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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겐테가 본 한국종교(1)

by 방가房家 2023. 4. 27.

독일 기자 지그프리트 겐테(Siegfried Genthe)는 1901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였고, 그가 취재한 기록은 1901년 10월~1902년 11월에 <쾰른 신문>에 연재되었다. 이 내용이 그의 사후에 책으로 발간된 것은 1905년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다음 책으로 매우 깔끔하게 번역되어 있다.
지그프리트 겐테, 권영경 옮김,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책과함께, 2007).

짧은 기간 한국에 있었지만 그의 관찰력은 상당히 날카롭다고 생각된다. 사실 종교만큼 날카로운 관찰의 힘이 무뎌지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사유의 습관의 힘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영역이기에, 이전 관찰자들의 기록을 답습하지 않기가 힘든 게 종교에 대한 이야기이다. 겐테의 경우에도 이전 관찰자들과 동일한 관찰 대상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그 특유의 날카로운 지적들이 등장한다.

다음은 장승에 대한 묘사이다. 선교사들이 'devil post'라고 부른 장승은 이교도적인 종교의 퇴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품목이다. (예를 들어 오페르트 폴레오의 글을 볼 것.) 하지만 겐테는 장승 이름이 한문으로 새겨진 것을 보고 한자문화와 토착 신앙의 결합을 지적한다.

길 양쪽에는 원시민족이 사는 이교도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우상(장승)이 서 있었다. 나무로 조각된 이 우상은 사람 키보다 훨씬 큰 인물 형상으로, 사납게 툭 불거져 나온 눈과 잔인하게 드러난 이빨 때문에 신의 흉상을 닮았다. 전체적으로 색상이 화려하고 머리와 턱, 입술은 비정상적으로 길게 확대해 낡은 말갈기로 장식해놓았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우상과는 달리 형상 아랫부분에 한자 문양이 크고 깊게 새겨져 있었다. 나쁜 악귀를 쫓아내는 주문이 담긴 오래된 민간 신앙과 고대 문화민족의 신성한 문구가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었다. 문구를 대략 살펴보면, ‘천하대’(天下大)라는 문자는 ‘하늘 아래 위대한’이란 의미다.(109)

성황당에 대한 묘사도 그저 이교 신앙에 대한 경멸, 신앙대상에 대한 한국인의 두려움을 강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바친 제물의 ‘소박함’을 발견하고 그 가격을 상상하는 재치를 보여준다.

순박한 자연인들은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대기에 이런 악령들이 떠돈다고 믿는다. 사람의 손이 닿는 나뭇가지에는 온갖 종류의 천 조각이나 종잇조각, 그와 유사한 잡동사니들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각양각색으로 걸려 있었다. 미신을 믿는 나그네가 낡은 짚신을 신성한 제물로 바치기도 하고, 소박한 신단의 나뭇가지에 엄숙한 축성물을 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두려워하는 귀신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귀신을 달래는 선물이라고 해야 별 가치도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짚신 한 켤레은 여기서 8원인데, 2500원은 1달러에 달하며 3분의 2페니히가 된다. 그렇다면 낣은 짚신 한 컬레는 도대체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짐작컨대 신에게 바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109-110)

그는 종교에 관해서 선교사들의 문헌들을 참조하되 기독교적인 판단을 하지는 않으려는 자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달레의 책을 소개하면서도 실제 관찰한 것을 토대로 그 책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든지, 가톨릭 선교사의 안일한 관찰을 비판하면서 ‘조선인은 불결하다’는 서양인들의 일반적인 견해에 일침을 가하는 대목은 관찰자로서의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294-97) 다음은 금강산을 방문할 때의 한 대목인데, 선교사와는 다른 판단을 내리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비숍 부인과 함께 이곳[금강산 장안사]을 방문했던 미국 선교사가 예전에 서울에서 발행된 잡지에 장안사에서 관찰하고 경험한 내용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글에 의하면, 절 입구를 넘을 때 단테가 지옥문에 대해 언급한 ‘들어가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리라!’는 문구가 떠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교도 지역에서 포교하는 대담한 선교사가 두려워해야할 부도덕한 장소라기보다는, 오히려 낙원에 어울릴 듯한 환영의 장소라고 생각이 든다.(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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