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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벌레966

선교사 언더우드와 게일의 한국 종교 서술 이번에 두 개신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게일의 한국 종교 서술을 정리해 발표한 것이다. 게일의 경우에는 전에 조사한 것을 참고한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새로 구성된 내용이다. 언더우드는 잘 정돈된 연구자라고는 하기 힘들다. 독창적이지 못한 부류의 연구자는 그가 무엇을 읽고 들었는가에 따라서 주장이 확확 바뀌는데, 그런 연구자를 통해 당대의 담론의 흐름을 파악하기는 더 좋은 점이 있다. 언더우드의 관점은 “개신교적인 편견”이라고 요약될 수 있는데, 그의 서술에는 오늘날 한국 개신교인들에게서 발견되는 편견들을 담고 있는 것이 많다. 그 편견들 중에는 언더우드에 의해 형성된 것들도 꽤 있을 것이다. 이번에 언더우드의 를 읽으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의 '신학적인 종교 이론', 특히 자기의 하느님 관념에 꿰.. 2023. 5. 29.
창세기 창조이야기의 여성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의 역사 극단적으로 폭이 넓은 주제를 건드린 글이다. 창세기라는 구약의 일부의 해석이지만 그 해석의 다양성은 기독교, 그리고 유대교 등 서구 유일신교의 주요한 테마가 되었다. 갑작스럽게 준비하게 된 글이었다. 논문의 꼴을 갖출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차라리 이런 것을 연구하겠다는 공부의 계획을 써놓은 글이라고나 할까. 이 글을 큰 줄기삼아 한 권의 책을 써도 좋다고 생각될 정도였는데, 그러니까 창세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담긴 자료들을 충실히 설명하며 소개하는 책도 재미있을 거라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고전어에 대한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창세기 창조이야기의 여성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의 역사 -한국 교인들의 해석과 관련하여 한국에서 개신교가 신문명의 상징이었던 1897년 12월 31일 오후 3.. 2023. 5. 29.
어디에나 있는 그 분 얼굴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모습일까? 신학적인 질문을 던지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예수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상상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흔한 답은 아마 다음 그림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만나왔던 예수님 얼굴이다. 교회나 교회 단체들은 물론이고 기독교인 가정에서, 그리고 각종 기독교 용품이나 서적에 널리 이용되어온 도상이다. 도대체 이 그림은 누가 언제 그린 것일까? 별로 유명한 화가는 아니다. 이 그림은 미국 시카고에서 활동했던 워너 살만(Warner Sallman, 1892-1968)이 1941년 그린 (The Head of Christ)이다. 살만은 20세기 중엽에 활동한 일러스트 제작가로 이 작품이 인기를 끄는 바람에 비슷한 이미지의 작품을 더 만들었다. 이후에 제작된 라든지 .. 2023. 5. 29.
기독교 교육과 좋은 학벌 미국인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자녀를 교육 기관에 보내지 않고 대신 부모가 직접 아이들 교육을 맡아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교육을 홈스쿨링(Homeschooling)이라고 부르는데, ‘가정교육’이라고 번역하면 의미 전달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영어 표현을 그대로 쓰도록 하겠다. 홈스쿨링하는 부모의 대부분은 매우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이다. 그들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은 학교가 너무 세속적인 악으로 가득찬 곳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안전한 가정에서 기독교 교리와 결합된 지식(예를 들어, 노아 홍수 이야기와 지질학을 연결시키는 식의)을 가르친다. 이 운동을 소개하는 한글 웹페이지를 보면 유용한 정보(운동의 역사에 관한)도 포함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운동을 바라보는 “교육학적 .. 2023. 5. 29.
은혜사 책갈피 책갈피가 동이 나면, 나는 기독교 서점을 찾는다. 다 못 읽은 책이 있으면 책갈피를 그대로 꽂아두기 때문에 내게는 책갈피가 소모품 개념에 속한다. 그래서 책갈피를 두둑하게 쌓아두고 있어야 총알 넉넉히 준비해 둔 느낌으로 독서에 임할 수 있다. 내가 선호하는 책갈피는 하나에 백원 정도하는, 플라스틱 코팅으로 만든 것들인데 요즘 문구점에서는 이런 제품을 구하기가 힘들다. 요즘의 고급화된 책갈피들은, 가격 때문에도 살 생각이 안 들지만, 무엇보다도 크기가 마음에 안 든다. 너무 커서, 그리고 재질에 따라서는 너무 무거워서, 꽂아두면 책이 힘들어하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든다. 내가 선호하는 고풍스러운(80년대식의) 책갈피들은 아직 기독교 서점에 가면 많이 살 수 있다. 이번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산 제품은.. 2023. 5. 29.
사도신경 아는 분께 요즘 사도신경에 변화가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진척이 없나보다. 작년에 한기총과 KNCC에서 공동으로 새 번역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각 교단 총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하여 해를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흐지부지 될 모양인갑다. 새 번역 중에 주기도문에 대한 저항이 더 심한 편이다. 요즘 여성신학계에서는 주기도문의 하느님에서 아버지라는 부성(父性)을 제거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개신교회에서는 이것을 철저하게 거부하려고 작정을 했는지, 번역 작업에는 여성 신학자를 한 명도 끼워주지 않더니, 급기야는 원문에 두 번밖에 안 나오는 아버지가 다섯 번 나오도록 하는 유래없이 마초적인 주기도문 번역을 내놓았다. (이 글 참조) 이에 대한 반발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도신경으로 다시 돌아가서.. 2023. 5. 29.
정길당 이야기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정길당이라는 미스테리한 여인이 있었다. 개항한 지 얼마 안 되는 1900년 언저리에 그녀의 행적들은 참 낯설다. 이 특이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다.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그녀 이야기를 좀 정리해 본다. 정길당에 대해서는 이만열의 “한말 러시아 정교의 전파와 그 교폐 문제,” (기독교문사, 1987)가 유일한 연구이지 않을까싶다. 이 논문은 정길당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전후 사정을 당시 문헌을 토대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논문에서 사용된 이상의 자료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더 이상의 연구는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길당(貞吉堂)의 아버지는 1860년대에 러시아에 입국하였다고 한다. 정길당은 러시아에서 태어.. 2023. 5. 29.
허시모 사건 ‘허시모 사건’은 한국 기독교사 중에서 매우 자극적인 사건이었고, 사회적인 물의도 많이 일으킨 사건이다. 허시모(許時模)는 미국인 안식교 선교사 헤이스머(C. A. Haysmer)의 한국이름인데, 기독교사 책에 실린 설명에 따르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25년 여름에 자기 집 과수원에 들어와 사과를 따먹은 그 지방 어린이(12세) 김명섭의 뺨 좌우에, 염산으로 ‘됴적’이라는 글자를 크게 써서 한 시간 동안이나 볕에 말린 후 풀어놓았으니, 이로 인해 됴적이라는 두 글자는 영원토록 그 아이의 뺨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 되었다. 미국 선교사가 어린아이의 얼굴에 해놓은 짓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미제 선교사를 욕하는 북한의 출판물에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가 된다. 모퉁이돌 선교회 웹 게시판에 있.. 2023. 5. 29.
기독교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호감 인터넷 상의 대세는, 기독교(주로 개신교)에 대한 비호감이다. 네티즌을 어떻게 규정할 지, 현실과의 관계는 어떠한 지, 미리 논의해야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겠으나 일단 내가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은 그러하다.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사회 여론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한국의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내는 것은 이것이 인터넷 사용 이후 달라진 정보 유통과 여론 형성 과정에 의해 새로 나타난 추세이며 앞으로의 종교 지형의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1. 십년 전만 해도,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 전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평가받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로 교인들끼리 알고 지나가는 일들이었다. 유명한 목사들이 조찬기도회를 통해 전두.. 2023. 5. 29.
강아지들의 천국 깜찍한 어린이의 질문이 세련된 신학적인 대답을 이끌어낼 때도 있지만(그래, 버지니아야, 산타 클로스는 있단다), 신학의 급소를 때릴 때도 있다. 꽤 오래된 일인데,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어딜 가고 있을 때였다. 특이하게도 버스 기사 아저씨는 기독교 방송을 틀어놓았다. 전형적인 기독교인 목소리의 디제이가 한 어린아이의 편지를 읽어주고 있었다. 대충 내용이 이랬다. “어제 제가 사랑하는 강아지 **가 죽었어요. **는 하늘나라에 갔겠지요? 함께 기도해 주세요...” 이 사연을 읽고 나서 디제이가 멈칫하는 것을 나는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회피하고 지나갔다. “하하... 귀여운 어린이의 사연이죠?” 그리고는 딴 이야기로.... 사실 대답은 “강아지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답니다”이다. .. 2023. 5. 29.
그래, 버지니아야, 산타클로스는 있단다 1897년 (The Sun)지 독자란에 버지니아(Virginia O'Hanlon Douglas)라는 이름의 소녀가 질문을 보낸다. “저는 여덟살이에요. 내 친구들은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해요. 아빠는 ‘썬 신문에 나오는 게 맞는 거야’라고 하고요. 뭐가 맞는 건지 말해주세요. 산타클로스는 있는 건가요?” 이 꼬마 독자에 대한 신문의 답변이 “그래 버지니아야, 산타클로스는 있단다”(Yes, Virginia, There is a Santa Claus)라는 제목으로 엄청나게 유명한 글이 되었다. 프란시스 처치(Francis P. Church)가 쓴 이 글은 매년 사람들이 찾는 글이 되어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신문에 실렸다. (이 신문이 망한 1959년까지) 나중에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지며(1974년, 1991.. 2023. 5. 29.
라디오 신부님, Charles Coughlin 라디오 신부님이라고 하면 다정한 어감이 들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Radio Priest"는 미국의 유명한 대중선동가(demagouge)이자 꼴통 보수 신부 카글린(Charles E. Coughlin)의 별명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의 기간에 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당시 중요한 대중 매체였던 라디오 연설을 통해서 많은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매주 4천만명의 미국인들이 카글린 신부의 설교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가톨릭 교인들만이 아니라 개신교인들 역시 그의 팬이었다. 그의 강연 내용은 주로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때는 193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사회가 극도로 암울하던 시기였다. 카글린 신부는 “사회 정의”를 외치며 불만에 가득찬 대중들의 정서를 자.. 2023. 5. 29.
기독교의 대안적 할로윈, “trunk and treat” 할로윈 데이가 조용히 지나갔다. 작년처럼 싸돌아다니지도 않고 집에서 잠이나 잤다. 할로윈의 가장 대표적인 풍습은 "trick or treat"이다. 아이들이 동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trick or treat”라고 외치며 사탕을 달라고 조르는 풍습이다. 어른들은 사탕과 초콜렛을 준비했다가 주는 것이 상례이다. 아무것도 안 주면 아이들은 집에가 계란을 던진다. 내가 사는 곳이야 인도 학생들이 주로 있는 아파트라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있을 턱이 없지만, 그래도 소심한 나는 마음을 좀 졸였다. 사탕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먹을 것을 요구하는 초식은 “대접해줄래요(treat), 아니면 해코지 당할래요(trick)?”이다. 이것은 밥 달라고 돌아다니던 귀신들의 모습이 남은 흔적이다. 귀신도 .. 2023. 5. 29.
과달루페의 성모 멕시코 테페약 언덕에 나타난 과달루페의 성모(Lady of Guadalupe)는 멕시코 가톨릭을 넘어서 멕시코 자체를 대표하는 종교 상징이다. 과달루페 성모에 대해서 우리말 자료도 다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장황한 설명은 생략할 수 있다. 우선, 어떠한 기적이 일어났는지 가톨릭 교회의 자료를 통해 보자. 성모께서 요한 디에고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은 한 아즈텍인(원명은 쿠아틀라테우악: 독수리 같이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에게 발현하신 것은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지 꼭 10년 후인 1531년의 일이었다. 영세 후 날이 갈수록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던 요한 디에고는 12월 9일, 지금의 멕시코시티 근방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의 미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테페약 산을 넘고 있었다. 그날 따라 이른 새벽.. 2023. 5. 29.
추도 예배, 한국 개신교의 의례 추도 예배는 한국 교회에만 있는 거라고 이야기하면 잘 믿지 않는다. 하기사 교회사 공부하시는 분들께 그 얘기를 했는데 펄쩍 뛰면서 그럴 리가 없다고 할 정도인데, 일반 교인들이 놀라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 의례체계는 관혼상(冠婚喪), 거기까지이다. 천국에 가면 끝이니까. 죽은 조상을 기리는 제(祭)에 해당하는 의례는 서양 교회에는 (가톨릭 교회의 몇몇 의례를 제외하고는, 예를 들어 모든 성인 축일)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나 다니지 않는 사람이나, 추도 예배는 제사에 반대되는 행위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로 이해한다. 둘은 연속선상에 있는 의례이다. 제사가 있던 자리에 추도 예배가 생겨났으며, 제사의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추도 예배가 생겨난 것은, 장.. 2023.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