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대, 남아프리카 선교사 콜렌소(John William Colenso)는 줄루족 은기디(William Ngidi)의 도움을 받아 성서를 번역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서를 읽던 은기디는 다음 부분에서 아연실색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남종이나 여종을 몽둥이로 때렸는데, 그 종이 그 자리에서 죽으면, 그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루나 이틀을 더 살면, 주인은 형벌을 받지 않는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1:20-21)
은기디가 읽은 성서에서는 재산이 “돈”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종을 돈이라고 일컫는 구약의 비인륜적인 태도에 은기디는 항의한다. 콜렌소 선교사는 이해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당시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그 지성적인 현지 기독교인과 함께 느꼈던 반감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과 양심도 그의 마음에 완전히 일치했다.” 콜렌소와 은기디의 그저 일시키고 따르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콜렌소는 은기디의 지적을 수용하였고, 성서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서 현지인의 관점에서 성서를 “되읽는” 작업을 했다. 현지인들로부터도 기독교에 대해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기독교 교리 중 비인간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수정하였다. (David Chisdester, Savage System, pp.138-140.) 이런 열린 태도 때문에, 콜렌소는 나중에 본국 영국에서 이단 혐의로 고발당해 재판까지 해야 했다.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그 사이 그의 명예는 실추되었다.
은기디와 콜렌소의 관계는 남아프리카 기독교사에서 꽤 다루어지는 사례인 것 같다. 검색되는 문서들이 꽤 있고,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논문이 있다. William Ngidi and John William Colenso and the debate between Science and Religion in the mid-nine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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