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의 <<성호사설>>을 읽다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익의 <<성호사설>> 중 <인사문(人事門)> 중에서도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 몇 개를 뽑아 실은 책(이익, 민족문화추진회 엮음, <<성호사설>> [솔, 1997].)을 읽다가, 그 중에서도 내가 관심이 가는 몇 가지를 골라 찾아보았다. 내 눈길이 갔던 것은 대부분 당시 무속에 대한 내용들과 귀신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실학자’ 이익의 개성이 드러나는 자료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유학자로서의 성호가 갖고 있던 무속에 대한 관점과 귀신론이 드러나는 자료들로서 흥미롭게 읽었다.
인용된 내용은 민추 웹페이지의 것이라 책과는 다소 번역이 다를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부분은 원문을 확인해야겠지만, 나중에 필요할 때 하기 위해서 일단은 링크와 약간의 발췌를 해 놓았다.
<<성호사설>> 제7권
무(巫): 합리적인 논증을 통하여 무속을 부정하는 논리이다. 유럽의 계몽주의자들이 ‘미신’(그리고 종교)을 부정했던 논리와 견주어 볼 필요가 있겠다.
무(巫): 합리적인 논증을 통하여 무속을 부정하는 논리이다. 유럽의 계몽주의자들이 ‘미신’(그리고 종교)을 부정했던 논리와 견주어 볼 필요가 있겠다.
무(巫)란 모두 신이 와 접한다고 하는데, 이는 곧 사람이 부르는 것이지, 귀신이 억지로 붙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는 격(覡)이 있고 무(巫)가 있었는데, 지금은 여무(女巫)만이 있어 안팎에 출입하니, 이는 사람들에게 친근하여 이득을 취함에 있어, 남자가 여자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무(男巫)가 드디어 없어지게 된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에 귀신에게 비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 중 어떤 백성의 아내 한 사람이 갑자기 몸에 신이 내렸다 하여 몸을 떨며 황당한 말을 하면서 드디어 늙은 무당을 따라 스승으로 섬긴다 하기에, 내가 그의 남편을 불러 깨우치고 또 스승으로 섬기는 것을 금하게 하였더니 귀신이 떨어져 마침내 평민이 되었다. 이로 보아 법으로 능히 금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귀신을 내쫓는 일에 대하여, 양귀(禳鬼): 여기서 이익은 축귀를 귀신과 약속한 기호로서 설명하는 특이한 논리를 편다. 귀신을 쫓는데 <<옥추경>>을 사용한다는 기록도 눈의 띈다. 현재 서울 지역에서 전승되는 귀신 쫓기에도 사용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귀신을 부리고 귀신을 쫓는 데에는 도가(道家)에 그 방법이 있는데, 그 외는 주문(呪文)은 보통 말과 다를 것이 없으니, 마귀가 두려워서 복종하지 않을 터인데도 그렇게 해 내는 것은 아마도 이 주문을 외어서 정신(精神)ㆍ기백(氣魄)이 마귀에게 이기기 때문일 것이니, 마치 지금의 군호(軍號) 따위가 군중에서 그것을 약속 신호로 삼는 데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다.
요사이 어떤 사람이 귀신들려서, 그 집 사람이 《옥추경(玉樞經)》을 외어서 귀신을 쫓으니 귀신도 따라서 외는데, 두려워하지 않는 듯이 쉬지 않고 쫓았더니, 여러 날이 지나서 귀신이 떠났으니, 증험할 수 있었다. 《심괄필담(沈括筆談)》에도 징험할 만한 한 가지 일이 있다. 백성 중에 사람을 저주하여 죽인 자가 있어, 관가에서 잡아다가 다스렸는데, 그 술법은 이러하였다. 사람이 쇠고기나 양고기를 먹은 뒤에 따라서 저주하면, 그 익은 고기가 날것으로 변하고 날것이 산것으로 변하며, 처음에는 작던 것이 큰 것으로 변하여, 완연히 소나 양의 참모습이 되어서 배를 트고 나온다. 그 주문은 ‘서방왕모도 동방왕모도(西方王母桃東方王母桃)’라는 10자에 지나지 않고 그 밖에는 다른 것이 없는데, 이 10자가 어찌 마귀를 부르는 부험[符]이 되기에 이토록 괴이한 일을 해 낼까? 거기에 마귀와 약속한 신호가 있기 때문일 뿐이다.
대저 귀신의 정상은 사람의 마음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으므로, 공자(孔子)가 “사람을 섬길 줄 모르면 어찌 귀신을 섬길 줄 알랴?” 하였다. 사람 섬기는 방법을 잘 터득한 자는 귀신도 섬길 수 있는 것이니, 성인의 말에는 이와 같이 포괄된 뜻이 있다.
<<성호사설>> 제8권
시체를 빌려 혼이 돌아오다. 가시환혼(假尸還魂)
금 세종(金世宗) 때 장성(張姓)의 남자 합득(合得)이 병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는 자기는 왕성(王姓)의 남자라고 하였는데, 대개 시체를 빌어 혼이 돌아온 것이다. 성부(省部)에서, 왕성(王姓)에게 붙여주어 아들로 삼게 하고자 하니, 세종이 말하기를 “간인들이 앞을 다투어 거짓을 만들어 내어 인륜을 어지럽힐까 염려된다. 몸이 곧 합득이니 합득의 집에 붙여주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나는 그 처리가 진실로 잘 되었다고 여긴다. 혼이 빌어서 의탁한 것이므로, 혹 빌어 의탁한 것이 없어져 버리면 어찌하겠는가?
<<성호사설>> 제9권
김재상의 전생, 김판전신(金判前身)
이미 다른 기(氣)에 의탁하여 형(形)이 된 이상, 어찌 다시 옛날을 그리는 정이 있어, 가서 그 음식을 먹을 이치가 있겠는가? 나의 소견으로는 이따위가 모두 마귀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을 귀신은 반드시 깨달아서 아무의 생일이 아무의 죽은 날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넋을 불러 속여서 미혹하게 만든 것이니, 마(魔)란 좋지 않은 귀(鬼)이다. 만약 사람이 속에 사(邪)를 끼었을 때는 미친 듯이 떠들며 까닭없이 사람을 침해하고 희롱하는 법이다. 이와 같은 일이 왕왕 있는데도 세상이 그 이치를 깊이 알지 못하고서 기이한 일로만 여기니 가소로운 일이다. 무릇 세간의 원리원칙 이외에 기괴하고 황홀한 것은 모두 마귀의 장난이라고 단정한다면 틀림이 없는 것이다.
환술(幻術)
환술(幻術)이란 귀신을 부르는 것이다. 육임(六壬)ㆍ둔갑(遁甲)은 그 유래가 오래다. 귀신이 간혹 대낮에 형체를 드러내어 변태가 백 가지로 나타나는데, 주부(呪符)의 술법이 있으면 비어 있는 속에서도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귀신과 접촉하게 되면, 귀신의 성질이 죽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백(氣魄)이 쇠진하여 도리어 귀신에게 해를 받게 되는 것이니, 비장방(費長房) 같은 유가 이것이다. 그러나 이미 불러서 오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또 반드시 몰아내어 멀리하는 수도 있는 것이다.
남만(南蠻): 일본 사람이 말하는 남만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같은 유럽 세력을 의미한다. 이른 시기에 유럽 세력이 조선을 노렸다는 처음 듣는 풍문이다.
일본 사람이 말하기를 “본국이 일찍이 조선에 대하여 큰 덕을 끼쳤는데도 조선은 알지 못한다. 지난날에 남만(南蠻)이 조선을 치고자 하여 일본더러 향도(鄕導)가 되어 달라고 청하여 관백(關伯)이 장차 허락하려 하는데, 대사마(大司馬)가 간하기를 ‘일본이 조선과 화친을 맺은 적이 오래인데 어찌하여 허락하려 하는가?’ 하여 마침내 중지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드시 실지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남만은 일본과 더불어 상선(商船)이 줄대어 오고 가는 사이좋은 나라이니 다른 날에 만약 일본과 호의를 상실할 경우, 혹시 그를 끌어들여 침략을 하려는 생각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 또한 반드시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성호사설>> 제11권
칠극(七克)에 대한 서평
기운이 모이면 형체가 이루어지고 혼백(魂魄)이 물체를 떠나면 귀신이 되는 것이니, 사람이 있으면 귀신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 기운이 모일 때에 굳고 굳지 못한 것과 오래가고 오래가지 못하는 구별이 있으니, 굳지 못하고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흩어지기 쉬우며 굳고 오래가는 것은 그 흩어지는 것이 필시 더디나, 조금 더딜 뿐, 언제나 존속할 이치는 없다.
그러나 이를 추측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선조(先祖)를 섬기는 예법이 있는 것이니, 재계하는 것은 감응하여서 오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말에 “정성이 이른 곳에 감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는데, 이를 무엇으로 증명하겠는가? 그지없이 거룩한 덕망과 은택이 있으면 만 사람이 축도(祝禱)하지마는, 일찍이 수복(壽福)이 더 보태진 것을 보지 못했다.
제삿날에 그의 거처(居處)와 음식과 웃고 말하던 일을 생각하여 마음을 여기에만 두면 반드시 그를 보게 되는데, 이는 환상(幻像)일 뿐이요 진실로 생각한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꿈이란 반드시 잠들었을 때에 나타나는데, 저것이 어찌 이것에 감응하여 꿈속에 들어오겠는가? 이런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은 형체는 소멸되어도 기운은 남아 있고, 사람이 정성들이는 것도 기운으로 작용하는 것이니, 사생(死生)이 비록 다르더라도 기운은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자석(磁石)이 바늘을 끄는 것은 기운이 상통하기 때문이니, 자석 기운을 바늘에 옮겨 주면 10년토록 자석 기운이 남아 있어 남북을 틀림없이 가리키는데, 하물며 선조와 후손은 동일(同一)한 기운임에랴! 이제 바늘을 철갑(鐵匣) 속에 넣어 자석을 약간 가까운 거리에 놓고 자석을 그냥두면 바늘도 가만히 있되 자석을 움직이면 바늘도 움직여 철갑이 그 기운을 막지 못하는 것이니, 이른바 “동일한 기운이 서로 구한다[同氣相求].”는 것을 여기에서 증명할 수 있다.
《주역》에 “귀신의 정상을 안다.”고 했으니, 정상이라고 말했은즉 신(神)의 지각(知覺)이 오히려 남아 있어 그 기뻐하고 노여워함이 또한 사람과 같을 것이다. 진실로 삼가지 아니하면 물건이 향기롭지 아니하고, 그릇이 정제되지 않으면 뜻이 성근하지 아니하고 일이 공손하지 아니하여, 사람도 또한 부끄럽게 여겨 먹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귀신이겠는가? 그 흠향하고 흠향하지 않는 것은, 오직 정결한 데 달려 있고 풍부한 데 달려 있지 않으니, 진설(陳設)한 사이에 한 가지라도 부정(不淨)한 것이 있으면 만반진수(滿盤珍羞)도 헛된 것이 되고 만다. 혹 사리에 부당한 음식을 갖추거나 또는 귀찮은 기색을 보이면 군자는 반드시 머뭇거리다가 가 버리는 것이다. 귀신은 허기를 채우려고 탐할 이치가 없어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음식 먹는 것과는 다르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릴 것은 뻔한 일이다.
지금 사람들이 혹 몸을 불결한 데 범하고 마음을 방탕한 데 빠지게 하면서, 여러 가지 음식만 차려 놓고서 흠향하기를 바란다면 이는 너무나 동떨어진 생각이다.
오직 기제일(忌祭日)에 술과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하룻동안 상례(喪禮)를 지켜 맛있는 음식을 차마 먹지 못하는 것이요, 재계에 관련된 것은 아니다.
귀신의 빌미, 귀수(鬼祟)
무릇 귀신의 정상도 사람과 같아서, 강도 같은 것이 있고 절도 같은 것도 있으니, 다만 사람이 귀신을 꺼릴 뿐만 아니라, 귀신 또한 사람을 꺼리는 것이다.
질병이 생기면 즉시 나타나는 것은 강도의 종류요, 숨어서 농간을 부리는 것은 절도의 종류인데, 무릇 증세가 괴상한 것은 십중팔구가 거의 귀신병인 것이다. 혹은 10여 년을 잠복하였다가 나타나는 것도 있고, 혹은 원기가 충실하면 스스로 물러가는 귀신도 있으며, 혹은 귀신병인지 끝내 알지 못하고 죽는 자도 많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성호사설>> 제13권
속유 척불(俗儒斥佛)
지금 유술을 하는 자들이 말끝마다 이단을 배척하지만, 그 마음이 과연 이것은 붙들어야 하고 저것은 배척해야 하는 것을 밝게 아는지 알 수 없다. 만일 도(道)를 보기를 밝게 하지 못하면 믿기를 독실히 하지 못한다. 나는 이 도를 믿어 지키기를, 불문에서 그 스승 높이듯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런 식견을 가지고 장차 어떻게 정밀하고 전일한 독학(篤學)을 배척하겠다는 것인가?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나는 속유(俗儒)들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는 바가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스승을 높이고 도를 믿는 것이 한 가지요, 안일(安逸)한 마음이 없는 것이 두 가지요, 식색(食色)을 끊는 것이 세 가지요, 대중을 사랑하는 것이 네 가지다. 식색과 사랑에 대해서는 혹 중도(中道)에 지나친 바가 있지만, 속유들의 정을 방자히 하고 욕심을 극도로 하는 것에 비교하면 과연 어떠한가? 내가 일찍이 절간에 있었는데, 치도(緇徒 중들을 이름)들이 대사부(大士夫)보다 나은 점에 대해 탄식한 바 있다.
남무 여복(男巫女服): 종교사에서 복장도착(transvestism)의 사례를 연구할 때, 우리나라 무속에서 좋은 자료를 구할 수 있다. 이 자료는 간단하기는 하지만 그런 사례의 하나로 언급될만 하다.
수십 년 전에 한 남자 무당이 있었는데 얼굴이 아름답고 고왔다. 그는 거짓 여복을 입고 사대부 집에 출입하며 안방에서 섞여 자기도 했는데, 서로서로 칭찬하고 천거하여 종적이 서울 안에 두루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의 자색을 좋아하여 강제로 가까이한 자가 있었는데, 비로소 그 거짓이 발각되어 그는 드디어 사형까지 당했고 이로 인해 추한 소문이 많이 전파되었다.
하상 망혼(下禓亡魂)
내가 보건대, 시골 무당이 노래와 춤으로 망혼(亡魂)을 불러 망혼의 말을 흉내내면서 어리석은 세속인을 유혹하여 재물을 사취하니, 마땅히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하여 없애야 할 것인데, 어찌 도리어 경전[經訓]에 보였단 말인가? 또 보건대, 우리나라 풍속이 귀신 섬기기를 좋아한다. 그 중에 만명(萬明)이라는 것은 곧 신라 김유신의 어머니인데 신을 섬기는 자가 반드시 가운데가 뾰죽한 큰 면경(面鏡)을 만들어 쓰며, 왕신(王神)이란 것은 수로왕(首露王)을 가르킨 것 같다. 이는 왕이 가장 영검하고 괴이한 것을 나타내었기 때문인데, 신을 섬기는 자가 반드시 철익의(裰翼衣)를 만들어 입는다. 철익이란 지금 무사(武士)가 입는 의상(衣裳)으로, 서로 연결된 것인데 허리춤에는 주름이 있어 현단복(玄端服)과 같고, 양쪽 겨드랑은 한데 꿰매어져 심의(深衣)와 같고, 넓은 소매에는 끝동이 없어 난삼(爛衫)과 같은 것이다. 이 면경과 옷은 반드시 당시의 제도인데 지금까지 유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들이 어찌 수천 년이 지나도록 뚜렷하여 영검하고 괴이한 것을 나타낼 이치가 있겠는가? 기도하고 제사하여 혹시 감응을 얻었다는 것도 전혀 희마(戲魔)의 농락에 불과한 것인데, 어리석은 백성들이 속은 것이다. 밝고 지혜 있는 자는 스스로 알아야 한다.
<<성호사설>> 제17권
미륵불(彌勒佛)
수년 전에 해서(海西)의 한 촌부(村婦)가, 갑자기 자신을 가리켜 미륵불이 강림하였다고 칭하면서 허황된 말을 많이 함으로써 사방 사람들이 선동되었는데, 관가에서도 능히 금하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미륵불이 석가와 원수가 되었으니, 무릇 역내(域內)의 신사(神祠)들은 모두 허황하여 참다운 것이 아니라고 하자, 이에 곳곳에서 신사들을 헐어 버렸으니, 그 믿고 따름이 이와 같았다. 조정에서 근신(近臣)을 보내어 그를 죽이라고까지 하였으나, 동쪽 산골짜기 안에는 아직도 그 잔당들이 있다고 한다.
이후에도 계속하여 이러한 자가 있으면 일체 이와 같이 처단해야 할 것이며, 곳곳에 있는 석상(石像)도 부숴 버리게 하여 백성들이 현혹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 중에 여기에 대한 잘잘못을 판단할 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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