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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교리

[문서]외우는 기독교

by 방가房家 2023. 4. 19.

옛날 한국인들에게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외우는 것이었다. 기독교를 “가르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일단은 교리문답을 외우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다음은 프랑스 신부의 보고서 내용이다.

우리는 교리문답을 글자 그대로 외우게 합니다... 많은 교우들이 처음 공부할 때 알아듣지 못한 의미를 뒤늦게, 특히 교리반 강론이나 교리 강의에서 알아듣게 됩니다... 따라서 서울 교구에서는 비록 어린이들과 예비자들에게 필요한 정식(定式)을 제공하는 데 그칠지라도 계속 교리문답 외는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1929년 보고서,” [서울교구연보 2], pp. 239-240.)

외우도록 시킨 것은 선교사이지만, 그걸 신나서(?) 열심히 외운 것은 한국 신자였다. 이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 신자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새종교를 받아들였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음(音)을 먼저 익히고 나중에 훈(訓)을 나중에 새기는 유학 글공부를 하듯이, 한국인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천자문을 외듯이 교리문답을 열심히 외웠다. 선교사들이야 한국 사람이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 외우게 했지만, 한국인들은 그것이 전통적인 배움의 방식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서로가 열심이었지만,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랐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여하튼 한국인의 진지한 태도가 선교사들에게 매우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일년에 한 번, 남녀 모든 교우가 몇가지 문답 조목을 외워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이것을 고역으로 생각하고, 노인들은 이를 의무와 명예로 간주합니다. 한번은 젊은 선교사가 백발의 한 노인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노인은 일어나 반은 유감과 비난이 섞인 어조로 “이렇게 나를 무시하다니, 나는 교우가 아니란 말이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선교사가 질문한 곳을 아주 엄숙하게 외웠습니다. 정말 순박한 일입니다.
(“1929년 보고서,” [서울교구연보 2], pp. 239-240.)

견진자 중에는 86세의 노파가 있었습니다. 본인(드보레 주교)은 그녀가 교리를 전혀 알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너그럽게 대할 마음으로 몇 가지 일반적인 질문을 하였는데 그녀는 완벽하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으로 그치고 다음 사람에게 질문을 하려 했더니 그녀는 화를 내며 “주교님, 왜 저에게는 그것만을 물어보십니까? 아직 외울 것이 않습니다. 그것을 배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즉시 작은 견진문답을 다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본인은 진심으로 그녀를 치하했습니다.
(“1923년 보고서,” [서울교구연보 2], p. 198.)

나이든 세대가 열심히 외우고 젊은이들이 열심히 외우지 않는 것은 단지 젊은이들이 나태해서만은 아니다. 나이든 세대가 전통적인 방식에 익숙했기 때문에 생긴 역설적인 결과일 것이다.
외우는 기독교 신앙의 영향이 언제까지 지속되었는지를 따지는 것은 참 까다롭다. 그것은 순박하고 아름다운 신앙이로되, 융통성 없고 율법 같은 신앙이 될 위험도 안고 있는 것이리라.

(아래 사진은 1941년 언양 본당 교리문답대회 기념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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