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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굿판의 언어들

by 방가房家 2023. 4. 19.

몇 해 전 어느 민속학자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분 하시는 말씀이 한국 민속 종교에서 사용되는 어휘들을 잘 다듬는다면 종교학 학술 용어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분이 든 몇몇 아름다운 예들은 아쉽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서구 학계에서 학술용어를 만드는 방식은 일상 언어에서 길어올리는 것이다. “discourse”나 "power"와 같이 흔히 쓰이는 단어들에 새로운 의미를 담아낸다. 반면에 학술용어를 빚어내기보다는 받아들이기에 바쁜 우리 학계에서 학술용어를 만드는 방식은 주로 한자어 조어(造語)를 통해 알맞은 번역어를 찾는 것이다. 서양의 학술 용어가 일상에 밀착된 언어들로 구성된다면, 우리의 용어들은 갑자기 뚝 떨어진 외계어와도 같다. 저쪽에서 일상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학술 언어를 구성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일상에 대한 고찰을 통해 알맞은 번역어를 찾아내는 노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번잡스러운 작업은 번역의 시급함에 치여 설 자리를 잃는다. 게다가 그런 일에는 요행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말을 생산할 수 있는, 상응하는 경험이 있어야 하고 그 경험을 담는 언어가 알맞은 형태로 미리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게 꼭 있으란 법은 없다.

용어를 생산하거나, 또는 번역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항상 어휘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럴 때일수록 일상에 밀착되어 있는 언어들에 촉각을 세워야 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학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 민간 신앙의 어휘들에 둔감하다면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유교와 불교가 한자어에 의존하여 어휘들을 갖추어 온 데 비하여, 민간 신앙에서는 고유어 어휘들을 사용하여 종교 경험을 표현하는 빈도가 상당히 높다. 무교는 종교 경험에 관한 고유어 어휘의 보물 창고다.
고백하건대 나는 우리나라 무교와 민간 신앙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나는 일반적인 미국애들도 잘 알지 못하는 어려운 종교 관련 영어 단어들을 꽤 많이 안다. 하지만 무교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기본적인 굿 명칭도 헷갈린다. 이번에 차옥숭의 [한국인의 종교경험 -무교]라는 책을 읽으며, 많은 생경한 어휘들을 만났다. 그 만남들을 추억할 수 있도록 여기 간단히 메모를 해 놓으려 한다.
여기 늘어놓은 단어들은 다양하다. 어떤 것들은 굿의 이름이고, 또 어떤 것은 절차, 사용되는 도구, 기도에서 등장하는 표현들이다. 어떤 것은 내가 처음 들어보는 것이고, 어떤 것은 몇 번 들어보았지만 여기서 의미를 확인하였고, 또 어떤 것은 대충 아는 표현인데 굿에서 쓰이는지 모르는 것이었다. 어떤 것은 글의 맥락에서 의미가 짐작 가능한 것이지만, 약간이라도 낯선 느낌이 있다면 적어 놓았다. 물론 굿의 용어가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이 많다. 전국적으로, 무당에 따라 같은 경험도 각각의 언어로 표현된다. 정립된 언어 체계를 이루고 있지 않다. 그러한 비체계성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내가 익혀야할 어휘들의 보고임은 분명하다.
아무 설명 없이 그저 늘어놓는다.
명받기, 남쾌자, 장삼, “소지 한 장을 둘러낸다”, “부정을 둘러낸다”, 산신다리, 신청울림, “주당살을 푼다”, 상산맞이, “공수를 준다”, 허주굿, 상문 부정, “말문을 열다”, 녹타기, 신다래, 종상 복색, 솟을굿, 비수거리, “산에서 넘어온 비물”, “비수금을 탄다”, “여러 잡신들을 풀어 먹이다”, “뒷전을 정리하다”,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관무당, “아는 소리를 하다”, “뒤가 맑은 무당”, “신의 가뭄”, 복잔내림, 도산말명 방아찜굿, 별상거리, 씨드림, 왕십리 오토바이 만신, 비나리, 고매기굿, 문굿, 놋동이굿, “명줄 질기게 해주고”, 시무풀이, 넋전, 영받이, 유수강, 오구굿, 고풀이, 넋올림, 희설, 길닦음, 상산 부군맞이, 동중부군, 별상거리, 생타살굿/익은 타살굿, 손님굿, 손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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