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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길 전통적인 무교의 사후세계에서 재료를 발굴하고 현대화시켜 만든 웹툰 , 웹툰의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취합하고 판타지 장르의 영화적 비주얼과 관습으로 재가공한 영화 . 결과적으로 영화를 통해 전통적인 사후세계를 알아보기 힘든 꼴이 되어버려 (나의 유일한 관심인) 교육적 가치는 영 없게 되어버렸다. 오늘 읽은 책에서 영화의 배경이 된 원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두 대목을 메모해 놓는다. 1. 진오기굿의 뜬대왕거리에 등장하는 시왕가망, 중디가망, 말명 영화에서는 저승사자의 역할이 무한히 확장되었지만, 원래 저승사자는 망자를 저승길 초입까지 데려오는 제한된 역할을 하고, 저승길 인도는 다른 신격의 역할이다. 다소 불분명한 점도 있지만, 이들이 저승길 인도를 맡은 이들이다. (1)시왕가망: 망자가 저승으로.. 2023. 5. 2.
새로운 죽음 전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해석의 전권을 위임하는 일은 당연했다. 중세에는 이러한 죽음의 예술(ars moriendi)을 담당하는 주체가 영적 대리인, 즉 목사나 신부였으며, 현대에는 의사가 전권을 위임받아 ‘백의白衣를 두른 반신半信’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추세이다.……성직자들이 죽음의 순간이 도래했다고 확신하였을 때 그 사람에게 영원한 안식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성스러운 ‘마지막 향유’를 이마에 떨어뜨리는 행위는 사망 직전 단 한 번 이루어졌고, 이는 수백년 간 절대불변의 임종 예식 절차로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오늘날 천주교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마지막 향유’는 더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의사가 가지는 전지적 후견자로서의 태도는 특히 임종과 관련해서 볼 때 근본적.. 2023. 5. 2.
조선 사찰과 기생 한 일본인이 1932에 쓴 조선 기생관광에 대한 책에서 사찰 이야기가 나온다. 사찰이 유흥의 장소로 사용된 것은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일인데, 일제강점기에는 기생 관광과 관련된 곳들도 있었던 것 같다. 통상 기생과는 세 곳에서 놀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조선의 사찰이다. 불사와 주색은 꽤 인연이 먼 구색이나 사실이므로 잘잘못을 가릴 필요가 없다. “산 있고 절 있고 꽃 있고 한국 기생 나오니 우토”라는 시구가 있다. …… 경성 부근에는 왕십리나 청량리 방면에 몇몇 사원과 암자가 있으며 또 한강의 남쪽 강변에서 산으로 들어간 곳에도 온천 숙박시설과 연락을 취하며 손님을 맞는 절이 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청량리로 이어진 간선 도로에서 좌측으로 들어간 〇〇사일 것이다. 절을 중심으로.. 2023. 5. 2.
슈바이처의 선교 경험 슈바이처의 선교 회고록에서 인상 깊은 몇 구절을 발췌. 원서를 확인할 수 없어 대부분 번역서를 따름. 2016년 출판된 책이지만 사실상 1976년 번역이어서 옛 어투가 정겹다. ‘토인’(土人)이 ‘native’의 번역인 것은 이번에 새삼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다. ‘자연아’(自然兒)는 무엇을 번역한 것인지 모르겠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16). 1. 주술의(呪術醫)로 불린 슈바이처 토인들 사이에서 나의 이름은 ‘오강가’라 불린다. 갈로아 말로 ‘주술사’라는 뜻이다. 흑인의 의술자는 모두 동시에 주술사가 되므로, 의사에 해당하는 다른 말이 없는 것이다. 나의 환자들은 병을 고치는 자는 또한 병을 멀리서 일으키는 힘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좋은 사람이.. 2023. 5. 1.
회복 의례의 부재 회복한 사람에겐 의례를 치를 자격이 있다. 여러 원시 부족에게는 재진입 의례가 있었다. 낙인이 찍힌 사람을 정화하여 다시 사회로 받아들일 때 치르는 의례다. 이 의례는 부활을 뜻한다. 의례 후에 삶은 새로이 시작된다. 내가 겪은 두 번의 심각한 질병은 병원에서 받은 검사나 처치로 마무리되었고, 이런 결말은 의례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대사제라고 할 수 있는 의사들은 한낱 의료 기술자로만 남기를 택했다. 자신들이 개입함으로써 몸의 상징적인 가치가 변하지만 의사들은 이런 자기 힘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하여 환자나 의사 모두 질병에서 영적인 차원의 경험을 놓친다. 의례에 뒤따르는 명료한 자기 인식을 의학의 세계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리하여 아팠던 사람이 다시 일상의 삶으로 재.. 2023. 5. 1.
더글러스, 의례와 경험 "의례는 틀을 제공함으로써 주의를 집중시킨다. 의례는 기억을 되살리고 연관된 과거를 현재와 연결시킨다. 의례는 이 모든 것을 통해 지각을 돕는다. 그러므로 의례가 우리가 경험한 바를 더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돕는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의례는 깡통과 상자를 개봉하기 위한 언어적 지시를 도식화한 도움 그림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만약 의례가 단지 일종의 이미 알려진 것의 감각적 지도나 도해라면 그것은 언제나 경험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의례는 이러한 이차적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의례는 경험을 형성하는 데 선행할 수 있다. 의례는 그것이 없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지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의례는 단순히 경험을 외적인 것으로 만들거나 대낮으로 끌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 2023. 5. 1.
자살테러와 희생 최근에 번역된 책에서 탈랄 아사드는 이슬람 관련 자살테러를 논하는 종교학자, 구체적으로 자살테러에 ‘희생’을 적용하는 이반 스트렌스키의 설명에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이슬람 전통에서 짐승의 도축을 수반하는 희생제의(다비하)를 행하는 경우는, 신의 명령에 응할 때, 신에게 감사를 표할 때, 특정한 잘못을 뉘우칠 때, 이렇게 세 가지 경우다. 이 중에 자살테러자에 해당되는 것은 없다. 희생제의를 통해 뭔가가 ‘성스러워진다’라는 스트렌스키의 생각은 보기보다 막연하다.……희생제의를 통해 ‘성스러워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희생제물을 받는 신, 희생제물을 바치는 인간, 희생제물, 셋 다 성스러워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희생제의가 희생제물을 바치는 사람을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탈랄 아사드, (창.. 2023. 5. 1.
침묵하는 하느님에 대한 냉소, 하지만 그를 버리지 않음 며칠 전 작고하신 엘리 위젤의 에서 그의 신학적인 언급들을 옮겨놓는다. 나는 이 소설이 ‘고통을 통해 신과 만나는’ 친교의 신정론의 사례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읽어보니 다른 맥락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대에 매달려 있는 하느님”은 그 분이 인간의 고통 한 가운데 계신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이러한 고통의 순간에 침묵하시는 그 분에 대한 냉소에 더 가까운 표현이었다. 이 소설은 15세 소년의 아우슈비츠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신과의 역설적인 조우라는 고차원적인 신학보다는, 이런 절대자라면 분연히 맞설 수도 있다는 치기가 더 느껴지는 글이다. 그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쪽을 택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그는 여전히 유대 전통 안에서 사유하였고 그렇기에 하느님에게 화낼 여.. 2023. 5. 1.
메모, "무당, 여성, 신령들" 로렐 켄달, , 김성례&김동규 옮김 (일조각, 2016). 1970년대 한국 무교의 흥미로운 모습들 중에서 몇 개만 옮겨 놓는다. 1. 펌프와 기우제 가뭄이 들었을 때는 각 가정에서 돈과 곡식을 추렴해 만신을 고용하고 도당 나무 옆에 있는 용왕의 우물가에서 굿을 했다.……1977년 여름 가뭄이 찾아왔을 때 노인들은 현재 마을에 펌프 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굿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94) 2. 마을 주민들의 열광적인 ‘미신 활동’은 새마을운동의 지도자들과 그 지역 교회 목사들에게는 끊임없는 불만거리이다.……이곳에서 텔레비전 세트는 나무 동법을 옮겨와서 축귀의례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휴대용 녹음기는 무당이 긴 무가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105) 3. 논문 준비의 대가 향로 .. 2023. 5. 1.
함께 살았던 세월 이언 아몬드, 최파일 옮김, (미지북스, 2010). 따라가기 벅찬 복잡한 사연들이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저자의 필치는 참 매력적이다. 이런 일(무슬림과 기독교인이 한데 뭉쳐 싸우는 일)을 가능케 한 무수한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소박하지만 힘 있는 쟁점은 그저 “함께 있음”이 그런 일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이웃으로 함께 지내고 같은 언어와 문화를 지닌다는 것이 종교를 넘어 연대하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터키의 한 민가에 남은 그리스인의 흔적을 보며 “무슬림과 기독교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마을의 소문을 주고받으며 같은 신문을 읽고 같은 커피하우스에서 같은 악기로 연주한 같은 가락에 맞춰 함께 춤추던 시절에 대한 증언”(322)을 읽어낸다. 그는 이러한 증언을 .. 2023. 5. 1.
죽음을 음식으로 맞선 유교 죽음을 음식으로 맞선 문화가 있다. 유교는 초월의 세계, 영혼들만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그리하여 현세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세적이라는 말이 합리적이란 말로 대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종교적이란 말과 대립각을 이룰 필요도 없다. 오히려 유교의 현세성을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형식을 의례화하여 비일상적인 것을 극복하는 문화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성의 의례화가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유교 상례에 나타난 음식의 공궤(供饋)를 들 수 있다. 어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유교 사회에서도 죽음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별로 현실화되기 때문에 애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슬픔의 시간 속에서도 유교 상례는 망자에 대한 음식의 제공을 중단하지 않고, 이를 통해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 .. 2023. 5. 1.
20세기 전반기의 페티시들 판데르레이우는 페티시즘을 설명하면서 어김없이 현대인들을 연결시켜서 이야기한다. ‘원시종교’가 타자의 신앙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기본적인 요소라는 그의 입장은 이러한 식의 설명에서 잘 나타난다. 언급되는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선교전시회 사례는 기묘하다. 선교사들이 수집해온 페티시는 분명 선교 전리품의 의미이자 미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그것이 의도치 못한 종교성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던 듯 하다. 구체적인 자료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심지어 현대인들조차도 자신을 보호하는 힘을 가까이할 필요를 느낀다. 독일군이 파리를 폭격했을 때 네넷트Nénette와 랭땡땡Rintintin이란 유리구슬로 만든 두 종류의 인형이 잘 팔렸다고 한다. 우리 비행가들은 곰 인형을, 우.. 2023. 5. 1.
의료적 은유: 퀴닌 개신교회의 의료적 은유에 대해 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언더우드와 관련해 생생한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그가 퀴닌이라는 특정한 약을 수입해서 판매했다는 것, 약품의 효과를 복음 전도에 직접 연결시켰다는 것, 그의 사업에 대한 비난 때문에 결국 접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사례이다. 특히 그의 전도 문구 “약으로 육체의 병을 고칠 수는 있지만 마음의 병을 고칠 수는(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것은 영화 의 김집사의 대사와 거의 비슷하다. 한국에 간헐열이나 기타 다른 열병들이 만연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한국인들은 매우 일찍부터 그 열병에 대한 퀴닌(quinine)의 가치를 발견하고 비싼 값에도 기꺼이 그것을 샀다.……그래서 그[언더우드]는 믿을 만한 미국의 도매 약품회사에 편지를 하여.. 2023. 5. 1.
1894년 여름, 서울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 분위기와 어울리는 기록이 눈에 들어온다. 120년 전 서울에서 활동한 선교사 언더우드에 대한 기록. 서양인으로서 한국의 여름이 무척 힘들었던 것은 알겠는데, 이 기록에서 무더위는 비위생과 연결되어 죽음의 공포로 서술된다. 그들의 위생학 이론에서 매우 해로운 기후로 분류되었던 듯. 한국이라는 배경을 제외하고 보면 아프리카 정글에서 겪은 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구심은 떠나지 않는다. 정말 그 정도로 살기 힘든 곳이었나? (서울에 짱박혀 있는 내게 이 기록은 말한다. 휴가 없는 한국의 여름은 죽음이라고.) [청일전쟁 때문에]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미 해병대가 서울까지 들어왔고, 전쟁 동안에는 모두 서울에 남아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무척 무.. 2023. 5. 1.
빅데이터의 부족部族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유력한 방법은 ‘분류’하는 것이다. 무질서한 자료를 연관된 사물을 통해서 분류하는 지적인 작업은 토테미즘을 연상시킨다. 미국의 빅데이터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류를 일컫는 말로 ‘부족tribe’을 사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를 분석하는) 코샨스키의 팀은 블로거를 여러 개의 그룹 또는 ‘부족’으로 분류하기 시작한다. 코샨스키의 머릿속으로부터는 거의 끝없는 부족 분류표가 나온다. 도리토스 먹는 부족, 바이커스-포-오바마Bikers for Obama, 미니쿠퍼 애호가 등 블로거들을 부족으로 분류하고 나면 팀은 부족과 제품과의 상호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블로거를 분석하여 코샨스키는 게토레이족에 운동선수나 피트니스 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많이 마시는 대학.. 2023.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