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륙에서 스페인 식민지배자들이 원주민들을 상대로 벌인 비인간적 행위를 고발한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신부의 소책자가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북스페인, 2007, 아쉽게도 현재 절판 중)로 번역되어 있다. 자극적인 것에 단련된 현대 독자들에게도 섬뜩한 내용들로 가득한 책이다. 아메리카 각 지역에서 얼마나 죽였고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한 정보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 디테일들은 여기 옮기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 (더 끔찍한 건 책 중간을 읽다가 내가 졸았다는 것. 끔찍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다 지쳐버린 걸까? 잔인함에 무감각해져버린 내 자신에 놀란 순간이었다.)
국내 번역본에서 약간 궁금했던 것은 이 책을 유명하게 해준 도판을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 역자가 사용한 원본에 도판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후대의 판본을 찾아 넣지 않은 것 같다. 도판은 추후에 이 책이 유럽 각지 언어로 번역되어 다시 출판될 때 테오도르 드 브리(Theodore De Bry)라는 삽화가가 그려넣은 것이다. 도판의 예로는 여기를 참고할 것. 도판이 들어간 판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당시 원주민들이 유럽인의 악행에 얼마나 몸서리쳤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하나만 인용한다. 당시 유럽인(더 정확하게는 스페인 사람)을 일컫는 용어는 ‘기독교인’이었다. 원주민에게 기독교인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존재였기 때문에, 천국이 기독교인이 있는 곳이라면 천국에 가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다. 다음 이야기는 쿠바 섬에서 한 족장이 스페인 사람에게 잡혀 죽게 되었을 때의 상황이다.(도판에 묘사된 그 상황이다.)
기둥에 묶여있을 때 그곳에 있던 프란체스코회 사제 한 명이 하느님과 우리의 신앙에 대한 어떤 것이라도 말한다면, 그리고 만약에 그에게 말하는 것으로 믿고자 원한다면 영광과 영원한 휴식이 있는 하늘나라로 갈 것이지만 만약 아니면 영원한 고통과 형벌을 받을 지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고백은 그곳에 있던 사형집행인들이 그에게 부여하는 조금의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는 조금 생각이면 충분할 것이었습니다. 그는 조금 생각을 하더니 그 사제에게 기독교인들도 하늘나라에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제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만 간다고 했죠. 그러자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족장은 그곳에 가길 원치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있는 곳에 가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잔인한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으므로 대신 지옥에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인디아스에 갔던 기독교인들이 얻은 하느님과 우리 신앙에 대한 명성과 영예입니다.
바르똘로메 데 라스 까사스, 최권준 옮김,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북스페인, 2007), 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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