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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천주' 발견의 뒷이야기

by 방가房家 2023. 4. 26.

최근에 내가 했던 일은 한국 기독교에서 ‘하느님’이라는 말이 언제 어떻게 쓰이기 시작하였는가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느님’이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다가 기독교를 만나(혹은 동학을 비롯한 민족종교들을 만나) 쓰임을 받았다는 믿음은 일종의 신화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하느님’은 기독교와의 만남의 계기에서 출현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만남을 추적하는 일을 아직 많이 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천주(天主)’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을 때처럼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아시아 기독교 전통에서 기독교 신의 이름으로 천주가 사용된 것은 마테오 리치의 활동을 통해서이다. 리치가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뒷이야기가 있다. 리치의 <<보고서>> 2권 3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중국 선교를 시작한 예수회 선교사) 루제리와 파치오가 일전에 자오칭에 머물 무렵, 틴 니코라는 선량한 청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신부들이 머물던 천녕사 근처에서 일하고 있었고 신부들과 아주 가깝게 지냈으므로, 루제리는 다시 자오칭으로 올 기회가 있으면 틴을 그리스도교 신자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제리는 그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고, 자오칭을 떠날 때 틴에게 미사를 위한 제단을 맡겼다. 그리고 몇 달 후, 루제리가 리치와 함께 자오칭에 돌아와 틴을 만나러 갔을 때, 틴은 자기 집의 조그만 방 하나에 그 제단을 모셔놓고 있었다. 그곳에는 우상 따위는 일체 장식되어 있지 않았고, 다만 벽 중앙에 한 장의 판자가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 커다랗게 ‘천주(天主)’라는 한자 두 글자가 굵게 쓰여 있던 것이다.
이 해후는 신부들에게 커다란 위안이었습니다. 청년과 그 가족들은 신부들의 귀환을 마음속으로부터 기뻐하며 참으로 뜨겁게 우리를 껴안았습니다.
(히라가와 스케히로, 노영희 옮김, <<마테오 리치: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 (동아시아, 2002), 115.)

원래 한자문화권에서 기독교 신 'God'을 표기하는 것은 엄청난 난제였다. 아쉬운 대로 유교 문헌에 등장하는 상제(上帝)를 사용하거나, 일본에서 선교한 예수회의 경우에는 라틴어 명칭 그대로 ‘데우스’(Deus)라고 일본말로 표기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던 중 한 중국인의 고백적 언어에서 천주(天主)라는 해법을 발견한 마테오 리치의 기쁨은 어떠했으랴. 리치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천주는 동아시아인들이 하느님을 이해하는 최상의 개념이 되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있듯이 온 천하를 주재하는 우주의 주인이 있는데, 그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하느님 이해의 논리보다 문화적으로 더 설득력 있는 논리는 생각해내기 힘들다.
학자들 중에는 천주라는 한자 조합이 전의 어느 문헌에 나왔고.. 하는 식의 논증을 하는 이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은 쓸 데 없다고 생각한다. 전에 똑같은 글자가 있었던 없었건 간에, 리치가 제안한 천주는 새로운 언어였기 때문이다. 리치가 기독교를 전달하는 맥락에서 고도의 번역 작업을 거쳐 전에 없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서는 성립이 불가능한 언어이다.
나는 ‘하느님’이라는 우리말 역시 새로운 언어의 출현이라는 맥락에서 탐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느님이 천주로부터 파생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리치가 천주를 발견한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찾지는 못하겠지만(그리고 에피소드 자체로는 그리 중요한 것이 못 되지만), ‘하느님’ 출현의 맥락을 잘 설명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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