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러의 잔존물survival 개념이 한국에서도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읽은 된 선교사 헐버트의 1900년 글에서 특이한 주장을 만났다. 고유 신앙과 불교의 결합은 이해할 만한데, 불교의 외피 아래 흐르는 한국 고유 신앙의 정신을 네 한국어 표현으로 포착한 것은 일단 기발하다.
신비주의, 운명론, 염세주의, 정적주의라는 네 용어가 사용되었다. 표현은 고상하지만 모두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신비주의가 불가지론과 다를 바 없는 식으로 사용된 것은 개신교 선교사 특유의 편견이리라. 정적주의는 좀 낯선 용어였다. 17세기 몰리노스가 취한 입장을 가리키는 말로, 후의 여러 종파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는 태도이다.(브리태니커 풀이 참조) 이 용어 역시 신학적 욕설로 사용되었다. 검색해보니 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부정적으로 쓰이는지 알려주는 용례이다. “기독교의 역사에 보면 정적주의(quietism)라는 이단이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하시니 우리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한국 고유의 귀신론demonology은 불교와 결합해서, 서로를 분별해내기 힘든 복합적 종교composite religion를 형성하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교의 형식 아래 네 근본적인 흐름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신비주의, 운명론fatalism, 염세주의pessimism, 정적주의quietism이다. 이것들이 한국인의 정서에 내재해 있음은 그들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모르겠소”(I don't know)가 그들의 신비주의이다. “할 수 없소”(It can't be helped)가 그들의 운명론이다. “망하겠소”(going to the dogs)가 그들의 염세주의이다. “놉시다”(Let's knock off work)가 그들의 정적주의이다.[Homer B. Hulbert, "Korean Survivals," <<Transactions of the Korea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1 (1900),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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