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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미국서 배우는 공부/ 우리 학문하기

by 방가房家 2023. 4. 18.

탈식민주의와 학문하기는 까다로운 주제인데, 명료한 언어로 쓰여진 책을 하나 만났다. 심재관의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일단 잘 이해된 언어가 신뢰감을 준다. 어려운 주제인데 참 쉽게 읽힌다. 서구 문헌학, 오리엔탈리즘, 불교학, 일본의 근대 학문 그리고 한국의 불교학에 관한 이야기들... 자세히 알지 못했던 부분인데 잘 정리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서구 탈식민주의 이론들을 잘 정리해서 소개해주는 책이냐 하면, 그 반대이다. 서구의 이론적 논의들을 충분히 소화하면서도 아시아와 한국의 근대의 상황, 그리고 현재의 학문의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책이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마저도, 저자의 입장과 주장이 참으로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미덕은 인정할 것이다. 난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가 뚜렷한 책을 좋아한다.

한국 불교학의 상황은 참 처참하다. 탈식민 운운하기에 앞서 근대를 얼마 겪어보지도 못한 것이 한국 불교학이다. 저자는 잘라 말한다. 불교인이 유학 좀 갔다오고 근대적 교양 좀 익혔다고 불교학의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불교학의 근대화를 말하려면 문헌학적인 엄밀성을 추구하는 학문적 방법을 기준으로 말해야 할 터인데, 그러려면 불교학 근대화의 시점은 (인도철학과가 설치되 산스크리스어 강의가 가능해진) 1960년대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인들이 불만을 품을 듯한 과격한 시기 설정이지만,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은 외국 학문과의 우리 학문의 관계 설정의 문제이다. 저자는 미국물 먹은 학자들이 그쪽의 수준 높은 학문을 말하면서 우리도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식의, 푸념에 가까운 발언들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예를 들어 미국 불교학의 높은 수준을 말하는 김종명 씨를 열나 깐다. 그런 발언을 우리 학문의 악순환이락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유학을 통해 익혔던 학문적 성숙과 한국의 저열한 스칼라쉽이 보여주는 엄청난 괴리감 사이에서 서슴없이 그 차이를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도대체 그것이 어떻다는 것인가? 그들의 학문적 위용에 무릎이라도 꿇으란 말인가. 이 표현 속에 숨어있는 미국 불교 연구에 대한 자부심이 왜 김종명의 것이 되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왜 ‘국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 외국의 동향에 ‘무지’한 것으로 비쳐져야 하는지 또한 알 수 없다... 반드시 모든 외국 연구가 다 반영되어야 하리라는 법이 있던가. 더군다나 왜 미국이어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심재관이 인용하는 [오리엔탈리즘]의 한 대목은 절묘하게 제3세계 학자의 자리를 그린다. 내가 독서할 때는 무심코 넘긴 대목이다.

동양인 학생들(그리고 동양인 교수들)은 지금 미국의 오리엔탈리스트에게 와서 그 무릎 아래에서 배우기를 희망하며, 그 뒤에는 내가 오리엔탈리즘의 도그마라고 특징지워온 상투문자를 자국의 청중을 향해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미국에서 받은 훈련 성과를 이용해 자기 국민에 대한 우월감을 갖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원주민 정보원’에 불과하다.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대목이다. 교수들의 미국 유학 자랑에 이골이 나 있는 것은 한국의 어느 학과를 막론하고 비슷한 현상일 것이다. 미국 자랑을 하는 교수들의 나이브한 생각 속에는 그게 사실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심재권류의 비판은 지적 열등감의 표출 정도로 치부할 것이다. 김종명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할 것이다. 틀린 얘기 한 것 하나 없기 때문에... 사실, 미국 학문이 수준 높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 자랑을 그냥 듣고 있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판의 핵심은 그게 사실이라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고,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하는 가에 놓여 있으며, 미국을 쫓아가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에는 그러한 우리의 처지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심재관의 다음 이야기는 이 핵심을 짚고 있다.

외국에서 긴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많은 연구자들 역시 자신이 보고서에서 제시한 대로 이상적이며 성공적인 연구 활동을 펴나가는 것도 아니다. 유학을 해서 돌아오거나 또는 이 땅에서 연구를 하거나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유학의 경험으로부터 던져지는 선지자적인 교훈들 역시 더 새로운 것이나 어떤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미 수십 년 전 또는 백여년 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를 옭아매는 또다른 사회적 기제들이다...

자신의 연구 환경을 자각하면서 한국 학자로서 어떠한 전술을 구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술은 스스로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 미국 대학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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