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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한국 안의 애리조나

by 방가房家 2023. 4. 18.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애리조나라고 말했을 때 보통 떠올리는 것들은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아리조나 카우보이
2. 김병헌이 뛰었던 야구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3. 애리조나 유괴사건(Raising Arizona)
 
1은 40대 정도 이상 연령대의 반응이다. 명국진의 노래가 기억에 남아있는 세대의 반응이다. 이 이미지에 대해서는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다.

2는 2-3년 전에 강렬했던 반응이다. 김병헌이 보스턴으로 가고 지지부진하면서 점점 잊혀져 가는 이미지이다. 야구 좋아했던 사람이나 기억하는 이름이다. 야구에 관련된 자잘한 정보들이 몇가지 더 있기는 하다. 올 초 스프링 캠프 때 박찬호가 쉬면서 명상을 한 장소가 있었다. 애리조나의 세도나라는 명승지였다. 강한 기를 내뿜기로 유명한 곳이다. 한 달 전에 랜디 존슨이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에도 보도가 되었는데, 랜디 존슨은 애리조나 디백스의 간판선수이다. 뉴욕 메츠에서 뛰고 있는 서재응이 4승인가를 올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재응은 얄밉게도 애리조나한테서 2승이나 거두어갔다. 또 하나, 전에 롯데 자이언츠의 용병 선수였던 부산의 야구 영웅 펠릭스 호세 이야기가 있다. 호세는 올해 롯데로 복귀할까 망설이다가 메이저리그에 미련이 남아 애리조나 산하 구단과 계약을 하고 만다. 얘기가 나온 김에, 전에 삼성에서 잠시 뛰었던 바에르가라는 용병이 있었다. 바에르가가 지금 애리조나 디백스에서 대타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내가 본 경기 중에서 1-3으로 뒤지던 경기 7회에 바에르가가 스리런 홈런을 날려 영웅이 된 경기가 있었다. 이상이 스포츠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과 애리조나의 희미한 연결 지점들이다.

특이하게도 내 주변 사람들은 3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굉장히 유명한 영화는 아니지만, 본 사람들은 강렬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나부터가 그랬다. 코엔 형제의 연출에 니콜라스 케이지의 얼빵한 연기가 빛나는 이 영화는 “애리조나 유괴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애리조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그 배경이 정말 환상적이다. 숨조차 쉬기 힘들 것 같은 황량한 사막, 기이한 하늘색, 고요한 대기, 붉은 바위산과 간혹 보이는 키 큰 선인장, 아지랑이가 이글거리는 지평선. 한마디로 사람은커녕 도마뱀 하나 살기가 힘들어 보이는 이국적이고도 적막한 풍경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영화 내용은 까먹어도 그 풍광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래서 많은 지인들이 애리조나 하면 황량함을 떠올린다. 나도 그 영화를 좋아했고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을 잘 이해한다. 사실 틀린 이미지는 아니다. 굳이 카메라를 그런 식으로 들이대면 그런 영상이 나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황량한 이미지의 애리조나에서 희희낙낙하면서 1년을 살고 온 나를, 사람들은 거의 생명력과 적응력의 화신으로 여기기도 한다. 보이기는 그래도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해도 잘 믿지를 않는다.

한국 안에서 애리조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스와로(saguaro)라는 애리조나 특산 키 큰 선인장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는 것을 술집 유리창에서 간혹 본다. 홍대입구에서는 룸살롱 피닉스를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국 내 애리조나 이미지의 결정판은 요즘 시판되고 있는 현대 자동차 투산이다. 투산은 피닉스 남쪽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애리조나 제2의 도시의 이름이다. 옛날에 금광 채굴자나 인디언 잡아 상금 타려는 백인 부랑아들이나 멕시코인들이 모여 형성된 도시인데, 지금은 매력적인 도시로 남아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애리조나 도시 이름 딴 것이 몇 개 더 있다. 미국에서 시판되는 기아 자동차 이름이 세도나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세도나는 피닉스와 그랜드 캐년 중간쯤 위치하는 명승지이자 도시의 이름이다. 그리고 툼스톤이라는 서부 영화가 있었다. 애리조나 남동쪽에 위치하는, 아직도 옛 서부 분위기 풀풀 나는 오래된 도시 이름이다.)

이름을 딴 것 이외에도, 투산의 광고는 애리조나의 이미지 자원을 십분 이용해서 제작되었다. 애리조나의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로 차가 갈리는 배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거기에다가 나바호 미인을 연상시키는 아가씨를 등장시켜 열나게 뛰게 한다. 이 아가씨는 미첼의 여전사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있다. 애리조나 현지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이 광고는 참 잘 만들었다. 순치되지 않은 자연의 자리에 여성을 놓고 문명의 자리에 남성을 놓는, 전통적인 이분법에 기대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원래 차 파는 동네가 여성을 상품화하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바, 이 정도는 양반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느낌이 안 난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멋진 광고로 인해 애리조나의 황량함은 한국인들에게 더욱 굳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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