라 서술을 시작하였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원구단을 본 자신의 관찰을 집어넣은 것.(원구단의 기능에 대해서는 문묘(文廟)와 헛갈린 것 같다.) 이상하게도 조선의 수도에는 절이 없다. 다른 아시아 지역, 완전히 문명화되었거나 어설프게 개화된 세상 어디에서도 전례가 없는 사실일 것이다. 궁궐이 있고 수십만명이 사는 거대한 수도에서 한두 종교는 신봉할 만한데, 사찰이 없다니 신기할 따름이다.……서울의 중심 황제의 궁궐 한가운데에는 유일하게 사찰 지붕이 하나 눈에 띄었다. 조선 관료들의 모범이 되는 중국 현자들의 제사를 모시는, 베이징의 거대한 사원을 소박하게 모방해 지은 .. 2023. 4. 27.
겐테가 본 한국종교(1) 독일 기자 지그프리트 겐테(Siegfried Genthe)는 1901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였고, 그가 취재한 기록은 1901년 10월~1902년 11월에 에 연재되었다. 이 내용이 그의 사후에 책으로 발간된 것은 1905년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다음 책으로 매우 깔끔하게 번역되어 있다. 지그프리트 겐테, 권영경 옮김, (책과함께, 2007). 짧은 기간 한국에 있었지만 그의 관찰력은 상당히 날카롭다고 생각된다. 사실 종교만큼 날카로운 관찰의 힘이 무뎌지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사유의 습관의 힘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영역이기에, 이전 관찰자들의 기록을 답습하지 않기가 힘든 게 종교에 대한 이야기이다. 겐테의 경우에도 이전 관찰자들과 동일한 관찰 대상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 2023. 4. 27.
매럿 이전과 이후의 종교학사 매럿에 대한 한 논문 소개에서 이야기하였듯이, 매럿은 종교학사에서 거의 잊혀져가는 학자에 가깝다. 그런데 키펜베르크는 매럿이 전애니미즘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시점(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을 종교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지적한다. 굉장한 통찰이다! 20세19세기 종교학은 원시종교를 통한 종교 기원의 탐구가 유행했던 시기이다. 물론 그 시기의 종교 연구도 ‘야만인’의 종교를 문명사회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 끌여들였다는 점에서, ‘그들’과 ‘우리(서양인)’ 간의 연속성 상에서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해의 진전을 평가해야 할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야만인은 야만이고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비슷한 부분은 고대의 ‘흔적’ 혹은 ‘잔존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 시기 원시종교.. 2023.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