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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절차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될 때 산스크리트에서 한문이라는 두 문명의 근간이 되는 언어 사이에서 번역된 과정은 세계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작업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책이 하나 있어 즐겁게 읽고 궁금했던 부분을 메모해 둔다. 하나는 번역 원칙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번역이 이루어졌던 역장(譯場)에서 얼마나 체계적으로 번역이 이루어졌나를 설명한 부분이다. 나는 요즘도 틈틈이 혼자서 앓아가며 번역을 하고 있는데, 현대에 행해지는 이 주먹구구식의 번역에 비해 고대에 행해졌던 이 번역 절차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현장[현장법사]은 후대에 ‘오종불번’(五種不飜)이라고 부르는 번역방식을 사용하였다. 산스크리트어 그대로 음역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5가지 유형의 어휘를 말한다. (1)다라니와 같은 비밀스러운 어휘는.. 2023. 4. 30.
유교라는 문화의 덩어리 한 전통이나 한 민족이나 한 국가를 어떤 판에 박힌 관념(stereo type)으로 통으로 묶어 매도하는 버릇,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종교 전통을 공부하면서 배우는 가장 큰 수확의 하나이다. 유교를 둘러싼 논쟁들은 따지고 보면 대부분 우리의 고정관념의 산물이다. 이 책은 그러한 우리의 관념들에 대해 설득력 있는 자료를 통해 반론을 펼친다. 우리가 유교라고 통칭하는 문화의 덩어리 속에는, 비록 철학, 역사, 문학, 정치, 경제 등의 영역으로 세분화되지는 않았지만, 지구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2천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일구어온 삶의 흔적이 녹아들어 있다. 그 안에는 권위주의적인 교리의 일면도 있지만 부당한 권위에 대항하는 비판적 지성의 목소리도 담겨 있으며, 인간을 도덕적 질서 안으로.. 2023. 4. 30.
토테미즘을 최초로 언급한 기록 토테미즘이라는 용어는 맥레넌의 1869년도 논문을 통해서 학술용어가 되었는데, 맥레넌이 이 용어를 이끌어낸 자료는 존 롱(John Long)이라는 상인의 1791년도 기록이다. 존 롱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1791년에 출판된 그의 책 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는 모피 상인으로 북미지역을 왕래하였고 특히 오지브와족 언어를 배우고 원주민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캐나다 인명사전 참조) 토테미즘이 언급된 부분의 서지사항은 길지만 다음과 같다. John Long, (London: Printed for the author, and sold by Robson, 1791), 86-88. 토템이라는 언어는 존 롱이 오지브와족(롱의 책에서 사용된 이름은 치퍼웨이Chipperw.. 2023. 4. 30.
불교 전래와 토착문화 매우 산뜻한 불교 개론서 에서 불교의 전래 과정에 대한 내용.(이 책의 주요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메모를 남길 생각이다.)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종교가 전해질 때 토착전통을 자신의 체계 내로 복속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많은 이들이 불교가 토착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다고들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좀더 완벽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즉 불교가 전래된 이래, 그 이전까지 가장 높게 받들어지던 토착신들은 불교의 신으로 개종되었고, 다른 나머지 신들은 적절한 불교 의례들을 통해서 복종시키거나 파멸되어야 할 악귀 정도로 그 서열이 강등되었다. 물론 불교경전에서는 이러한 과정들을 그 토착신들이 자발적으로 불교에 귀의한 것으로 묘사한다.[베르나르 포르, 김수정 옮김, (그린비, 201.. 2023. 4. 30.
애니미즘 사전 항목 내용(치데스터) 한 백과사전의 “애니미즘” 항목. 종교학자 데이비드 치데스터가 쓴 내용이다. 몇 부분을 메모하였다. David Chidester, "Animism," In Bron Taylor (ed.), (London: Continuum, 2005). 1. “애니미즘이라는 용어는 종교의 한 유형이 아니라 종교에 대한 한 이론을 일컫는다.”(78) 첫 문장이 이 용어에 대한 오해의 핵심을 지적한다. 애니미즘은 현실에 존재하는 종교 전통이 아니다. 그것은 학자들의 이론적 구성물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대중적으로 사용될 때 엄밀한 존재감을 지닌 것으로 인식된다. 선교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법이 그 예이다. [타일러의] 용어는 유럽인들의 세계종교 목록에서 현대의 토착 종교인들을 애니미스트라고 동일시하는 일이 흔히 있을 정도로.. 2023. 4. 28.
십자가를 목에 건 귀신 한 무당의 진술에서 기독교와 관련을 가진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되어 기록해둔다. 예수쟁이가 끼면 굿이 잘 되지 않는 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어도, 이처럼 신자(혹은 예비 성직자)가 귀신으로 나타나는 예는 처음 들어보았다. 귀신이 영특해저서 종교인[무당]을 갖고 노는 것이지요. 아마 어설프게 기도하는 무당이 이 귀신들을 떼려고 한다면 실패했을 것입니다.……또 다른 남자 귀신은 십자가를 목에 건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귀신이 마지막까지 잘 안 나갔습니다. 세 시간 동안 저와 씨름했습니다. 왜 당신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십자가를 목에 걸고 종교인의 수행을 하다가 죽었냐고 물으니 사랑하는 여인을 결국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꿈에 계속 나타나고 십자가를 목에.. 2023. 4. 28.
제임스의 논의: 귀신에서 하느님으로 윌리엄 제임스의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의 3장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실재성”The Reality of the Unseen이다. 그는 여기서 귀신 이야기와 하느님에 대한 감각을 연속선상에 놓고 논의를 진행한다.(이것은 오토의 논의보다 앞선 것이다.) 그는 별다른 껄끄러운 논의 없이 천연덕스럽게 사례들을 이어간다.(62-75) 사례와 사례들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귀신 이야기는 하느님 이야기가 되어 있다.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다.(인용한 내용은 (대한기독교서회, 1997)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사례1) 한 친구가 밤에 느낀 무시무시한 느낌. “갑자기 나는 그 무엇인가가 나의 침실 안으로 들어와서 침대 곁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불과 1-.. 2023. 4. 28.
귀신과 하느님은 한뿌리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대중적인 반감이 집중되었던 부분은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것이었다.(이 대중적 감수성은 기독교적 감수성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인간과 원숭이라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 존재들이 발전의 연속선상에 놓인 것에 대한 생래적인 반감이었다. 19세기말~20세기초, 종교학의 초기 이론을 형성한 종교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반감에서도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미신’이나 ‘이교도’라고 불렀던 녀석들이 버젓이 종교라는 범주 안에 들어와서 기독교와 연속선상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불쾌했던 것이다. 현재 관점에서 진화론은 고등 종교와 하등 종교의 차이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기각된다. 그러나 당대에는 반대 이유에서 비난을 받았다. 진화론적인 이론에서는 미신들을 기독교와 감히 “연속선상”에.. 2023. 4. 27.
모르겠소, 할 수 없소, 망하겠소, 놉시다 타일러의 잔존물survival 개념이 한국에서도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읽은 된 선교사 헐버트의 1900년 글에서 특이한 주장을 만났다. 고유 신앙과 불교의 결합은 이해할 만한데, 불교의 외피 아래 흐르는 한국 고유 신앙의 정신을 네 한국어 표현으로 포착한 것은 일단 기발하다. 한국 고유의 귀신론demonology은 불교와 결합해서, 서로를 분별해내기 힘든 복합적 종교composite religion를 형성하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교의 형식 아래 네 근본적인 흐름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신비주의, 운명론fatalism, 염세주의pessimism, 정적주의quietism이다. 이것들이 한국인의 정서에 내재해 있음은 그들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모르겠소”(I don'.. 2023. 4. 27.
사람을 일컫는 방房 네덜란드의 한국학자 왈라벤의 다음 논문에는 “무당의 범주”라는 부록이 짤막하게 실려 있다. 간단하지만 주목할만한 내용이어서 번역해 실어둔다. Walraven, Boudewijn C.A. "Shamans and Popular Religion Around 1900," In Henrik H. Sorensen, ed. (Copenhagen: Seminar for Buddhist Studies, 1995), 130. 신문에서 ‘방房’으로 끝나는 다음과 같은 이름들을 볼 수 있었다. 방은 제주도에서 무당을 가리키는 말인 심방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을 가리키는 접미사이다. 이 이름들이 개인의 별명을 의미하지 않음은 그 맥락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첫 번째 이름[작두방]은 겉으로는 그런 식으로도 사용되긴 했지만. (.. 2023. 4. 27.
절에서 지내는 제사 현재 절에서 지내는 천도재에 관한 논문에서 흥미로운 진술을 볼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한 절의 주지께서 하신 말씀. 제사를 점점 절에서 많이 지내는 추세죠. 이제 제사 많은 집 같은 경우에는 하루로 정해가지고 지내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벌써. 1년 제사 지낼 거를 쫙 모아서 하루에 다 잡아가지고 절에서, 아주 합동천도제로 해버리는 거야.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는 날은 작은 아들은 교회 다녀, 셋째아들은 천주교 다녀, 하나는 뭐 절에 다녀, 가지각색이야. 막 요새 그렇다고 다종교시대니까. 그러니까 염불 하다보면 ‘하느님 아버지시여’ 하는 사람도 있고, ‘성부와 성자, 성신…’, 하하! (연구자: 큰절은 합니까?) 그런 사람은 큰절 안하죠. [구미래, “불교 천도재에 투영된 유교의 제사이념”, 편.. 2023. 4. 27.
일본의 초목불성론 일본 종교에 대한 한 발표에서 듣게 된 초목성불론. 일본다운 기묘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일본 중세에는 ‘초목실개성불’(草木悉皆成佛)이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경문처럼 널리 칭해졌다. “초목이라도 성불할 수 있다”는 뜻의 초목성불론은 원래 중국에서 온 것이다. 중국에서 초목성불론의 주장은 공空이라는 절대적 입장에서 볼 때 중생(인간)과 초목(자연)은 동질적이며, 양자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데에 그 핵심이 있다. 그래서 중생이 성불하면 초목도 성불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붓다(깨달은 자)의 절대적인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가 평등하게 진리 그 자체이고 거기서는 중생과 초목의 구별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초목성불론이 일본에 수용되자 미묘하게 변질되고 만다. 즉 일본에서 초목성불론은 공이나 부처의 절.. 2023. 4. 27.
유교 귀신론 간단 메모 논문 두어 편 읽고 정리할 내용은 아니지만, 더 깊이 공부할 기회는 없을 것 같아 유교 경전에서 귀신에 관련한 중요한 원문 몇 개를 정리해 본다. 유학의 귀신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원문들이다. 참고한 논문은 다음과 같다. 김현, “귀신: 자연철학에서 추구한 종교성”, 한국사상사연구회, (예문서원, 2002). 차남희, “16`17세기 주자학적 귀신관과 의 귀신관”, 40-2 (2006년): 5-25. 1. 원시유교 경전에서 귀신론 논의의 역사를 관통하는 두 줄기는, 제사 대상으로서의 귀신의 존재를 승인하려는 태도와 자연현상의 일환으로서 합리화하는 태도라고 생각된다. 고대 문헌에서 이 두 태도를 볼 수 있다. 귀신의 덕을 찬양하는 은 제사에서 받들어지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이다.(후에 다산은 이 구.. 2023. 4. 27.
누구든지 무엇인가 가르쳐줄 수 있다 에코의 에는 갑자기 ‘학문적인 겸손’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제목만 보면 에코 분위기와는 다른 내용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역시 그는 하나마나한 훈계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음은 그의 체험에서 비롯한 조언이다. 어느 날 파리의 어느 책 손수레에서 필자는 조그마한 책자 하나를 발견하였다.……그 책은 발레라는 어느 수사의 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필자는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레 수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되풀이할 뿐 전혀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한 불쌍한 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가 그 책을 계속 읽은 것은 ‘학문적인 겸손’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고집 때문이었고 필자가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필자는 계속 읽었고, 어느 지점에선가 거의 괄호 안에 들어있듯이 아마도.. 2023. 4. 27.
빗나간 해석 기독교인들은 일본의 압제에 애국적 순교자가 되었다. 평범한 한국인은 기독교인이 되어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침략자에 대한 저항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1919년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선언문을 발표했을 때 서명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기독교인이었다. 그 당시 한국의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불과했다. 최근에 일어난 박해는 폭력의 정도에서 일본인들의 박해를 따라갈 수 없지만 여전히 계속 이어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남한의 군사독재에 맞서 대중의 저항이 커지자, 교회는 개혁을 강하게 요구했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함께 전국 시위를 주동하고, 주교와 신자들은 정치범이 되어 수없이 감옥에 갇혔다. 한국 교회는 해방신학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고친 민중신학으로 발전시켰다. 반정부 지도자 김대중은.. 2023.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