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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팔, 영지의 종교학을 말하다 Jeffery J. Kripal, The Serpent's Gift: Gnostic Reflection on the Study of Relig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7) 크리팔 교수의 책을 읽으면 찌릿찌릿하다. 그는 종교학이 종교의 핵심적인 부분인 지혜, 영지, 신비에 대하여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의 윤리적인 영역에 대한 발언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비판하는, 종교에 대한 “순수하게 세속적인 연구자”에 속해 있다. 내가 속한 진영과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흐름은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리팔의 주장에 가슴이 떨리고, 그의 작업에 기대를 갖게 된다. 어쩌면 종교학의 소심함을 질타하는 데서 오는 이.. 2023. 4. 26.
<성호사설> 중에서 귀신, 무속 이야기들 이익의 을 읽다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익의 중 중에서도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 몇 개를 뽑아 실은 책(이익, 민족문화추진회 엮음, [솔, 1997].)을 읽다가, 그 중에서도 내가 관심이 가는 몇 가지를 골라 찾아보았다. 내 눈길이 갔던 것은 대부분 당시 무속에 대한 내용들과 귀신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실학자’ 이익의 개성이 드러나는 자료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유학자로서의 성호가 갖고 있던 무속에 대한 관점과 귀신론이 드러나는 자료들로서 흥미롭게 읽었다. 인용된 내용은 민추 웹페이지의 것이라 책과는 다소 번역이 다를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부분은 원문을 확인해야겠지만, 나중에 필요할 때 하기 위해서 일단은 링크와 약간의 발췌를 해 놓았다. 제7권 무(巫): 합리적인 논증을 통하여 무속을 부.. 2023. 4. 26.
<종교개혁> 중에서 루터에 대한 메모 패트릭 콜린슨, 이종인 옮김, (을유문화사, 2005). 종교개혁 작은 책이지만 이 책에는 든 것이 굉장히 많다. 문장 하나하나가 따끔거리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들을 건드려주고 우리의 상식들을 비틀어주는 맛이 그만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책이란 따분하기보다는 차라리 틀리는 게 낫다”는 특이한 지론을 펴는데, 그것은 내 취향과 상당히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내용 하나하나가 진부한 것이 거의 없고, 드는 예들도 자극적인 것이 많아서, 종교개혁이라는 복잡하고 방대하기 그지없는 영역을 스릴을 느끼며 횡단하게 된다. 물론 저자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주는 자극들은 대학자의 통찰에서 나오는 것들이기에 두고두고 생각할 거리들을 남기는 것들이다. 그 예로서 루터에 대한 언급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 2023. 4. 26.
조너선 스미스의 <Religion...> 중에서 조너선 스미스의 논문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의 처음 한페이지 반을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은 종교 개념에 대한 대표적인 논문이어서 많이 언급되고, 특히 나도 자주 써먹는 대목이다. 예를 들면 덧씌워진 종교 개념에 대한 최근 논의들. 이번에 아예 필요한 부분을 번역해버렸다. 이 논문의 대강을 보려면 이 발제문을 참고할 것. Jonathan Smith,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in Relating Religion: Essays in the Study of Relig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179-180. “신세계”(New World)에 대해서 영어로 쓰여진 두 번.. 2023. 4. 26.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 타자 Bernard S. Cohn, "History and Anthropology: The State of Play,"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22-2 (1980): 198-221. 파일: Cohn-History_Anthropology.pdf 버나드 콘의 글은 인류학과 역사학의 현황과 만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황 판단이 예리하고, 무엇보다도 그가 제시해주는 앞날의 그림(그중 많은 것들은 이제는 실현된 것이지만)에서 공감이 가는 바가 크다. 그는 서두에서 인류학과 역사학이 인식론적 차원(the epistemological level)에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공통의 과제를 역설한다. 역사학자와 인류학자는 “타자”(othernes.. 2023. 4. 26.
'천주' 발견의 뒷이야기 최근에 내가 했던 일은 한국 기독교에서 ‘하느님’이라는 말이 언제 어떻게 쓰이기 시작하였는가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느님’이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다가 기독교를 만나(혹은 동학을 비롯한 민족종교들을 만나) 쓰임을 받았다는 믿음은 일종의 신화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하느님’은 기독교와의 만남의 계기에서 출현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만남을 추적하는 일을 아직 많이 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천주(天主)’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을 때처럼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아시아 기독교 전통에서 기독교 신의 이름으로 천주가 사용된 것은 마테오 리치의 활동을 통해서이다. 리치가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뒷이야기가 있다. 리치의 2권 3장에 나.. 2023. 4. 26.
'천도'와 기독교 며칠 전 참석한 포럼에서 와타나베 교수의 발표 중 메이지 시대 지식인의 재미있는 입장을 소개한 것이 있어 간략히 옮겨놓는다. (한편 와타나베 교수는 답변하는 도중에 동아시아인들이 동도(東道)를 이야기한 순간, 그것은 유교에서 이야기하는 보편적인 도(道)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좋은 가르침이었다.) 1. 메이지 초기 일본 지식인들 중 일부는 기독교가 ‘문명개화,’ ‘문명,’ ‘개화,' 즉 ’civilization'의 일부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2. 나카무라 마사나오는 “우리나라 인민으로 하여금 그 성질을 개조하게 하여 구미 제국의 인민의 고등한 수준과 같게‘ 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기독교의 보급을 주장한다. 현재 구미 번영의 근간은 기독교이며 따라서 우선 천황이 세례를 받아 친히 교회의 주(主)가 되.. 2023. 4. 25.
서학에 대한 유학자들의 반응 중에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서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체계에 대한 반응을 보일 때, 일단 그것은 그들의 지적인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남인 계열 일부의 유학자들의 서학 수용은, 그들이 정치적으로 밀려나 있는 데 대한 불만에서 기인한 것인가? 천주교를 공격한 유학자들은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사상(더 나아가 근대화)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 것인가? 처음에 서학을 받아들였다가 이후 배교(背敎)한 성리학자들은 자기 한계를 벗지 못하여 철저한 기독교 신앙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일면적이고 잘못된 방향의 설명을 이끌어낸다. 단 베이커(Don Baker, "A Confucian Confronts Catholicism," 6(1979-1980))는 연구 과정에서 한국 학자들의 위.. 2023. 4. 25.
심청정/청정심 메리 더글러스의 을 읽을 때, 책에서 다루어진 사례들은 아프리카 종교에서 나타나는 금기 개념과 유대교의 정결 개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깨끗함 관념, 그리고 제사지낼 때의 부정 등을 떠올리긴 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깨끗함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불교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이야기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을 터인데, 그것을 단순한 수사(修辭)로만 생각했던 탓일까? 다른 종교의 깨끗함 관념을 논의할 때 이상하게도 전혀 연결시켜 생각해보지 못했다. (살림, 2006)을 보면서 불교에서 깨끗함이 수사 이상임이 대번에 들어왔다. 불교 가르침의 핵심에 자리잡은 관념이라는 것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 한 대목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보살이 정토(淨土)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 2023. 4. 25.
살법이 아닌 활법 글과 그림으로 된 텍스트에서 글만 옮기는 것은 잘못된 인용방식이다. 장비의 문제도 있고, 정성도 부족한 탓이다. 하여튼 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투기(鬪技)의 역사는 고대 인도의 요가에서 비롯되었다. 이 요가에서 체계화되기 시작한 권술은 불교를 타고 동방 여러나라로 전파, 중국에 들어가서는 소림권법이 되고 태국에서는 킥복싱이 되었으며, 일본에 가서는 유도나 가라테, 그리고 한국에서는 태껸이 된 것이다. 불교가 권술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 증거가 있다. 우선 절 입구 산문같은데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왕의 모습을 예로 들 수가 있다. 유난히 두드러진 복근과 부릅뜬 눈! 공격 태세로 치켜올리고 있는 왼쪽 정권과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는 오른쪽 수도! 천수관음의 그 수많은 손도 마찬가지. .. 2023. 4. 25.
스미스 선생의 뒤르케임 가르치기 종교학 수업에서 뒤르케임의 책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논의한 (Oxford University Press, 2005)이라는 책이 있다. 뒤르케임주의자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뒤르케임의 팬인 나로서는 흥분되는 내용이 많은 재미있는 책이다. 사회학 교실에서 뒤르케임을 읽는 것과 종교학 교실에서 뒤르케임을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종교학 전통에서 뒤르케임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어떤 맥락이 학생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그에 대한 몰이해를 씻고 책 안의 통찰을 살아있는 것이 되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대학 개론 수업에서 뒤르케임을 다루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들이 실려있다. 이것은 단순히 교육의 테크닉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요즘의 종교학 흐름이 뒤르케임의 재발견이라는 토대 위에 구축된 것이라는 점.. 2023. 4. 25.
연기라는 종교 주말에는 스케줄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주말저녁 드라마를 보는 일은 많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온가족을 겨냥한 시간대인 토일8-9시 드라마를 일부러 챙겨보는 일은 별로 없다. 그 시간대에 라는 빌어먹을 드라마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같은 시간 MBC에서 라는 드라마를 하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그 시간에 텔레비전을 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거기서 주연을 한다는 김성수라는 연기자가 만만치 않은 이야기를 한다. (나 를 보지 않아서 이 연기자를 모른다.) 이 사람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기 생활을 종교라고 부른다. 그것이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님이 인터뷰 전반에서 느껴진다. 제 촬영이 아침 7시 시작이면, 저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6시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거든요. 메이.. 2023. 4. 25.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 나는 웬디 도니거의 (implied spider)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왜 신화에 보편성이 존재하는지를 이야기하는 3장 도입부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인 ‘숨은 거미’가 그 보편성을 가리키는 은유인데, 본격적으로 은유를 풀어놓기에 앞서 이야기를 하듯 자기가 생각하는 보편성의 이유를 부드럽게 써놓았다. 어려운 개념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저명한 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는 것도 아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왠지 모를 힘을 느꼈다. 도니거가 공들여 쓴 문장들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근거는 없다.) 보편성이라는 주제는 요즘 학자로서 옹호하기가 힘들고 따라서 기피하는 주제인데, 도니거는 평이한 문체를 구사하면서도 여기서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보편성이라는 개념은 ‘같다’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에게 다.. 2023. 4. 25.
새로운 중심과 역외춘추 지구 자전설을 이야기한 것으로 유명한 홍대용의 은 조선 시대 실학자들의 과학적 지식이 얼마나 현대 과학에 접근한 것인지를 증명하는 책으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내가 읽으면서 흥미를 느꼈던 것은 어떻게 보면 그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우리의 상식과 같은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에 있어서 다른 것에 눈길이 갔다. 그것은 간혹 있는 홍대용 서술의 과학적 오류를 찾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과학적 이해가 어떻게 당시의 언어로 서술되는지, 당시의 세계관 이해의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세계관을 새롭게 정립하는가를 읽어내는가에 흥미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물리학적 사실들이 유교와 도교의 언어들로 서술되고 있으며, 또 그 언어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직하는 .. 2023. 4. 25.
신학자들 비판 에라스무스, 문경자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2006)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의 절정부는 당시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쏟아지는 마지막 대여섯개의 섹션들이다. 사제, 수도사, 신학자, 그리고 주교들과 교황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거명하며 비판하는 부분은, 그 앞의 다른 풍자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앞에서 학자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풍자와 해학의 느낌이 많이 풍긴다면, 이 뒷부분에서는 작심을 한 듯 준엄하다. 풍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비판하기 힘든 세력을 대한다는 비장함이 서려있어서일까, 좀더 묵직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들의 야심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아니라 그들끼리 서로 달라지는 것”(146)이라는 수도승에 대한 야유도 재미있지만,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신학자.. 2023.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