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스미스의 논문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Relating Religion>>의 처음 한페이지 반을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은 종교 개념에 대한 대표적인 논문이어서 많이 언급되고, 특히 나도 자주 써먹는 대목이다. 예를 들면 덧씌워진 종교 개념에 대한 최근 논의들. 이번에 아예 필요한 부분을 번역해버렸다. 이 논문의 대강을 보려면 이 발제문을 참고할 것.
Jonathan Smith,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in Relating Religion: Essays in the Study of Relig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179-180.
“신세계”(New World)에 대해서 영어로 쓰여진 두 번째로 오래된 묘사인 <<새로운 인도에 대한 보고서>>(A Treatyse of Newe India, 1553)에서 리차드 에덴(Richard Eden)은 카나리아 군도 원주민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콜럼부스가 그 곳에 처음 들어갔을 때, 주민들은 벌거벗었고, 부끄러움도 없었고,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나 종교도 없었다.”1) 같은 해에, 정복자 역사가 페드로 시에자 드 레온(Pedro Cieza de Léon)은 그의 대작 <<페루 연대기>>(Crónica del Perú)의 제1부 첫머리에서 북 안데스 원주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가 이해하는 한, 그들은 어떤 종교도 지키고 있지 않으며[no …… religion alguana, á lo question entendemos], 예배드릴 집도 전혀 없다.”2) 두 묘사 모두 사실성 면에서는 부정확하지만, 거기에 내재한 공식들은 16세기에 시작된 ‘종교’라는 용어의 사용과 이해가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며, 그 확장에 의해 제기되는 끊이지 않는 쟁점들을 미리 보여준다. 그 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1) ‘종교’는 토착적(native) 범주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특징짓는 일인칭 용어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토착 문화의 어느 측면에 대하여 외부로부터 부여된 범주이다. 그 용어 내용에 대하여 유일한 원인이 되는 이는 타자, 위의 경우에는 식민지 개척자들이다. (2) 이들 가장 초기 공식들에서조차도 보편성이 함축되어 있다. ‘종교’는 보편적인 인간 현상으로 생각되어진다. 그러므로 에덴과 시에자 둘 다 그들이 생각한 종교의 없음이 특기할만한 것으로 보였다. (3) 이차의 유적(類的) 개념 ‘종교’를 구성함에 있어서, 종교의 속성은 타자들에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들이다. 위의 인용구에서 이 친숙함은 “하느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가 이해하는 한 … 종교”라는 구절들에서 표시된다. (4) ‘종교’는 인간학적(anthropological) 범주이지 신학적인(thrological) 범주가 아니다. (아마 유일한 예외는 19세기 미국의 독특한 용법인 "to get religion"이나 "to experience religion"[“To become religious or devout”의 의미]일 것이다. 종교는 인간의 사고와 행위를, 흔히 믿음이나 행위 규범의 관점에서 묘사한다. 에덴은 “종교”의 내용을 전자의 의미로 이해했고(“하느님에 대한 지식이나 종교도 없었다.”), 시에자는 후자의 의미에서 분명하게 한다.(“어떤 종교도 지키고 있지 않으며 …… 예배드릴 집도 전혀 없다.”)
1) R. Eden, A Treatyse of the Nwew India (London, 1553), sig. M ii, in the facsimile published by the Readex Microprint Corporation as part of their Great America series (n.p., 1966); see also the printing of the Treatyse in E. Arber, ed., The First Three English Books on America (Brimingham, 1885; reprint, New York, 1971), 3-42. The Treatyse is a free English rendering of Sebastian Münster, Cosmographiae universalis libri vi (Basel, 1550), book5.
첫 항해의 <<일기>>(Journal)에 나오는 콜럼부스의 언급은 사실 흔히 생각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일기에서 가장 흔한 종교적 지칭은 “신앙”이나 “거룩한 신앙”(21번)이고, 이것은 항상 로마 가톨릭을 가리킨다. 이와 비슷하게 “종교”(세 번 사용됨)라는 용어는 가톨릭을 위해 예비되었다.(O. Dunn and J. E. Kelly, Jr., eds., The Darios of Christopher Columbus's First Voyage to America 1492-1493, abstracted by Fray Bartolomé de las Casas, American Exploration and Travel, 70 [Norman, OK, 1989]: 140, 185, 385) 이러한 용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콜럼부스는 원주민들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고 묘사한 적이 없다. 그보다는 콜럼부스는 여섯 차례에 걸쳐 그들에게는 “분파(sect)가 없다”고 주장했다. (Diario, 68, 88, 126, 142, 184, 234) “분파”가 “우상숭배”(idolatry)와 짝지어질 때, 그것은 분명히 부정적이다. 그래서 콜럼부스는 당시 유럽에 대해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여, 우상숭배를 하고 스스로 파멸의 분파를 받아들이는” 곳으로 말한다. 반면에 스페인 왕정은 “마호멧 분파와 모든 우상숭배와 이단들”의 영원한 적대자라는 점에서 칭송받는다.(Darios, 16, 18) 적어도 두 군데서 콜럼부스가 원주민들은 “분파가 없다”고 보고했을 때, 그는 “그들은 우상숭배자도 아니다”라고 덧붙이고, 그래서 그들을 “우리의 관습과 신앙”으로 개종시키기 쉽다고 덧붙였다. 다음 글에 있는 나의 언급을 볼 것. J. Z. Smith, "Classification," in W. Barun and R. T. McCutcheon, Guide to the Study of Religion (London and New York, 2000), 39-40.
2) P. Cieza de Léon, Parte primera de la Chrónica del Perú (1553), in the edition by E. de Vedia, Historiadore primotivos de Indias, Bibliotheca de Autores Españoles, 26 (Madrid, 1913-18), 2: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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