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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백발천사, 도포자락 휘날리며

by 방가房家 2023. 4. 19.

흔히 쓰는 과장법 중의 하나가 “누구 할아버지가 와도”이다. 잠시 검색해봐도 많은 용례들이 나온다.

IMF가 아니라 IMF 할아버지가 와도
펠레가 아니라 펠레 할아버지가 와도
박근혜가 아니라 박근혜 할아버지가 와도

이 때의 할아버지는 단순히 혈연적인 관계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고유한 한국인의 종교 체험에는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많다. 산신령, 신선, 옥황상제, 단군 할아버지, 천지신명, 그리고 한울님으로 불리는 이까지, 할아버지들이다. 할아버지는 우리의 전통적인 보호신격의 모습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 누구의 할아버지라는 표현은 누구의 보호신령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는 듯 싶다.

 

그래서 다음 사례에서 기독교 천사의 이미지가 어느 한국인에게는 할아버지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은 인상적이다. 나는 기독교 천사 개념이 한국인에게 어떻게 수용되었을까를 고민하곤 하였다. 그러나 시각을 좀 넓혀서, 한국인의 종교 경험이 먼저 존재해왔고, 그 경험이 기독교 천사 개념을 통해 표현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다음의 염학섭 목사의 사례는 차옥숭의 “종교경험과 종교연구”라는 발표문(2004 한국종교학회 춘계 주제발표 자료집, pp.19-20.)에서 배워 인용한 것이다.

“영적인 목회자”로서 잘 알려진 염학섭 목사의 백발에 흰 수염을 하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나타나는 신선 같은 천사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독립운동을 모의하다 함경남도 풍산경찰서에 체포되어 취조관의 심한 매질과 악형으로 심신이 지쳐 쓰러져 있는 염목사에게 백발의 노인이 다가왔다. 노인은 세 겹으로 접은 새하얀 수건을 염목사에게 건네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려워 말고 눈물을 씻으라”고 말하였다. 손수건을 받아 눈물을 씻고 나니 수건과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환상을 본 직후에 그는 석방이 되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위로해주고 사라졌던 백발의 노인은 그 이후에도 염목사가 인생의 역정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실을 열어주었다. 염목사는 그 노인을 천사라고 말한다.
(염학섭, [은총의 회고], 애은 목회기념사업회, 1970, pp. 14-15.)

흥미로운 사례이다. 해서 할아버지, 신선, 천사 개념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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