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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chdown Jesus 학교 서점을 구경하다가 요즘 미국 종교사 교과서로 널리 사용되는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미국 종교사 분야에서 인정받는 저자가 쓴, 매우 흥미로운 주제의 책, "터치다운 지저스"라는 책을 사고야 말았다. 제목은 알쏭달쏭하지만, 부제를 통해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미국사에서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의 뒤섞임." 터치다운은 미식축구 용어로, 골을 넣었다는 것이다. "터치다운 지저스"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책의 처음 부분을 읽으면 나온다. 미국에서 가장 큰 가톨릭 학교인 노틀담 대학은 유명한 미식축구팀을 갖고 있다. (나도 텔레비젼에서 이들의 경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 학교의 미식축구 경기장은 우연히도 도서관 건물과 맞닿아 있는데, 그 도서관 벽면에는 손을 올리고 있는 예수가 그려져 있.. 2023. 4. 18.
미국서 배우는 공부/ 우리 학문하기 탈식민주의와 학문하기는 까다로운 주제인데, 명료한 언어로 쓰여진 책을 하나 만났다. 심재관의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일단 잘 이해된 언어가 신뢰감을 준다. 어려운 주제인데 참 쉽게 읽힌다. 서구 문헌학, 오리엔탈리즘, 불교학, 일본의 근대 학문 그리고 한국의 불교학에 관한 이야기들... 자세히 알지 못했던 부분인데 잘 정리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서구 탈식민주의 이론들을 잘 정리해서 소개해주는 책이냐 하면, 그 반대이다. 서구의 이론적 논의들을 충분히 소화하면서도 아시아와 한국의 근대의 상황, 그리고 현재의 학문의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책이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마저도, 저자의 입장과 주장이 참으로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미덕은 인정할 것이다. 난.. 2023. 4. 18.
"Ritual Process" 전에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과연 “Ritual Process"가 어떻게 번역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제의 과정? 제의 절차? 여기서 process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 걸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아프리카 엔뎀부족의 입문 의례에서 나타나는 제의 구조를, 일반 사회가 돌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틀로 확대 적용하는 짜임새를 지닌다. 그 확대 적용 과정에서 터너는 코뮤니타스(communita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넣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터너가 이 책에서 말하는 제의의 과정은 (5장 첫부분에 설명이 되어 있는데,) 통과 의례의 삼단계, 즉 분리-전이-통합(다른 용어로는 pre-liminal, liminal, post-liminal)이다. 통과 의례에서 .. 2023. 4. 18.
기적의 종류 이승환의 노래 중에 "덩크 슛"이란 게 있다. "덩크슛 한 번 할 수 있다면, 내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이승환처럼 키가 작은 한 소년이 덩크슛 해봤으면 하는 소망을 말하는 것이 노래의 내용이다. 그리고 노래의 말미에서 덩크슛의 소원은 이루어진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지만, 들릴 듯 말듯한 라디오 중계 방송 소리로 슛 장면이 중계된다. 그것은 한 현대 도시인의 꿈이다. 그것이 이루어진 것을 하나의 "기적" 이라고 표현한다면 깜찍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소망의 이루어짐을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수사법을 넘어서는 경우를 우리는 종교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흔히 기적은 초자연적인 신의 개입이라고 이야기된다. 예수의 부활에서 볼 수 있듯이 불가능함을 이루는 정도야 종교사에서 기적이라고.. 2023. 4. 18.
요양을 떠나며 (2005.2.15) 1. 최근에 내 삶과 무관했던 생경한 어휘들을 사용하게 되는 데, 오늘 한국으로 “요양”을 하러 떠난다는 말도 그 하나이다. 한국처럼 복잡한 나라에 요양을 간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들리긴 한데, 어쨌든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한국에 들어가서 “근신”할 예정이다. 이 또한 낯설다. 2. 내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편의상 종교가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무신론자라는 부적절한 개념으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반 정도는 종교가 없는 이들인데, 그 누구에게도 무신론자라는 개념은 맞지 않는다. 이건 우리나라에는 필요없는 언어의 수입일 뿐이다.) 조금 더 진실한 답변을 해주어야 하는 상대에게는 나는 “도교 신자”라고 말해준다. 사실 이 단어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 첫째, 우리 .. 2023. 4. 18.
밥원일은 어찌될 것인가... (2005.1.24) 나는 지나칠 정도로 몸과 마음의 상관성을 긍정하는 사람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어떤 일에 짜증을 내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나는 그 이유를 내 배 속에서 찾는다. “어, 내 성질이 왜 이러지? 배가 고파진 건가? (혹은 먹은 게 잘못된건가?)” 이런 식이다. "기분이 안 좋아보여"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배고파서 그래"라고 답하기 일쑤이다. (이런 유물론적 사유를 남에게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를 들어, 이전에 연애할 때 여자 친구가 나에게 성질을 부리는 날에 “얘가 배가 고픈가?”라는 식으로 어설프게 대처했다가 낭패본 적이 좀 있었다.) 내 몸에 먹을 것, 영양가가 충분히 공급되었는지가 최우선의 고려대상이다. 그게 해결되지 않고서는 평소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 2023. 4. 18.
터프한 미국 병원 (2005.1.19) 한국에서 병원에 입원해 본 경험이 없다. 의료시설이 내 삶에 관여하게 될거란 상상을 별로 해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는 게 별로 없다. 더구나 미국 의료 시설이란... 상상도 못했던 공간이었다. 어쩌면 미국 병원에 앞서 병원 경험 자체가 내게 생소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 2004년 12월 13일 저녁,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자동차에 받혔다. 큰 사고였다. 솔직히 나는 그 날의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간혹 의식이 들면 경찰과 의사가 뭐라 씨부랑거리는 기억만 날 뿐이다. 그 날 나는 두 개의 수술을 받았다. 하나는 배를 크게 가르고 조직에 손상을 입은 작은 창자를 잘라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박살난 오른손에 스크류를 박고 기브스를 하는 것이었다... 2023. 4. 18.
... 통하였느냐? (2004.11.19)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이다. 나는 이렇게 장면 하나하나에 공이 많이 들어간 예쁜 영화를 좋아한다. 스캔들은 한국 전통미의 탐구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통 문화로부터 아름다운 화면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영화이다. 한복, 한옥, 화장품, 나전칠기, 동양화, 한식 등의 요소에 갖은 정성을 쏟았다. 뱃놀이, 책방, 저자거리, 연못, 정원 등 어느 하나 놓칠만한 장면들이 없다. 음악이나 구성에도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여러 대목에서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비사실적인 대목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것마저도 새로운 시도들을 감안할 때 눈감아 줄 수 있다. 적어도 제작진은 역사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그를 바탕으로 ‘이럴 수도 있지 않.. 2023. 4. 18.
할로윈 단상 (2004.11.6) 지난 할로윈 때 템피 시내를 돌아다녔다. 거리는 할로윈 복장을 차려입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잘생긴 남자들, 예쁜 여자들, 섹시한 복장들, 기기묘묘한 복장들 사이를 한시간이 넘도록 돌아다녔는데, 그 때 같이 갔던 친구가 사진을 찍은 것을 멋지게 편집해서 보내주어 여기 올린다. 옆의 사진은 화려한 할로윈의 행렬 사이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외치는 아저씨의 모습이다. 이들에게 할로윈은 악마적이고 세속적인 행사에 다름 아니다. 대여섯 명의 교회 사람들이 나와 성서 말씀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설교를 하고 있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 먼저 꽂히는 게 그들이었고 친구한테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연말이 되면 신촌에서 회개하고 예수 믿고 집에 빨리 들어가라고 .. 2023. 4. 18.
대통령 토론회로 애리조나가 들썩이다 (2004.10.14) 오늘 하루 우리 동네가 들썩거렸다. 애리조나 주립대학 대강당에서 케리와 부시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통령후보 텔레비전 토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신문 지상에까지 아마 우리학교 이름이 거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국 대선에서 텔레비전 토론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선거 판세를 크게 뒤흔들기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는 행사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도 토론을 통해 케리가 선거전세를 역전시키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제 박빙이 되었다고 보도하지만 내가 보기엔 대세가 넘어왔다.) 일주일 전부터 각지에 경찰이 배치되어 삼엄한 경비를 했고,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애리조나인으로서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큰 행사이기에, (나를 포함해) 이 곳 촌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흥분하였.. 2023. 4. 18.
종교학의 천국 (2004.10.1) 화창한 캠퍼스의 오후, 어느 녀석이 퍼질러 앉아 낯익은 책을 읽고 있다. 엘리아데의 [성과 속]이다. 호, 제법인데... 얼마 후 전산실에서 옆의 애가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곁눈질로 보았는데 역시 엘리아데의 [성과 속]의 개요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여기저기서 종교학 공부에 여념이 없군... 공연히 뿌듯해진다. 종교학 세상에나 온 기분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종교학을 접했으면 하는 것, 평소에 많이 하던 생각이다. 그래서 한때는 고등학교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많은 고등학교에 있는 “종교” 시간에, 의석이를 굶기는 교리교육 말고 인간을 이해하는 수단으로서 종교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달콤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 2023. 4. 18.
미국 애들의 지도 숙제 (2004.9.7) 세계의 종교들이라는 대형 강의의 과제물들을 처리하는 중이다. 종교와 관련된 지명 20 곳이 현재 어느 나라에 있는지 찾고, 세계 지도를 그려 위치를 표시하는 간단한 과제물인데, 학생 수가 많아 처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처음에 이 숙제를 보았을 때 의아했다. 다소 낯선 지명들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다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도책 들춰보거나, 구글 검색하면 다 알 수 있는 이런 걸 숙제로 내다니... 더구나 선생은 도서관 어느 열람실을 가면 지도를 이용할 수 있으며, 일요일에는 문 닫는다고 친절하기 그지없는 설명을 과제에 명기해 놓았다. 아마도 학생들에게 보너스 점수를 주려고 만든 과제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제물을 받고 보니 과제물의 성격이 내.. 2023. 4. 18.
올림픽 단상 (2004.8.29) * 처음에는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힘들었다. 여러 미국 방송사 중에서 NBC에서만 올림픽을 독점 중계하고, 다른 채널에서는 언급조차 듣기 힘들다. 우리에겐 9시 뉴스 첫머리를 금메달 소식으로 하는 게 당연하지만, NBC가 아닌 다른 방송국의 경우, 이런 일은 절대 없다. 평소 하던 대로 30분 동안 동네 얘기와 일기예보를 전달한 다음에, 이후의 스포츠 소식에서는 메이저리그, 농구, 미식축구 얘기 다하고나서 짤막하게 올림픽 메달 소식 들려준다. 올림픽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꼴지팀 애리조나의 야구 경기 중계를 어김없이 즐길 수 있다. 어제 어느 토크 쇼에서는 왠 남자가 나와, “Olympic sucks," "Paul Hamm sucks." 이런 얘기를 떠들어댄다.. 2023. 4. 18.
한국 안의 애리조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애리조나라고 말했을 때 보통 떠올리는 것들은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아리조나 카우보이 2. 김병헌이 뛰었던 야구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3. 애리조나 유괴사건(Raising Arizona) 1은 40대 정도 이상 연령대의 반응이다. 명국진의 노래가 기억에 남아있는 세대의 반응이다. 이 이미지에 대해서는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다. 2는 2-3년 전에 강렬했던 반응이다. 김병헌이 보스턴으로 가고 지지부진하면서 점점 잊혀져 가는 이미지이다. 야구 좋아했던 사람이나 기억하는 이름이다. 야구에 관련된 자잘한 정보들이 몇가지 더 있기는 하다. 올 초 스프링 캠프 때 박찬호가 쉬면서 명상을 한 장소가 있었다. 애리조나의 세도나라는 명승지였다. 강한 기를 내뿜기로 유명한 곳이다. .. 2023. 4. 18.
애(아)리조나 카우보이 애리조나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주변 어른들에게 말씀을 드릴 때, 때론 미묘한 표정을 만나곤 하였다. 난감한 표정을 감추며 ‘그래도 미국인데...’라는 생각으로 무마하고 계시는 표정이었다. 한국 사람에게 애리조나는 어떤 곳일까? 친숙한 곳은 아니되, 완전히 낯선 곳도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몬태나, 혹은 와이오밍 주에서 공부한다고 말하면 그런 지명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적 울림은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리조나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이나마 있는 걸 보아서는 한국인의 지리적 인식 속에서 약간의 땅뙈기나마 지분이 있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애리조나는 김병헌 덕분에 익숙한 지명이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김병헌이 다이아몬드 백스 구단에서 활동하며 월드시리즈에 올라가고 하는 바람에, 애리조나라.. 2023.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