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스(Stephanos)라는 그리스식 이름을 가진 한 폴란드인이 1700년대 말 (지금의 남아공에 있는) 케이프 타운에 도착하였다. 그는 원래 용병으로 그 곳에 온 것이었는데, 용병 일이 끝나고 나서는 한 가게에 자리를 구했다. 그는 가게에서 위조 지폐 만드는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위조 사실이 적발되고, 그는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녹슨 못으로 티크 나무로 된 벽을 갉아내고, 나무 부스러기는 자기가 먹고 빈자리에는 빵을 채워넣는 방법으로 감옥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스테파노스는 북쪽으로 가,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 Society)의 새 선교 본부로 피신한다. 선교사들은 스테파노스가 자기들을 죽을까봐 겁이 나 그를 쫓아냈지만, 기독교인다운 친절로 성경, 고기, 화약을 주어 보냈다. (후에 선교사들은 성경 준 것을 후회하게 된다.)
스테파노스는 케이프 타운 북쪽 호텐톳인 사회에 정착한다. 그는 미모사 나무로 사원을 짓는다. 동물 희생을 위한 제단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가축 중에서 가중 좋은 것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믿게 하였다. 가끔은 홍수를 막기 위한 특별 희생을 드리기도 하였다. 희생 제물의 일부는 태우고, 나머지 부분은 자기가 챙겼다. 젊은 여인들이 사원에 참배하였고, 그의 영향력과 힘은 커져갔다. 매일 아침, 스테파노스는 혼자 산에 올라갔다. 사람들은 스테파노스가 산 정상에서 연기에 휩싸여 하늘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것이 그의 초월적 권위의 근원이라고 생각되었다. 실상 이것은 스테파노스가 모세의 시나이산 장면을 흉내낸 것이었다. 가진 화약으로 마른 풀을 태워 연기를 내면서, 실상 그가 한 것은 유럽인이 그를 잡으러 오지 않나 산 위에서 주변을 관찰한 것이었다.
스테파노스의 “거짓” 종교가 “진정한” 종교 기독교보다 인기를 얻자 선교사들은 열받아서 당국에 신고한다. 스테파노스는 자기 제단과 신도들을 버리고 북쪽으로 다시 도주한다. 한 농부에게 발각되어 사로잡히지만, 투항하는 척하다가 그를 죽이고 다시 더 북쪽으로 도망한다. 오렌지 강 유역에서 그는 “아리콰”라고 불리는 악명 높은 아프리카 무장강도와 결합한다. 이후 두 강도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며 잘 살았다는 이야기.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 pp.30-31.)
**
남아프리카 선교사 첫머리에 등장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이다.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저자 치데스터가 이 이야기를 제시하는 맥락도 눈여겨 보아야한다. 치데스터는 이 이야기를 조지 스미스라는 선교사의 사례와 대조하고 있다. 스미스 선교사는 1737년부터 1744년까지 활동한, 이 지역 선교역사에서 선구자로 기려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호텐톳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 사람은 “신종교를 갖고 들어왔던 어느 독일인”으로 남아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마구 부려먹고, 불법적으로 주민들의 가축을 빼앗아 자기 배를 불렸다고 한다. 불법 행위 때문에 결국은 추방된 것으로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유럽인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는 사기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종교이다. 그러나 호텐톳 사람들에게는 반대였다. 기독교 선교사에게는 종교를 사칭한 강탈의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은 반면에, 스테파노스의 종교는 희생, 사원, 홍수로부터의 보호 등 전통 종교의 요소들을 반영하면서도 새로운 의미를 제시한 종교로 기억되었다. “종교임”과 “종교 아님”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다. 유럽의 관점에서 규정한 것만 통용되어야 할 정당성은 없다.
남아프리카 선교사 첫머리에 등장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이다.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저자 치데스터가 이 이야기를 제시하는 맥락도 눈여겨 보아야한다. 치데스터는 이 이야기를 조지 스미스라는 선교사의 사례와 대조하고 있다. 스미스 선교사는 1737년부터 1744년까지 활동한, 이 지역 선교역사에서 선구자로 기려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호텐톳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 사람은 “신종교를 갖고 들어왔던 어느 독일인”으로 남아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마구 부려먹고, 불법적으로 주민들의 가축을 빼앗아 자기 배를 불렸다고 한다. 불법 행위 때문에 결국은 추방된 것으로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유럽인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는 사기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종교이다. 그러나 호텐톳 사람들에게는 반대였다. 기독교 선교사에게는 종교를 사칭한 강탈의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은 반면에, 스테파노스의 종교는 희생, 사원, 홍수로부터의 보호 등 전통 종교의 요소들을 반영하면서도 새로운 의미를 제시한 종교로 기억되었다. “종교임”과 “종교 아님”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다. 유럽의 관점에서 규정한 것만 통용되어야 할 정당성은 없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