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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의 근원과 삼교의 진리 종교란 개념은 근대 서구에서 만들어졌으며 비서구사회에 근대 사회가 형성되면서 이식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만만치 않은 반론을 만난다. 즉, 비록 종교(宗敎)라는 언어 자체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지금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현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것. 유교, 불교, 도교가 독립된 전통으로 존재해 온 것이 좋은 증거라는 것. 종교라는 말이 생긴 것이 무어 대단한 변화냐는 것. 그러나 19세기 말 일본인들이 서구 열강들과의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religion’의 번역어로서 ‘종교’라는 말을 고안함으로써, 동아시아에 종교라는 말이 도입된 것은 작은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이름 없이 존재하던 현상에 이름이 붙여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구조가 도입되고 근대라는 틀거리.. 2023. 4. 25.
"종교와 독서"에 관련된 책들 Robert Brown, "Reading (Writing) and Religion," Religious Studies Review 31-3,4 (July, October 2005): 171-177. 종교와 독서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리뷰를 읽었다. 경전을 “어떻게” 읽느냐라는 문제는 그 종교 공동체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해 왔지만, 정작 그런 식으로 연구된 성과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예컨대 “그들은 성서를 어떻게 읽느냐?”라는 물음을 갖고 조사한다면 한국 개신교의 이른바 근본주의에 대해서 핵심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에서 리뷰된 책들은 대부분 미국 종교사에 관련되어 있지만 한국 종교 연구에도 중요한 시사를 줄만한 책들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미국 기독교는 .. 2023. 4. 25.
종교와 춤이라는 주제 샘 길(Sam Gill)은 북미 원주민 종교를 전공으로 하는 종교학자인데, 몇 년 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종교에 대한 책을 냈고, 요즘은 종교와 춤이라는 주제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연구에 대해서는 지금 출판 준비중인 책 “To Risk Meaning Nothing: Essays on Play and Dancing”이 나오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의 그의 책 서문을 보면 무용학 전공한 딸내미 내외와 함께 춤 교실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종교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며 관심 주제를 넓혀가는 학자이다. 그런데, 이런 자유로운 학풍의 소유자는 제자에게는 곤란한 상대일수도 있다. 북미 원주민 전공하는 친구에게 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지도교수로 삼기에 .. 2023. 4. 25.
"북미원주민 종교" 서문 중에서 샘 길(Sam Gill)의 는 오래되었지만(1982년) 아직도 삼빡한 개론서이다. 이렇게 참신한 관점에 입각해서 종교 현상을 서술한 책은 지금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책의 서론에서 인상 깊은 구절들을 좀 옮겨본다. 의미심장하게도, 질은 콜럼부스가 서인도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시아로 간다고 믿었던 콜럼부스의 삽질로 만난 사람들. 유럽인들의 세계관에는 새 대륙과 그 사람들을 설명할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지의 상태에서 인디언이라는 이름만 붙여 놓았을 뿐이다.(인디언이라는 말은 이 책에서 북미원주민으로 대체된다) 그들에 대한 이해는 나아진 것이 별로 없기에, 질은 지금 우리의 상황은 콜럼부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우리가 “인디언”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2023. 4. 20.
훌륭한 풍채 없는 예수 이사야 53장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구약 구절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제2이사야가 “고난받는 종”에 대해 예언한다. 이 예언은 기원전후의 메시아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후에 사람들이 예수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이 부분을 구약에 있는(즉, 예수 탄생 이전에 이미 하느님에 의해 예고된) 예수에 대한 예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53장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된다.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보르헤스의 중 “.. 2023. 4. 20.
청일전쟁 때 일본 불교 많은 사람들이 종교가 전쟁을 말리지는 않을망정 앞장선다는 비판을 한다. 그런 예는 세계 도처에 수도 없이 깔려있지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이다. 요즘에는 부시 덕분에, 그리고 보수 개신교단의 집회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의 전범 이미지가 증대되는 것 같다. 친구들 중에는 종교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유일신 종교들이 판을 쳐서가 아니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불살생의 불교가 받아들여진다면 세상이 조용해 질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종교에 있어서의 본질적인 속성을 이야기하는 것에 반대한다. 본질, 속성, 정수.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심심풀이 이야기에서나 가능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종교와 폭력에 대한 .. 2023. 4. 20.
종은 주인의 돈이다 1850년대, 남아프리카 선교사 콜렌소(John William Colenso)는 줄루족 은기디(William Ngidi)의 도움을 받아 성서를 번역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서를 읽던 은기디는 다음 부분에서 아연실색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남종이나 여종을 몽둥이로 때렸는데, 그 종이 그 자리에서 죽으면, 그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루나 이틀을 더 살면, 주인은 형벌을 받지 않는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1:20-21) 은기디가 읽은 성서에서는 재산이 “돈”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종을 돈이라고 일컫는 구약의 비인륜적인 태도에 은기디는 항의한다. 콜렌소 선교사는 이해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당시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그 지성적인 현지 기독교인과 함께 .. 2023. 4. 20.
영어 잘 하는 목사님 조용기 목사의 신학을 논할 만큼 책을 읽어보거나 설교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에 관련된 글을 좀 보면서 눈에 띄었던 것은 그의 삶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에서 조용기 목사의 인생을 서술한 부분이 있다. 목사님에 대한 존경이 가득한 서술인데, 어린 시절 목사님의 비범함을 내보이는 측면 중 하나는 영어이다. 요즘 어린이 마냥 영어 배울 환경이 주어진 것이 아닌데도 성취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대목이다. 그가 다니던 부산공고에는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평소 어학에 뛰어난 재질을 가지고 있던 그에겐 영어를 다 깊이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학교공부를 하면서 틈만 있으면 운동장에 있는 병사들에게 쫓아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렸고, 영어실력은 하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등.. 2023. 4. 20.
스테파노스의 종교 스테파노스(Stephanos)라는 그리스식 이름을 가진 한 폴란드인이 1700년대 말 (지금의 남아공에 있는) 케이프 타운에 도착하였다. 그는 원래 용병으로 그 곳에 온 것이었는데, 용병 일이 끝나고 나서는 한 가게에 자리를 구했다. 그는 가게에서 위조 지폐 만드는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위조 사실이 적발되고, 그는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녹슨 못으로 티크 나무로 된 벽을 갉아내고, 나무 부스러기는 자기가 먹고 빈자리에는 빵을 채워넣는 방법으로 감옥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스테파노스는 북쪽으로 가,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 Society)의 새 선교 본부로 피신한다. 선교사들은 스테파노스가 자기들을 죽을까봐 겁이 나 그를 쫓아냈지만, 기독교인다운 친절로 성경, 고기, .. 2023. 4. 20.
민간신앙의 어휘, 깨끗함 인상 깊게 들었던 강연이라 가끔 생각이 나곤 했는데, 오늘 글이 눈에 띄어서 관련된 부분을 옮겨 놓는다. 이필영 선생의 “민속학에서 본 종교”의 일부이다. 요는 민간신앙에서 사용되는 살아있는 어휘들에 대해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시된 예들이 주옥같다. 가능하면 민간신앙의 현장에서 쓰이는 우리네의 민속적 종교 개념으로 우리의 민간신앙을 파악하고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위한다, 모신다, 부정, 깨끗한, 비손, 뱅이, 장승치기, 해물리기, 잔밥먹이기, 탈, 살(煞), 주당(周堂), 손, 강철, 옥녀각시, 춘향아씨, 성주께, 썩은 달, ‘돌팍에도 사뭇 빌면 걷는다’, ‘삼신도 가르칠 대로 간다’, ‘귀신도 먹으면 먹은 값한다’ 등의 무수한 주요한 낱말과 어귀는 민간신앙을.. 2023. 4. 20.
한국이라는 컨텍스트 한국 문화가 성서에게 어떠한 컨텍스트가 되었는지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처음 한국에서 기독교 신앙을 전개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관건이었을 것이다. 19세기 말에 한국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이 이 미지의 땅에서 오히려 자기 땅보다도 성서의 맥락에 친숙한 면들을 만나 경이로워했다는 기록들이 가끔 눈에 띈다. 그러니까 본국인 북미보다도 한국 땅에서 성서의 배경인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에 근접한 모습들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발견들은 우연한 것들이고 본질적인 연관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리가 흔히 그렇게 하듯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과의 유사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우리 생각 방식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리라. 그럼에도 그러한 발견은 당사자의 삶에서 중요하다. 성서를 삶의 텍스트로 살아오던 이.. 2023. 4. 20.
만남 이야기들 에는 한국인들과 기독교의 만남의 양상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 떼거지로 나온다. 이런 자료들을 찾아다니는 나로서는 감사할 노릇. 다만 이 책에서 견지하고 있는 신학적 관점에는 이론이 있다. 전통의 상징체계와 기독교 상징체계의 상호교섭을 일종의 난맥상으로 보고 이런 것을 고쳐 “기독교 정통”을 잘 배워야 한다는 일종의 계몽적인 태도가 은연중 드러난다. 관점의 차이야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좀 아쉽다. 새로운 이론적 성찰의 조명을 받고, 기독교사를 서술하는 새로운 언어를 구성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좋은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하긴 내가 매달리고 있는 게 그런 작업인데, 나 역시 아직 그럴듯한 언어를 제공하지 못하는 마당에 남 작업에 아쉽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할 처지는 못된다. 이제 다 .. 2023. 4. 20.
수용과 만남 그렇다면 우리는 종교문화의 만남이란 본질적으로 하나의 상징/표상과 또 다른 상징/표상과의 만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그것을 종교문화의 ‘수용’이라고 언표한다면 그것은 다른 ‘우주론’과 ‘신화-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수용’이라는 개념은 문화 현상의 기술에서는 그 적합성을 승인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수용’에 대칭되는 ‘만남’의 개념이 지닌 함축을 고려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이란 이미 사실 기술 개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기독교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관장하는 우주론이라고 생각한다면, ‘기독교 수용’이라는 표현은 참 가볍다. 우주론은 다른 것과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변화하는 것이지 전면적으로 교체될 수 있는 .. 2023. 4. 20.
구체적인 죄 개념 한국 기독교 수용의 핵심적인 부분인 죄 개념에 대해서 이처럼 구체적이고 명료한 분석을 본 적이 없다. 읽으면서 고마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찌 이것이 충남에 제한된 이야기겠는가. 우리 나름의 죄 개념 형성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신앙 양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충남의 기독교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중요한 종교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 성원들이 죄를 충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죄에 대한 정서적 강박관념과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 개념은 정통 기독교의 원죄에 대한 강조나 인간의 철저한 한계에 대한 고백이 결여된 채 오로지 “행위의 죄” 또는 “도덕적인 죄”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고민하고 가슴 철렁 .. 2023. 4. 20.
초기 한국 기독교의 영광스러운 이미지 아직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 책은 참 좋은 시도이고 내가 찾던 책이라는 확신이 든다. 연구대상과의 거리가 확보되지 않은 것이 한국에서 이루어진 대부분의 기독교사 연구의 문제들이고, 이것이 숨겨진 전제로 계승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한 접근 방식의 장단점을 논하는 식으로 초점을 흐리고 싶지 않다. 그것은 학문으로 성립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기독교 수용 과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결여된 접근방식이다. 한국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현재 한국 기독교에 편만해 있는 초기 선교사들과 한국기독교의 초창기에 대한 ‘영광스러운 이미지’에 묻혀 딴 나라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즉 ‘가난하고 순박했던 그들은, 매우 온정적이었던 선교사들을 만나, 기독교의 정순한 복음을 훌륭하게 흡.. 2023.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