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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민주주의의 제3의 물결과 기독교

by 방가房家 2023. 4. 19.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새뮤엘 헌팅턴의 책 중에 "제3의 물결: 20세기 후반의 민주주의화"이라는 책이 있다.(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았다.) 토플러 책과는 다른 책으로, 20세기 후반, 한국을 포함해서 남미, 아시아, 남부 유럽 등의 민주화 과정을 제3의 물결로 묶어 다루고 있다.
꽤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 중간에 종교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논하는 대목이 있다.
헌팅턴의 주장은 선명하기 이를 데 없다. "기독교 없는 곳에 민주주의 없다!"
헌팅턴은 숫자를 통해 논의를 펼친다. 이 기간 중 민주주의화 된 곳 몇 나라. 그 중에서 기독교 국가 몇 개. 이런 식이다. 헌팅턴의 똘아이 기질 잘 드러나는 논법이지만, 그 논법은 상식에 아주 부합하는 것이라 격파하기에 좀 시간과 노력이 든다. (헌팅턴의 기본 주장을 논박하는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므로 넘어가자. 이에 대해서는 Jose Casanova의 논문을 참고할 만하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대목은,
헌팅턴의 민주주의-기독교 관계를 논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크게 두 논지를 지닌다.

1. 개신교의 확장과 민주주의
2. 가톨릭의 변신과 민주주의

1번에서 한국의 경우가 (유일한 사례로) 인용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기(20세기 후반) 기독교(개신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곳은 어디인가? 한국만한 곳이 있는가? 한국을 봐라 한국은 이 시기에 민주주의가 진행되었다.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
2번에서는 여러 국가가 인용된다. 1960년, 교황청은 인권과 관련된 주목할만한 교서를 발표한다. 이거 정말 획기적인 변신이었다. 그 이전에 보수적이었고 권위주의 정권과의 타협(예를 들어 뭇솔리니와의 관계)도 일삼던 가톨릭 교회가 이제 진보적인 메시지를 전파하며 민주주의의 촉매제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폴란드, 스페인, 필리핀, 브라질 등이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가톨릭의 역할에 대한 헌팅턴의 지적은 적확하다. 다만 한국에 대한 분석은 틀렸다고 생각된다. 한국의 경우 기독교가 주동은 아니더라도 민주주의에 도움을 준 것은 맞다. 그런데 그 도움은 주로 개신교가 아니라 가톨릭으로부터 온 것이다.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보수적이거나 군사정권에 침묵하는 입장이었다. 그들의 강한 반공 정서는 냉전적 통치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NCC를 거론하며 개신교회의 노력을 이야기할 것이다. 맞다, 그 분들의 노력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만 있는 게 아니라 문익환 목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개신교회 내에서 소수파였고, 일반 교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했다. 교인들에게 미치는 파급력에 있어서 김 추기경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헌팅턴은 분명 한국 가톨릭의 숫자(7% 미만)때문에 그 역할을 과소평가 하였다. 그는 그저 한국을 개신교 국가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치에 관련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의 민주주의 사례는 헌팅턴의 논지에서 1번이 아니라 2번에 포함되어야 한다. 개신교 교세 확장이 아니라 가톨릭의 변신이 한국의 민주주의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이다. (카사노바의 논문에서는 그 점이 바로 잡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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