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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선교의 어려움 Ellis, John Tracy, ed. Documents of American Catholic History (Chicago: Regnery, 1967), 1: 80-81. (William Hutchison, Errand to the World, p.19에서 재인용) 인디언들 개종 작업에서 한 가지 어려움은, 어떤 사람이든 반대편으로 돌려놓지 않는 그들의 풍습에 있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의견대로 남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메리카는 신학적인 의미에서 순교를 당하는 소망을 품고 갈만한 곳이 전혀 아니다. 이 야만인들은 종교 때문에 기독교인을 죽이는 법이 없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싸움이 붙었거나 야만스러워졌거나 술취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들은 .. 2023. 4. 20.
힌두교에 대한 이미지들 “세계의 종교들” 과목 교과서를 읽다가 힌두교에 대한 서술이 눈에 띄었다. 라는 세계 종교 입문서인데, 힌두교에 대한 장은 참 잘 쓴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힌두교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서술한 부분을 아래에 한 번 옮겨 본다. 어떠한 은유들이 인도인의 생활에서 이 전통이 갖는 의미를 우리에게 지시해 줄까? 어떤 사람들은 열대 우림의 생태를 이야기한다. 그 곳에서는 무성한 잎들이 아무런 통제 없이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지역 주민들이 잘 알고 있는 분명한 생장의 유형을 따라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시골 장터(bazaar)를 걸어가는 것을 상상한다. 주의 깊게 관찰하고 물어보는 법만 터득한다면, 그곳에서 어떤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에게는 강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레 떠오.. 2023. 4. 20.
정약종의 <주교요지> 정약종, 하성래 감수, (성황석두루가서원, 1986). 를 읽어보면 18세기말 한국 가톨릭 교인의 기독교 이해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알 수 있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은 평생 자신의 신앙을 지킨 인물이었다. 그가 쓴 는 신자들에게 널리 읽혔던 책으로 한국에 가톨릭을 전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양반 집안 출신의 그가 기독교를 이해한 것은, 마테오 리치의 에 소개된 보유론적인 방식이었다. 즉, 유교의 이상을 완성시켜주는 종교로 기독교를 이해한 것이었다. 마테오 리치의 책이 기독교 이해의 주된 원천이었기에, 는 의 내용들을 나름대로 풀이해서 간략하게 서술한 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요약이 아니라는 데 이 책의 매력이 있다. 기독교 교리 소개의 사이사이에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문장들이 알.. 2023. 4. 20.
큰 신이 우세하다니까 성당으로 가는 수밖에 언젠가 읽은 종교인류학 책에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느 부족에서 현지조사를 하는 인류학자가 있었다. 그는 그 부족의 전통 의학, 다시 말해 무의(巫醫)의 치병의 효과를 굳게 믿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열병에 걸렸다. 며칠을 앓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그는 부족의 무당을 만나서 부족 전통의 치병 의례를 치루어야 한다고 우겼다. 그는 겨우겨우 무당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를 본 무당은 뜻밖에도 대번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빨리 자동차 불러서 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가라고... 그렇게 해서 인류학자는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이다. 언뜻 들으면 허무 개그처럼 들리겠지만, 나에겐 묘한 감동을 준 이야기였다. 자신이 연구하는 전통에 대한 미련할 정도의 신뢰가 일단 감동적이다. 종교인류학 교과서.. 2023. 4. 20.
안정복의 천지창조설 옛날에는 세균의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아서 부패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기를 놔두면 생명이 저절로 생겨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과학사에서 이런 생명의 자연발생설이 폐기되는 것은 19세기 후반 들어서였다. (관련글: 생명의 기원) 그러니 옛날 사람들이 부패를 천지 창조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한 생각이 아니었다. [치즈와 구더기]에 등장하는 16세기 이탈리아 농민 메노치오는 치즈가 부패하고 구더기가 들끓는 장면을 포착하여 천지 창조의 모델을 구성하였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모든 것이 혼돈이었습니다. 흙, 대기, 물, 불이 함께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었고, 우유로부터 치즈가 만들어지듯이, 거기서 벌레들이 생겨났는데, 그 벌레들은 천사였습.. 2023. 4. 20.
[문서]외우는 기독교 옛날 한국인들에게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외우는 것이었다. 기독교를 “가르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일단은 교리문답을 외우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다음은 프랑스 신부의 보고서 내용이다. 우리는 교리문답을 글자 그대로 외우게 합니다... 많은 교우들이 처음 공부할 때 알아듣지 못한 의미를 뒤늦게, 특히 교리반 강론이나 교리 강의에서 알아듣게 됩니다... 따라서 서울 교구에서는 비록 어린이들과 예비자들에게 필요한 정식(定式)을 제공하는 데 그칠지라도 계속 교리문답 외는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1929년 보고서,” [서울교구연보 2], pp. 239-240.) 외우도록 시킨 것은 선교사이지만, 그걸 신나서(?) 열심히 외운 것은 한국 신자였다. 이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 신자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 2023. 4. 19.
신화의 번역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에 관한 한 논문에서 “신화의 번역”이라는 주제에 관련하여 유명한 언급을 남겼다. 시는 심각한 손상을 입지 않고서는 번역될 수 없는 종류의 말이다. 반면에 신화의 신화적 가치는 가장 졸렬한 번역을 통해서도 보존된다. (Levi-Strauss, [Structural Antropology], p.210.) 얼마 전 내 책장에 있는 해적판 신화집들을 정리했다. 번역자 이름도 없고, 대부분 서투른 영역일 그 책들을 버렸는데, 레비-스트로스의 말에 따르면 버려서는 안 되었던 모양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언급은 다소 대담하다. 그는 인류 정신의 보편성을 상정하고, 그 보편성이 신화를 통해서 표현된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언급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신화의 번역 가능성에 대한 그의 과도한 .. 2023. 4. 19.
흄, <기적에 관하여> 종교학의 시작을 어디에 놓는지는 학사를 기술하는 학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막스 뮐러를 종교학의 아버지로 놓는다. 우리나라에도 이 입장이 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종교학의 기원을 그 이전의 계몽주의 시대에 놓는 입장도 심심찮게 보인다. “Explaining religion”이라는 종교학사 책은 데이비드 흄으로부터 종교학사 서술을 시작한다. 자신을 계몽주의자의 후예라고 공공연히 천명하는 조나단 스미스의 입장도 그러한 종교학사 이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전통적인 종교학사의 입장은 19세기 말, 비기독교 세계의 자료들이 홍수처럼 유럽에 밀려들어온 상황에서 비교종교학적 연구가 요청되었던 것을 종교학 탄생의 중요한 계기로 보고 있다. 연구 태도의 변화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른바 “자료”.. 2023. 4. 19.
엘리아데에 대한 짧은 메모 엘리아데는 이름이 알려진 유일한 종교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엘리아데가 어렵다. 그에게서 무언가를 더 캐내어야 할텐데, 아직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솔직히 얘기하면, 엘리아데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정진홍 선생님의 탓(?)이다. 정선생님의 가르침만 없었어도, 그저 엘리아데를 꿈 큰 학자로 쉽게 생각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의 언어에 그리 촉각을 세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엘리아데의 책은 그저 읽기에는 참 좋지만, 학문적 언어로 정리해서 이해하는 것은 수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의 저작들은 체계적이지 않습니다. 그의 이론은 정합성을 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보면 엘리아데가 일컬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알 수 없는 현상’이고, .. 2023. 4. 19.
종교, 종교들, 종교적인 것. 종교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그것을 기술하는 언어, 그것을 연구하는 학문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이 평범한 명제는 종교학 이론에서 매우 핵심적인 대목이다. 일단 정진홍의 최근의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인류의 종교사를 조망하면 우리는 비교적 선명하게 ‘종교의 역사적 변천’을 기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종교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이 따로 있지 않은 채 ‘종교적’이었던 시대, 종교라는 것이 구분될 수 있는 문화로 등장하면서 각기 개개 종교들이 자신의 절대성을 당해 문화권 안에서 규범적인 것으로 발휘하던 ‘종교’의 시대, 문화권의 단절이 소통 가능하게 열려지면서 하나의 문화권 안에 여러 종교들이 공존할 수밖에 없게 된 ‘종교들’의 시대, 그리고 삶의 모든 양태들이 스스로 의미.. 2023. 4. 19.
새 종교는 왜 생기는가 종교학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가 신종교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종교에 관심없던 사람도 가끔 신문 지상에 오르는 신종교들의 기이한 행각에는 무척 관심을 보인다. 보통 '세상에 벼라별 종교가 다 있군'이라는 호사가적 관심에서 비롯하여, 과연 종교학이라는 학문이 그 '별종'들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묻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대로 종교학이 벼라별 희안한 종교들을 모아서 보여주는 학문은 아니다. 인류학이 세계의 이상한 인간들 모아다가 전시하는 학문이 아니라(혹은 그러기를 그치고) 인간에 대한 진지한 이해를 시도하는 학문이듯이, 종교학은 낯설게 보이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자각하면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종교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뭐, 재미있는 종교.. 2023. 4. 19.
김인서를 다룬 논문들 한국 기독교에 관련된 공부를 하다보면 “선교사 혹은 신학자 누구의 신학 사상(혹은 어쩌구저쩌구론) 연구”라는 형식의 논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신학교나 기독교 관련 역사학계에서 그런 식의 논문이 많이 나온다. 특정 인물의 신학 사상을 다루는 논문들을 만나면 나는 일단 긴장을 하게 된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그런 제목의 글은 논문이라는 형식의 학술 저작을 생산하기에 편리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 인물에 대한 자료 죽 찾은 뒤, 대략 체계를 잡아서, 선행 연구들과 비교해 가며 나름의 평가를 약간 덧붙이는 식으로 서술하는 이런 글쓰기는 비교적 편한 논문 만들기라고 생각한다. 해당 인물의 저작 몇 권을 읽고, 관련된 평을 찾아 읽는 식으로 자료조사의 방식이 어느 정도 뻔하다. 그리고 글쓰기의.. 2023. 4. 19.
굿판의 언어들 몇 해 전 어느 민속학자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분 하시는 말씀이 한국 민속 종교에서 사용되는 어휘들을 잘 다듬는다면 종교학 학술 용어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분이 든 몇몇 아름다운 예들은 아쉽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서구 학계에서 학술용어를 만드는 방식은 일상 언어에서 길어올리는 것이다. “discourse”나 "power"와 같이 흔히 쓰이는 단어들에 새로운 의미를 담아낸다. 반면에 학술용어를 빚어내기보다는 받아들이기에 바쁜 우리 학계에서 학술용어를 만드는 방식은 주로 한자어 조어(造語)를 통해 알맞은 번역어를 찾는 것이다. 서양의 학술 용어가 일상에 밀착된 언어들로 구성된다면, 우리의 용어들은 갑자기 뚝 떨어진 외계어와도 같다... 2023. 4. 19.
백발천사, 도포자락 휘날리며 흔히 쓰는 과장법 중의 하나가 “누구 할아버지가 와도”이다. 잠시 검색해봐도 많은 용례들이 나온다. IMF가 아니라 IMF 할아버지가 와도 펠레가 아니라 펠레 할아버지가 와도 박근혜가 아니라 박근혜 할아버지가 와도 이 때의 할아버지는 단순히 혈연적인 관계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고유한 한국인의 종교 체험에는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많다. 산신령, 신선, 옥황상제, 단군 할아버지, 천지신명, 그리고 한울님으로 불리는 이까지, 할아버지들이다. 할아버지는 우리의 전통적인 보호신격의 모습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 누구의 할아버지라는 표현은 누구의 보호신령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는 듯 싶다. 그래서 다음 사례에서 기독교 천사의 이미지가 어느 한국인에게는 할아버지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은 인상적이다. 나는 기독교 천사 .. 2023. 4. 19.
한국인의 종교 경험 어제 하루만에 광주에 갔다왔다. 전남대에서 열린 한국종교학회(http://www.kahr21.org)에 참석하였는데, 주제 발표인 차옥숭 선생님의 “종교경험과 종교연구”는 참으로 아름다운 발표였다. 얼핏 보면 거의 종교인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는 이 논문은 그저 “해석 이전”의 자료들의 나열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문에서 그런 오해의 잘못이 여지없이 지적된다: “종교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이미 체험 그 자체가 아니며, 그 체험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언어로 표현해낸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언어화된 형태로 갖고 있는 자료는 이미 해석이다. 학자들이 생각하는 해석은 사실 해석된 것을 다시 해석하는 일이다. 손수 인터뷰한 내용들에서, 한국 사람들이 어떠한 구체적 삶 속에서 자신의 종교 경험.. 2023.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