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966

고통의 시각적 표현 고통의 시각적 표현의 역사를 고찰한 다음 논문에서 필요한 대목 둘을 정리함. Suzannah Biernoff, "Picturing Pain," In Anne Whitehead & Angela Woods (eds.), The Edinburgh Companion to the Critical Medical Humanities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6), 163-185. 1. 은유, 문화, 고통 고통을 “행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은유를 사용하여 고통을 객체화하는 것, 즉 고통을 내리치는 망치, 칼, 벌겋게 달군 부지깽이, 옥죄는 바이스, 전기 쇼크, 동여맨 실, 개미 부대, 물어뜯는 짐승, 악마 무리 등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19세기의 월코트의 즉석 .. 2023. 5. 2.
초기 감리교회의 성만찬 다음 논문에서 두 가지 사항을 메모해둔다. 박해정, “초기 한국 감리교회 성만찬 양상들: 1885-1935”, 54 (2005). 1. 감리교회의 포도 주스 사용 -논문에서는 한국 감리교회가 성만찬에서 “발효시키지 않은 빵과 발효시키지 않은 포도 주스를 사용할 것을 명시”한 미감리교회의 규정을 따랐다고 설명하였다.(305) -당시 미국의 감리교 규정인 “The doctrines and discipline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을 찾아보니 “발효하지 않은 와인”(unfermented wine)의 사용을 언급하고 있다. 발효하지 않은 와인은 포도 주스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런 것 같다. 원래 주스가 꼭 무알콜음료인 것은 아니었지만, 19세기 중반 감리교 목사 웰치스(T.. 2023. 5. 2.
성인전, 성유골 성인전은 보편적 진리를 예증하기 위해 특수한 사실을 희생하여 쓰여진 글. 성인전의 내용이 오늘날 ‘역사적 사실’이라고 간주되는 것에 근접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중세 성인전 작가가 성인 전기를 집필한 목적은 성인의 인격이나 개성에 관한 모든 것을 독자에게 말해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모든 시대 모든 성인에게 공통되는 성스러움의 보편적인 특징을 어떻게 보여주는가를 예증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예증이 성인의 생애와 죽음의 독특한 점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시되었기 때문에 성인의 보편적 특징을 예증하는 본보기와 일화들은 특정 성인의 생애에서 반드시 따올 필요가 없다.……성인전은 특정 사실보다 본원적 진리를 우선시하는 성인의 정형화된 세계관, 즉 다른 성인전에서 조금씩 따온 ‘상.. 2023. 5. 2.
헌의 종교론 박규태, (아카넷, 2015).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 고이즈미 야쿠모)는 생애 자체로 이목을 끄는 인물이다. 일본에 애정을 가진 미국인으로 끝내는 일본에 동화되어 일본 가정을 꾸리고 일본인으로 죽은 인물, 일본 문화의 전반을 뛰어난 영어 문장으로 전달한 저술가, 그래서 일본인으로부터 “어떤 일본인보다도 일본을 더 잘 이해한 예술가”라는 찬사를 들었던 인물. 여기에 박규태 선생은 그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 저술한 방대한 글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종교’ 이해임을 보여줌으로써 매력을 한층 높여 놓았다. 중요한 인용과 통찰로 가득한 책에서 몇몇 대목만 옮겨 놓는다. “스피리추얼리즘(심령술), 범신론, 진화론, 휴머니즘, 낭만주의가 뒤범벅된 복합적인 세계관을 가졌던 헌”(134) 라프카.. 2023. 5. 2.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종교적 발언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주술적 치료를 거부하고 합리적 의학을 제창하였지만, 그들에게 현대 과학의 태도를 지나치게 뒤집어씌우면 오해가 생기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합리성을 추구하였지만 반종교적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내세운 것은 새로운 종교적 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래는 전집에 나온 인상적인 내용으로, 다음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반덕진, (휴머니스트, 2005).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시작은 이렇다. 그들이 신을 거명한 것은 면피용이거나 관습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진심이 담겼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다. “나는 아폴론 신, 아스클레피오스,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 파나케이아, 그리고 모든 남신과 여신을 두고 그들을 나의 증인으.. 2023. 5. 2.
종교적/세속적 물질 경험 현대인과 종교적 인간의 물질 경험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엘리아데는 재치 있게 ‘communion’(교감/성만찬)을 사용한다. 현대인들은 물질을 다루면서 성스러움을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 기껏해야 미적인 경험을 얻는 정도이다. 그는 ‘자연 현상’으로만 물질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시의 종교 체험과 현대의 ‘자연 현상’ 경험을 갈라놓는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빵과 포도주라는 성만찬의 요소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종류의 ‘물질’로 확장되는 교감(communion)을 상상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미르체아 엘리아데, , 이재실 옮김(문학동네, 1999), 146-147, 번역 수정) 엘리아데의 패기 넘치는 지적. 그는 현대인과 종교인의 단절을 강조하는 입장인데, 이 부분에서는 살짝 (변형된) 연속성을 주장한다.. 2023. 5. 2.
저승길 전통적인 무교의 사후세계에서 재료를 발굴하고 현대화시켜 만든 웹툰 , 웹툰의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취합하고 판타지 장르의 영화적 비주얼과 관습으로 재가공한 영화 . 결과적으로 영화를 통해 전통적인 사후세계를 알아보기 힘든 꼴이 되어버려 (나의 유일한 관심인) 교육적 가치는 영 없게 되어버렸다. 오늘 읽은 책에서 영화의 배경이 된 원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두 대목을 메모해 놓는다. 1. 진오기굿의 뜬대왕거리에 등장하는 시왕가망, 중디가망, 말명 영화에서는 저승사자의 역할이 무한히 확장되었지만, 원래 저승사자는 망자를 저승길 초입까지 데려오는 제한된 역할을 하고, 저승길 인도는 다른 신격의 역할이다. 다소 불분명한 점도 있지만, 이들이 저승길 인도를 맡은 이들이다. (1)시왕가망: 망자가 저승으로.. 2023. 5. 2.
새로운 죽음 전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해석의 전권을 위임하는 일은 당연했다. 중세에는 이러한 죽음의 예술(ars moriendi)을 담당하는 주체가 영적 대리인, 즉 목사나 신부였으며, 현대에는 의사가 전권을 위임받아 ‘백의白衣를 두른 반신半信’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추세이다.……성직자들이 죽음의 순간이 도래했다고 확신하였을 때 그 사람에게 영원한 안식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성스러운 ‘마지막 향유’를 이마에 떨어뜨리는 행위는 사망 직전 단 한 번 이루어졌고, 이는 수백년 간 절대불변의 임종 예식 절차로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오늘날 천주교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마지막 향유’는 더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의사가 가지는 전지적 후견자로서의 태도는 특히 임종과 관련해서 볼 때 근본적.. 2023. 5. 2.
조선 사찰과 기생 한 일본인이 1932에 쓴 조선 기생관광에 대한 책에서 사찰 이야기가 나온다. 사찰이 유흥의 장소로 사용된 것은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일인데, 일제강점기에는 기생 관광과 관련된 곳들도 있었던 것 같다. 통상 기생과는 세 곳에서 놀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조선의 사찰이다. 불사와 주색은 꽤 인연이 먼 구색이나 사실이므로 잘잘못을 가릴 필요가 없다. “산 있고 절 있고 꽃 있고 한국 기생 나오니 우토”라는 시구가 있다. …… 경성 부근에는 왕십리나 청량리 방면에 몇몇 사원과 암자가 있으며 또 한강의 남쪽 강변에서 산으로 들어간 곳에도 온천 숙박시설과 연락을 취하며 손님을 맞는 절이 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청량리로 이어진 간선 도로에서 좌측으로 들어간 〇〇사일 것이다. 절을 중심으로.. 2023. 5. 2.
슈바이처의 선교 경험 슈바이처의 선교 회고록에서 인상 깊은 몇 구절을 발췌. 원서를 확인할 수 없어 대부분 번역서를 따름. 2016년 출판된 책이지만 사실상 1976년 번역이어서 옛 어투가 정겹다. ‘토인’(土人)이 ‘native’의 번역인 것은 이번에 새삼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다. ‘자연아’(自然兒)는 무엇을 번역한 것인지 모르겠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16). 1. 주술의(呪術醫)로 불린 슈바이처 토인들 사이에서 나의 이름은 ‘오강가’라 불린다. 갈로아 말로 ‘주술사’라는 뜻이다. 흑인의 의술자는 모두 동시에 주술사가 되므로, 의사에 해당하는 다른 말이 없는 것이다. 나의 환자들은 병을 고치는 자는 또한 병을 멀리서 일으키는 힘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좋은 사람이.. 2023. 5. 1.
회복 의례의 부재 회복한 사람에겐 의례를 치를 자격이 있다. 여러 원시 부족에게는 재진입 의례가 있었다. 낙인이 찍힌 사람을 정화하여 다시 사회로 받아들일 때 치르는 의례다. 이 의례는 부활을 뜻한다. 의례 후에 삶은 새로이 시작된다. 내가 겪은 두 번의 심각한 질병은 병원에서 받은 검사나 처치로 마무리되었고, 이런 결말은 의례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대사제라고 할 수 있는 의사들은 한낱 의료 기술자로만 남기를 택했다. 자신들이 개입함으로써 몸의 상징적인 가치가 변하지만 의사들은 이런 자기 힘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하여 환자나 의사 모두 질병에서 영적인 차원의 경험을 놓친다. 의례에 뒤따르는 명료한 자기 인식을 의학의 세계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리하여 아팠던 사람이 다시 일상의 삶으로 재.. 2023. 5. 1.
더글러스, 의례와 경험 "의례는 틀을 제공함으로써 주의를 집중시킨다. 의례는 기억을 되살리고 연관된 과거를 현재와 연결시킨다. 의례는 이 모든 것을 통해 지각을 돕는다. 그러므로 의례가 우리가 경험한 바를 더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돕는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의례는 깡통과 상자를 개봉하기 위한 언어적 지시를 도식화한 도움 그림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만약 의례가 단지 일종의 이미 알려진 것의 감각적 지도나 도해라면 그것은 언제나 경험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의례는 이러한 이차적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의례는 경험을 형성하는 데 선행할 수 있다. 의례는 그것이 없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지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의례는 단순히 경험을 외적인 것으로 만들거나 대낮으로 끌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 2023. 5. 1.
자살테러와 희생 최근에 번역된 책에서 탈랄 아사드는 이슬람 관련 자살테러를 논하는 종교학자, 구체적으로 자살테러에 ‘희생’을 적용하는 이반 스트렌스키의 설명에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이슬람 전통에서 짐승의 도축을 수반하는 희생제의(다비하)를 행하는 경우는, 신의 명령에 응할 때, 신에게 감사를 표할 때, 특정한 잘못을 뉘우칠 때, 이렇게 세 가지 경우다. 이 중에 자살테러자에 해당되는 것은 없다. 희생제의를 통해 뭔가가 ‘성스러워진다’라는 스트렌스키의 생각은 보기보다 막연하다.……희생제의를 통해 ‘성스러워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희생제물을 받는 신, 희생제물을 바치는 인간, 희생제물, 셋 다 성스러워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희생제의가 희생제물을 바치는 사람을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탈랄 아사드, (창.. 2023. 5. 1.
침묵하는 하느님에 대한 냉소, 하지만 그를 버리지 않음 며칠 전 작고하신 엘리 위젤의 에서 그의 신학적인 언급들을 옮겨놓는다. 나는 이 소설이 ‘고통을 통해 신과 만나는’ 친교의 신정론의 사례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읽어보니 다른 맥락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대에 매달려 있는 하느님”은 그 분이 인간의 고통 한 가운데 계신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이러한 고통의 순간에 침묵하시는 그 분에 대한 냉소에 더 가까운 표현이었다. 이 소설은 15세 소년의 아우슈비츠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신과의 역설적인 조우라는 고차원적인 신학보다는, 이런 절대자라면 분연히 맞설 수도 있다는 치기가 더 느껴지는 글이다. 그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쪽을 택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그는 여전히 유대 전통 안에서 사유하였고 그렇기에 하느님에게 화낼 여.. 2023. 5. 1.
메모, "무당, 여성, 신령들" 로렐 켄달, , 김성례&김동규 옮김 (일조각, 2016). 1970년대 한국 무교의 흥미로운 모습들 중에서 몇 개만 옮겨 놓는다. 1. 펌프와 기우제 가뭄이 들었을 때는 각 가정에서 돈과 곡식을 추렴해 만신을 고용하고 도당 나무 옆에 있는 용왕의 우물가에서 굿을 했다.……1977년 여름 가뭄이 찾아왔을 때 노인들은 현재 마을에 펌프 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굿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94) 2. 마을 주민들의 열광적인 ‘미신 활동’은 새마을운동의 지도자들과 그 지역 교회 목사들에게는 끊임없는 불만거리이다.……이곳에서 텔레비전 세트는 나무 동법을 옮겨와서 축귀의례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휴대용 녹음기는 무당이 긴 무가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105) 3. 논문 준비의 대가 향로 .. 2023.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