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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레 기리시탄 가쿠레 기리시탄(かくれ キリシタン)이란 '숨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의 일본어이다. 16세기 천주교가 일본에 전래된 이후 200년이 넘게 일본 정부는 천주교를 금지한다. 그 혹독한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일단의 천주교인들이 있었는데, 자신의 신앙을 숨기기 위해 성모상 대신 (십자가를 뒤에 새긴) 관음상을 사용하는 등 은폐의 방법을 사용한다. 그런데, 대를 이어 숨겨 온 이들의 신앙은 점차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갔고, 후에 천주교가 공인된 이후에, 이질감으로 인해 그들은 천주교회로 복귀하지 않는다. 상당히 특수한 사례이다. 이 사례는 종교적 실천과 이념 체계가 어떠한 상호 관계를 갖는지, 어떻게 서로를 변형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흔히 의례는 이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같은 이념을 지니면서 다른 .. 2023. 4. 19.
메노키오 노인의 기독교 -"치즈와 구더기"에서 “모든 것이 혼돈이었습니다. 흙, 대기, 물, 불이 함께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었고, 우유로부터 치즈가 만들어지듯이, 거기서 벌레들이 생겨났는데, 그 벌레들은 천사였습니다. 신성한 권위에 의해 하느님과 천사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은 천사였고, 하느님 역시 계시었는데, 그 역시 그때 동시에 그 덩어리로부터 창조된 것입니다. 그는 왕이 되어 네 대장, 루시퍼, 미가엘, 가브리엘, 라파엘을 거느렸습니다. .....................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하느님의 자녀들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분은 우리들과 동일한 본성을 지녔는데, 다만 더한 위엄을 지녔을 뿐입니다. 마치 교황이 우리와 동일한 사람인데 권.. 2023. 4. 19.
로베르 성인의 어떤 수행법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천국에서는 손가락 놀리듯이 좆을 마음대로 놀릴 수 있을거라고 상상했다. 마치 악수를 하듯이, 꼴리는 대로가 아닌 마음대로의 섹스를 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정욕, 이것은 기독교사 내내 수도사들에게 일차적으로는 극복의 대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여자 역시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차분하고 신중하기 이를 데 없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논문의 행간에도 여자들에 대한 공포, 그래서 야기되는 적개심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이다. 로베르 성인(Robert of Arbrissel)은 여자들을 위해 헌신한, 11-12세기에 활동한 수도사였다. 일생동안 많은 여자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런 그가 행한 수행 방식은 다소 엽기적이다. 그의 수행에는 .. 2023. 4. 19.
중세의 여자 취급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서양 중세 남성들의 고민은 어떻게 말 안듣는 여성을 복속시킬 것인가였다. 하지만 그 고민의 차원이 달랐다. 그 시대는 살과 피가 튀는 살벌한 시대였고, 여자들이 문자 그대로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은 시대였다. 이러한 말도 안되는 취급은, 창세기 신화의 이브에 대한 해석을 통해 정당화되곤 하였다.(특히 대중적 차원에서는 더 심했다.) 몇가지 자료를 살펴 보자. 1. 프랑스 한 지방의 관습법. 여기서 마누라한테 맞는 남자들은 범죄자로 규정되었다: “부인에게 두드려맞는 남편은 체포해서, 당나귀에 얼굴을 꼬리쪽으로 거꾸로 태워서 망신을 줘야 한다.” 2. 13세기 보베 지역: 부인이 남편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를 거부할 때, 남편는 부인을 팰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3. 14세기 보르두 관습.. 2023. 4. 19.
민주주의의 제3의 물결과 기독교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새뮤엘 헌팅턴의 책 중에 "제3의 물결: 20세기 후반의 민주주의화"이라는 책이 있다.(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았다.) 토플러 책과는 다른 책으로, 20세기 후반, 한국을 포함해서 남미, 아시아, 남부 유럽 등의 민주화 과정을 제3의 물결로 묶어 다루고 있다. 꽤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 중간에 종교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논하는 대목이 있다. 헌팅턴의 주장은 선명하기 이를 데 없다. "기독교 없는 곳에 민주주의 없다!" 헌팅턴은 숫자를 통해 논의를 펼친다. 이 기간 중 민주주의화 된 곳 몇 나라. 그 중에서 기독교 국가 몇 개. 이런 식이다. 헌팅턴의 똘아이 기질 잘 드러나는 논법이지만, 그 논법은 상식에 아주 부합하는 것이라 격파하기에 좀 시간과 노력이 든다. (헌팅턴의 기본 주.. 2023. 4. 19.
성스러움과 폭력 성스러움과 폭력 류성민의 [성스러움과 폭력](살림, 2003)은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의 논의를 이해하기 좋게 해설해주는 책인 동시에 여러 측면에서 보완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지라르의 책에는 흥미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폭력은 인간 사회에 상존하는 위협이고 종교 제도는 이 폭력을 제어하는 사회적 장치라는 게 요지이다. 폭력과 종교는 상반된 것이라는 상식을 뒤집어 종교의 성스러움과 폭력은 아예 본질적인 관련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완전히 낯선 생각은 아니다. 우리가 “희생양”이라는 말을 일반 사회의 맥락에서 사용할 때 그런 생각이 전제에 놓여있다.) 지라르의 책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문학 평론에서 출발한 작업이라 약간은 생소한 그리스 문학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서,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 .. 2023. 4. 18.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미국에서 노예제를 놓고 벌어진 교회내의 논쟁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교회가 성서를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교훈을 제공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학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주제는 못 된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미국 뉴 멕시코 대학에서 이 문제를 전공한 학자의 책이 나와 있다. [두 얼굴을가진 하나님] (김형인 지음, 살림, 2003). 얇고 쉽게 쓰여진 책이지만 담고 있는 정보는 유용하다. 노예제 찬반을 놓고 미국 종교인들이 어떤 구절을 동원하고 어떤 논리를 구사하였는지를 잘 정리해주고 있고, 아울러 미국 노예제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들도 요약되어 있다. 게다가 이 내용으로 박사논문을 쓴 학자답게 노예제와 관련된 학술적 논쟁들.. 2023. 4. 18.
종교와 스포츠 이창익, (살림, 2004) 내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처음 실감하게 해주는 것은 사람들의 몸짓이었다. 그닥 유쾌한 것은 아니다. 여유없는 황급한 몸놀림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여전히 부족한 거친 움직임들. 그런 것들이 사람들이 띄엄띄엄 살던 사회에 익숙해있던 내게 이 사회를 상기시켜준다. 몸짓 속에는 이 사회가 압축적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미세한 몸짓의 차이와 변화를 놓고서 할 말이 참 많다. 우리 몸 속에 새겨진 역사, 문화, 삶의 환경에 대해 풍성한 이야기가 가능하므로. 서점에 갔다가 아는 선배가 새로 쓴 책을 발견했다. [종교와 스포츠 –몸의 테크닉과 희생제의]라는 책이다. 아, 멋진 일이다. 책을 통한 만남이라니. 어쩌면 당사자와의 만남 자체보다도 더 반가운 일이 될 수 있을 정도.. 2023. 4. 18.
몇몇 잡스러운 상식들 를 읽다가 새로 알게 된 짜투리 이야기들. 미국 역사와 문화 구석구석을 다루는 책이다보니, 막힐 때도 많다. 미국 사람들에게 상식일 이런 이야기들을 미리 좀 안다면 책이 술술 읽힐 텐데, 그래도 책 읽다 막히는 부분 있으면 찾아보는 것도 요즘처럼 시간이 남으니 가능한 일이다. 학기중이라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책의 주된 논의는 제쳐 놓고, 새로웠던 사실 몇 개를 정리해 본다. 1. In God We Trust "In God We Trust"라는 슬로건. 너무 유명해서인지 책에서 제대로 설명도 안하고 넘어가는 내용이었는데, 한참 읽고서야 감이 잡혀서 얼른 내가 갖고 있는 미국돈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 모든 미국 화폐와 지폐들에는 "In God We Trust"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미국의 공공생활에.. 2023. 4. 18.
Touchdown Jesus 학교 서점을 구경하다가 요즘 미국 종교사 교과서로 널리 사용되는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미국 종교사 분야에서 인정받는 저자가 쓴, 매우 흥미로운 주제의 책, "터치다운 지저스"라는 책을 사고야 말았다. 제목은 알쏭달쏭하지만, 부제를 통해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미국사에서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의 뒤섞임." 터치다운은 미식축구 용어로, 골을 넣었다는 것이다. "터치다운 지저스"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책의 처음 부분을 읽으면 나온다. 미국에서 가장 큰 가톨릭 학교인 노틀담 대학은 유명한 미식축구팀을 갖고 있다. (나도 텔레비젼에서 이들의 경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 학교의 미식축구 경기장은 우연히도 도서관 건물과 맞닿아 있는데, 그 도서관 벽면에는 손을 올리고 있는 예수가 그려져 있.. 2023. 4. 18.
미국서 배우는 공부/ 우리 학문하기 탈식민주의와 학문하기는 까다로운 주제인데, 명료한 언어로 쓰여진 책을 하나 만났다. 심재관의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일단 잘 이해된 언어가 신뢰감을 준다. 어려운 주제인데 참 쉽게 읽힌다. 서구 문헌학, 오리엔탈리즘, 불교학, 일본의 근대 학문 그리고 한국의 불교학에 관한 이야기들... 자세히 알지 못했던 부분인데 잘 정리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서구 탈식민주의 이론들을 잘 정리해서 소개해주는 책이냐 하면, 그 반대이다. 서구의 이론적 논의들을 충분히 소화하면서도 아시아와 한국의 근대의 상황, 그리고 현재의 학문의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책이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마저도, 저자의 입장과 주장이 참으로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미덕은 인정할 것이다. 난.. 2023. 4. 18.
"Ritual Process" 전에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과연 “Ritual Process"가 어떻게 번역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제의 과정? 제의 절차? 여기서 process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 걸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아프리카 엔뎀부족의 입문 의례에서 나타나는 제의 구조를, 일반 사회가 돌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틀로 확대 적용하는 짜임새를 지닌다. 그 확대 적용 과정에서 터너는 코뮤니타스(communita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넣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터너가 이 책에서 말하는 제의의 과정은 (5장 첫부분에 설명이 되어 있는데,) 통과 의례의 삼단계, 즉 분리-전이-통합(다른 용어로는 pre-liminal, liminal, post-liminal)이다. 통과 의례에서 .. 2023. 4. 18.
기적의 종류 이승환의 노래 중에 "덩크 슛"이란 게 있다. "덩크슛 한 번 할 수 있다면, 내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이승환처럼 키가 작은 한 소년이 덩크슛 해봤으면 하는 소망을 말하는 것이 노래의 내용이다. 그리고 노래의 말미에서 덩크슛의 소원은 이루어진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지만, 들릴 듯 말듯한 라디오 중계 방송 소리로 슛 장면이 중계된다. 그것은 한 현대 도시인의 꿈이다. 그것이 이루어진 것을 하나의 "기적" 이라고 표현한다면 깜찍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소망의 이루어짐을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수사법을 넘어서는 경우를 우리는 종교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흔히 기적은 초자연적인 신의 개입이라고 이야기된다. 예수의 부활에서 볼 수 있듯이 불가능함을 이루는 정도야 종교사에서 기적이라고.. 2023. 4. 18.
요양을 떠나며 (2005.2.15) 1. 최근에 내 삶과 무관했던 생경한 어휘들을 사용하게 되는 데, 오늘 한국으로 “요양”을 하러 떠난다는 말도 그 하나이다. 한국처럼 복잡한 나라에 요양을 간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들리긴 한데, 어쨌든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한국에 들어가서 “근신”할 예정이다. 이 또한 낯설다. 2. 내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편의상 종교가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무신론자라는 부적절한 개념으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반 정도는 종교가 없는 이들인데, 그 누구에게도 무신론자라는 개념은 맞지 않는다. 이건 우리나라에는 필요없는 언어의 수입일 뿐이다.) 조금 더 진실한 답변을 해주어야 하는 상대에게는 나는 “도교 신자”라고 말해준다. 사실 이 단어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 첫째, 우리 .. 2023. 4. 18.
밥원일은 어찌될 것인가... (2005.1.24) 나는 지나칠 정도로 몸과 마음의 상관성을 긍정하는 사람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어떤 일에 짜증을 내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나는 그 이유를 내 배 속에서 찾는다. “어, 내 성질이 왜 이러지? 배가 고파진 건가? (혹은 먹은 게 잘못된건가?)” 이런 식이다. "기분이 안 좋아보여"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배고파서 그래"라고 답하기 일쑤이다. (이런 유물론적 사유를 남에게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를 들어, 이전에 연애할 때 여자 친구가 나에게 성질을 부리는 날에 “얘가 배가 고픈가?”라는 식으로 어설프게 대처했다가 낭패본 적이 좀 있었다.) 내 몸에 먹을 것, 영양가가 충분히 공급되었는지가 최우선의 고려대상이다. 그게 해결되지 않고서는 평소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 2023.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