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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크루소의 종교

by 방가房家 2023. 4. 27.

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1719년에 출판되었다. 맥그레인은 이 소설에 나타난 타자와의 만남의 양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크루소의 경우에 그와 타자 사이에 가로놓인 것은 19세기 진화론적 인류학의 경우처럼 시간이 아니라 종교이다. 역사적 시간이 아니라 지리적 종교가, 직선적 시간이 아니라 공간적 종교가 가로놓인 것이다. 크루소의 외딴 섬은 기독교적인 지리 내에 위치한다. 지구 표면은 무엇보다도 기독교적 관심의 모눈이라는 위도와 경도 아래 존재한다.……
크루소가 보기에 ‘야만인’들은 벌거벗었고 자신은 옷을 입었다. 그들은 벌거벗었고 그는 총으로 무장했다. 그들은 벌거벗었고 그는 영혼에 기독교로 무장하였다. 타자는 원시인(primitive)이 아니라 야만인(savage)이다. 기독교적인, 종교적인 인식 내에서 타자가 출현하는 것이다.……크루소에게 있어 야만인은 19세기처럼 역사의 시간에 근본적인 준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부재와 그에 따라 금수, 악마,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간 본성의 바닥상태에 근본적인 준거를 두는 것이다.[Bernard McGrane, <<Beyond Anthropology: Society and the Other>> (New York: Columbia Univ Press, 1989), 51.]

19세기와 18세기의 타자 인식을 대조하면서, 18세기에 타자와 유럽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의 준거는 종교(기독교)의 유무라고 지적한 저자의 분석이 날카롭다. 18세기 유럽 독자들이 <<로빈슨 크루소>>에서 읽어낸 것도 바로 그러한 인식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수용의 자세가 1668년에 출판되어 18세기에는 다양한 유럽언어로 번역되어 읽혔던 <하멜 표류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관련된 내용은 하멜의 한국 종교 서술 참조) 이것은 카베사 데 베카에 대한 유럽인들의 반응과도 통하는 것이리라. (카베사 데 베카 읽기)
<<로빈슨 크루소>>도 제대로 읽어보고 <<김씨 표류기>>도 보면, <<하멜 표류기>>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련만 요즘은 그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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