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변잡기

요양을 떠나며

by 방가房家 2023. 4. 18.

(2005.2.15)

1.

최근에 내 삶과 무관했던 생경한 어휘들을 사용하게 되는 데, 오늘 한국으로 “요양”을 하러 떠난다는 말도 그 하나이다. 한국처럼 복잡한 나라에 요양을 간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들리긴 한데, 어쨌든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한국에 들어가서 “근신”할 예정이다. 이 또한 낯설다.

2.
내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편의상 종교가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무신론자라는 부적절한 개념으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반 정도는 종교가 없는 이들인데, 그 누구에게도 무신론자라는 개념은 맞지 않는다. 이건 우리나라에는 필요없는 언어의 수입일 뿐이다.)
조금 더 진실한 답변을 해주어야 하는 상대에게는 나는 “도교 신자”라고 말해준다. 사실 이 단어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 첫째, 우리 주위에서 도교는 제도화된 형태의 종교를 이루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오두미교와 같이 중국 종교사에서 나타난 도교 운동과 내가 어떤 연관을 지닌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노자와 장자의 텍스트를 내 삶의 중요한 경전으로 삼고 살아왔다는 의미에서 도교를 나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도가와 도교를 다른 것으로 구분하는 태도도 찬성하지 않는다. 거기엔 엘리티시즘이 배어 있다.)
노장을 공부하지는 않는다. 소시적에, 고등학교 말과 대학 초년기 때 열심히 읽었고 그게 다이다. 최근엔 쳐다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그 때의 독서 경험은 살아있고 그 느낌이 내 삶으로 체화되어 나간다. 어떤 것이 삶으로 체화되고 있는가? 제대로 언어화해서 말하기 쉽지 않다. 몇가지만 집어서 대충 말하자면, 내 삶의 자연스러움을 따르려는 자세. 내 몸의 현실성에 충실하려는 태도. 지금 현재의 살아있음을 누리려는 태도 등이다. 이러한 것들이 얼추 모여 나의 낙관적인 모습으로 연결된다.

3.
죽을 수도 있었다.
교통 사고를 꽤 크게 당했는데 어떤 결과인들 나지 않으랴. 사고 나서 죽은 사람, 병신이 된 사람, 들어보니 별별 사람들이 다 있더라. 내가 그리 되었던들 이상치 않다. 사실 꽤 위험한 수술을 받았다고 들었다. 안 좋은 일들을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나고 나서 느끼는 건데, 이상하게도 나는 나쁜 생각이라곤 해 본 일이 없었다.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는 완전히 기억이 없다. 의식이 든 건 병원 와서부터인데, 내가 느낀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그것만이 중요했던 것이다.
사실 내가 깨어나서 제일 처음 했던 생각은 (이건 정말 말하기 쪽팔리지만) 정신없던 학기말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페이퍼 쓴다고 졸나게 바빴는데, 이제는 누워있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페이퍼 쓸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을 정도로 급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사고 당한 시점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아프긴 해도, 어쨌든 쉬게 되었으니까. (아, 이건 사고 난 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나중에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제일감의 생각이었다. 거기에 문제의 심각함이 있다.) 그 다음부터는 몸의 상태에만 의식이 집중되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가는 재미(?)를 느꼈다.

4.
내가 기독교인이었다면 죽음부터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깨어나서, 죽음으로부터 나를 구원해주신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고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던 나의 죄를 성찰하고, 그에 대한 하느님의 관대함에 다시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죽음이 나의 사유의 전제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 없이 신의 은총에 눈물 흘리며 감사할 수는 없다.
[장자]에 보면 아내가 죽었는데 장자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으로 돌아갔을 뿐인데 슬퍼할 게 무어 있냐는 이야기이다. (내가 병실에서 장자의 이야기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죽음 자체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에 별 거 없다는 것이 도가적인 태도이다. 살면 사는 거고 죽으면 죽는 거다. 살아있을 때 살아있음에 집중하면 된다. 죽음은 죄의 삯이니 하면서 공연히 삶을 드라마틱한 것으로 만들 거 없다는 것이다. 그게 내가 이해하는 바이고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5.
사고가 난 후, 성당에 다니시는 내 부모님들께서는 자숙하시고 몇 주간 근신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평소에 성당 열심히 나가시던 분들도 아닌데, 어리둥절할 정도의 놀라운 반응이었다. 태평양 너머에 있는 아들의 사고에 대해 자신들이 회개할 부분이 있다고 믿으셨나보다. 그 믿음이 당시 내 부모님을 안정시켰을테니, 거기에 대해서 내가 왈가왈부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분들은 당사자가 어떤 심정으로 병상에 있었는지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괜찮다’라고 전화로 말씀드려도, 그게 부모를 안심시키려는 효심이었을 거라고만 생각하셨을 거다.
이상은 한 도교 신자의 신앙 간증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