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배움/얻어배우는 것

중국 육조시대의 사후세계 이야기

by 방가房家 2023. 4. 27.

차은정 선생님의 발표를 통해 중국 육조시대의 지괴소설(志怪小說) 중 한 편을 구경하게 됨. 소개받은 이야기는 <<유명록>>에 실린 글로, 죽었다가 열흘 있다 다시 살아난 조태(趙泰)의 이야기이다. 그는 죽어있던 동안 그가 구경한 사후세계의 모습을 상세히 전한다.
처음에 그는 병졸들에게 끌려가서 대기하다가 명부에 이름이 적힌 것을 확인한 후 생전에 했던 행위의 선악에 대해 심문을 받는다. 그는 관리가 되어 지옥을 순찰하게 된다. 모래를 나르는 지옥과 불지옥을 다니다 부모와 형제를 만나기도 한다. 그는 부처님이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제도하는 ‘개광대사’라는 공간을 본 후, 지옥의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다른 업보를 받는 ‘수변형성’이라는 공간을 구경한다. 사후세계의 심판이라는 관념과 윤회설이 어떻게 결합되어 설명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선악의 행실에 따라 몸을 변형하는 길을 각자 지정받았는데……살인자는 마땅히 하루살이가 되어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을 것이며 만약에 사람이 되더라도 언제나 단명할 것이라 했고, 도둑질을 한 자는 돼지나 양이 되어서 몸을 도살당하고 살은 사람들에게 바쳐질 것이라고 했다. 또한 방탕했던 자는 고니와 집오리가 되어나 뱀이 될 것이며, 말을 함부로 했던 자는 올빼미나 부엉이가 되어서 그 악성을 듣는 사람마다 모두 죽으라고 저주하 것이라 했으며, 빚을 갚지 않은 자는 나귀, 소, 말, 물고기, 자라 등이 되리라고 했다.(317-18)

가장 중요한 대목은 마지막에 주관(아마 관리를 가리키는 단어인 것 같다)과 나누는 대화일 것이다.

조태가 “인생은 무엇을 낙으로 삼습니까?”라고 묻자 주관은 “오직 불제자를 받들고 정진하며, 계율을 어기지 않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을 뿐이네”라고 했다. 주태가 또다시 “부처님을 섬기지 않았을 때 저지른 죄과가 이미 산처럼 쌓였는데 지금 불법을 받들면 그것이 없어지는지요?”라고 묻자 “모두 없어진다네”라고 주관이 대답했다.
유의경, 장정해 옮김, <<유명록>>(살림, 2000), 318.

이 대화 이후 주관은 책을 다시 보고 조태의 수명이 삼십 년이 더 남았는데 잘못 데려온 것이라고 하면서 그를 돌려보낸다. 돌아온 주태는 “부처님을 섬기고 조부와 아우를 위해 번기와 일산을 내걸고 <<법화경>>을 암송하면서 복을 빌었다.”
이 이야기에서 고대 중국인이 사후세계를 상상하는 방식을 구경할 수 있었다. 관료체계로 사후세계를 상상한 것이 두드러지며, 그 상상력이 불교와 만나는 모습도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내 흥미를 끌었던 점은 이 이야기가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에서 읽었던 이야기들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서도 죽었다 깨어나 그간 구경한 사후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야기 양식이 유행했다. 그 사후 이야기들이 축적되고 그것이 신학자들의 논의와 상호 반응해서 연옥이라는 교리의 탄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그 책의 골자였다고 기억한다. 기독교의 연옥이나 불교의 사후세계나 기존의 교리 체계에서 그리 명확하지 않았던 부분들인데,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민중적 상상력이 집약되고 그 결과 사후세계에 대한 교리로 발달되는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게다가 현세 사람들이 <<법화경>> 암송을 통해 지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관념은 연도(煉禱) 기도를 통해 연옥에서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다는 관념과 어찌나 닮았는지. 엄밀한 부분은 제대로 검토해보아야겠으나, 민중적 상상력이 사후의 상상세계를 형성하는 양상은 불교의 지옥 관념에 기여한 조태나 기독교 연옥 관념에 기여한 유럽의 조태들에서나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