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인용문에서는 텍스트가 제작된 시대적, 문화적 맥락이 예수 영화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설명된다. 예들이 디테일하다. 신경 쓰지 않으면, 그리고 상당한 감각이 없으면 흘려버릴 내용들이다. 이런 부분들도 찾아보고 확인해야 할 숙제로 내게 주어진 내용. (아래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 식사 장면)
예수 영화들이 우리의 문화적 경험에 의존하며 그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언한다는 사실은 영화들에서 잘 알려진 문화적 생산물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언급이 많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영의 <예수>에서 요셉은 어린 예수와 사촌 요한(미래의 세례자 요한)을 데리고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도시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 요셉은 성전을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친다. “예수야, 요한아, 우리는 더 이상 나사렛에 있는 것이 아니란다.” 시청자들은 이것을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의 유명한 다음 대사의 말바꿈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캔자스에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토토.” <위대한 생애>의 물리적 배경은 고전 서부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페일 라이더>와 <셰인> 같은 영화에서 온순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거주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면서 서부 프런티어에 달려 들어가는 “나쁜 녀석들Bad Guys”처럼, 로마인들은 지역 유대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면서 먼지 휘날리는 갈릴리 마을로 쳐들어간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의 꿈 장면에서 예수는 바울에게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행진하였다.”라고 상기시켜주는데, 이것은 그 유명한 민권운동의 1963년 워싱턴 행진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영화는 서양의 종교적 예술과 음악의 유명한 작품들을 광범위하게 끌어들인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마지막 식사 때 전기적 예수와 제자들이 앉아있는 배치도를 보여주는 데 흔히 사용되며,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할렐루야 합창은 예수의 가장 스펙터클한 기적—나사로를 살리는 기적—의, 또한 그 자신의 부활의 사운드 트랙이 된다.
Adele Reinhartz, <<Jesus of Hollywood>>(Oxford University Press, 2007),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