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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Ritual Process"

by 방가房家 2023. 4. 18.

전에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과연 “Ritual Process"가 어떻게 번역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제의 과정? 제의 절차? 여기서 process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 걸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아프리카 엔뎀부족의 입문 의례에서 나타나는 제의 구조를, 일반 사회가 돌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틀로 확대 적용하는 짜임새를 지닌다. 그 확대 적용 과정에서 터너는 코뮤니타스(communita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넣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터너가 이 책에서 말하는 제의의 과정은 (5장 첫부분에 설명이 되어 있는데,) 통과 의례의 삼단계, 즉 분리-전이-통합(다른 용어로는 pre-liminal, liminal, post-liminal)이다. 통과 의례에서 입문자는 사회의 일상적 구조로부터 벗어나, 위계가 완전히 해체된 떨어진 곳에서 잠시 지내다가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과정을 거친다. 터너는 사회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어떤 변화의 충동을 받을 때, 이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일시적으로 사회적 위계가 해체된 상태로 집단적으로 몰입하였다가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터너의 용어로, 사회는 구조(structure)와 반구조(anti-structure)의 변증법을 통해 유지된다. 축제에서 전형적으로 예시되는 집단적인 흥분, 그 곳에서 우리는 하나라고 느끼는 상태를, 터너는 집단(community)의 라틴어식 표현인 코뮤니타스라는 신조어를 사용해서 표현한다. (우리식으로 얘기하자면 대동(大同)이 비슷한 어감을 지닌다고 보인다.) 바로 그 순간이 사회가 반구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필연적인 관성에 의해 사회는 구조로 돌아가야 하고, 코뮤니타스는 일상화되어야 한다는 “운명”을 지닌다.
“Ritual process”라는 제목은 이 복잡한 설명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좀 풀어 얘기하자면, “Ritual process”는, “사회는 제의적 구조를 지닌다,” 혹은 “사회는 제의의 과정(분리-전이-통합)과 동일한 구조를 통해서 유지된다.”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이것은 매우 뒤르켐적인 시작이다. 뒤르켐이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 후반부에서 주목했던 제의의 역할, 특히 제의의 중심에 있는 “집단 흥분”(collective effervescence)을 통해 사회가 형성되고 유지된다고 주장한 그 테제를, 터너가 다른 자료들과 용어들을 통해 색다르게 구성해낸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의미들을 다 담아 “ritual process”를 번역한다면 어떤 게 온건한 번역이 될까? “제의적 과정”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적’이라는 애매한 접미사가, 사회는 제의적이라는 은유적 명제를 어느 정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번역을 통해 터너의 의도가 전달되기를 기대하는 건 터무니 없지만 말이다. 영어 제목 자체가 모호한 데 그 정도야 어쩔수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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