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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혼마 규수케가 본 한국 종교

by 방가房家 2023. 4. 26.

이번에 읽은 개화기 자료는 다소 특이하다. 일본인 낭인(浪人)이라고 할 수 있는 혼마 규스케가 비판적인 눈으로 조선을 기록한 책이다.


혼마 규스케, 최혜주 옮김, <<조선잡기: 일본인의 조선정탐록>> (김영사, 2008[1894]).
이 책에도 ‘종교’라는 항목에 대한 서술이 등장한다. 한국 전통 종교들의 난맥상을 기술하는 내용은 “지금은 기백이 완전히 죽었다”고 당시 조선을 기술하는 다른 서술들과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종교 없음’이라는 서술 방식은 당시 선교사들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종교가 없는 나라’라는 선교사 담론을 이미 수용한 채 한국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1894년이니 ‘종교’(宗敎)라는 용어를 적용한 초기 기록에 해당된다. 원문에서도 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국립중앙전자도서관에 있는 원문을 찾아보았다.(글 끝에 해당 원문을 실어 놓았다) 확실히 ‘종교’라고 되어 있다.

종교
이조 이전은 불교가 매우 융성하여, 국왕이 귀의하여 믿는 것도 깊었다. 그러나 이조가 고려를 대신하여 팔도를 지배하기에 이르러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방침을 채택하자, 나라 안이 좇아서 유교로 돌아가고 불교를 신봉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매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불교는 사람을 감화시키는 세력이 없을 뿐 아리나 승려가 학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한다. 이른바 불교라는 것은 산속의 가람과 들에 널려 있는 석불과 탑뿐이다. 옛날의 그림자를 남기고 쓸쓸하게 여행객의 감개함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또 조선 사람들이 숭배하는 유교를 보면 이것 역시 거의 이름뿐이고, 각 군 각 현에 공자묘를 세워서 때로 석전(釋奠)의 예를 행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 그들이 숭상하는 바는 유교이지만, 그 표상은 허례를 일삼는 것이고 실체인 도덕의 원천을 연구하는 바가 없다. …… 조선의 도덕이 위축되어 떨치지 못하는 것은 감히 의심하고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 본래부터 국교에 관한 세력을 갖지 못하는 조선의 종교는 이미 이와 같다. 종교가 없는 나라라고 말하는 것이 어찌 없는 일을 꾸며서 하는 말이겠는가.
갈증이 나면 마실 것을 구하고 배고프면 먹을 것을 바라는 것은 사람의 정리이다. 여기에서 야소교가 널리 포교하여 그 세력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 한인들은 그들이 열심히 하는데 감화되어 끝내는 나라 전체가 천체를 숭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알지 못한다. 아아, 포교가 목적하는 바가 다만 복음을 펴서 한인의 문화를 증진시키려는데 그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또한 무엇을 말할 것인가. 다만 그 열심에 감사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 목적하는 바가 종교를 검으로 삼아 한인의 뇌를 가르고 그 혼을 빼앗아 드디어 그 살을 먹기에 이르게 되면 나는 잠자코 있을 수가 없다. 선교사의 목적이 종교에 있지 않고 그것에 있다면 조선 사람들은 깊이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혼마 규스케, 최혜주 옮김, <<조선잡기: 일본인의 조선정탐록>> (김영사, 2008[1894]), 181-83.

일본인 관찰자로서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것은 끝부분에 선교사들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낸 대목이다. 특히 “종교를 검으로 삼아 한인의 뇌를 가르고”는 사무라이의 삶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야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표현이다. 나는 종교를 다루는 글에서 이런 식의 비유를 만난 기억이 없다.
저자는 기독교 선교사들을 경계하고, 그 대신 무주공산인 한국 종교계에 일본 불교가 활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생각은 다음 글에서 볼 수 있다.

조선에 있는 일본인 승려
이상한 것은 우리나라의 불교도로서 그 교법이 조선으로부터 건너와 대역사, 대은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람이 금일 무종교, 무도덕의 파도에 출몰하는 것을 보고 막연히 손을 놓고 있다. …… 지금 우리 불교의 본국은 드디어 야소교도가 점유하는 곳이 되려고 한다. 승려된 자, 어찌 법당(法幢)을 치고 일어나지 않겠는가.
……
조선의 불교가 흥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승려가 분발하여 그 소임을 담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우리나라 승려의 책임이다. 불도는 운연과안(雲煙過眼)하지 말고 분기하라.
혼마 규스케, 최혜주 옮김, <<조선잡기: 일본인의 조선정탐록>> (김영사, 2008[1894]), 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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