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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정길당 이야기

by 방가房家 2023. 5. 29.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정길당이라는 미스테리한 여인이 있었다.
개항한 지 얼마 안 되는 1900년 언저리에 그녀의 행적들은 참 낯설다. 이 특이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다.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그녀 이야기를 좀 정리해 본다. 정길당에 대해서는 이만열의 “한말 러시아 정교의 전파와 그 교폐 문제,” <<그리스도교와 겨레문화>>(기독교문사, 1987)가 유일한 연구이지 않을까싶다. 이 논문은 정길당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전후 사정을 당시 문헌을 토대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논문에서 사용된 이상의 자료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더 이상의 연구는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길당(貞吉堂)의 아버지는 1860년대에 러시아에 입국하였다고 한다. 정길당은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고(高) 베라’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국적을 갖는다. 무슨 이유에인지 정길당은 1894년 즈음에 남편 안병태와 함께 입국하여 충청남도 지역에서 활동한다. 정길당은 그리스 정교회, 당시 이름으로는 희랍교(希臘敎) 선교사로 자처하며 사람들을 모았다. 우리나라에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가 정식으로 입국한 것은 1900년인데 그 이전부터 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 양상이 일반적인 선교와는 전혀 달랐다. 우리가 오늘날 갖고 있는 기록은, 정길당 무리의 만행을 정부에 탄원하는 충청도 군수들의 보고들과 유생들의 상소들이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아국(俄國) 여인 정길당(貞吉堂)은 십자기를 세우고 동학 잔당들을 모아 총칼로 무장한 무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그녀는 “(러시아) 황제가 내 몸같이 대접하라”는 칙서를 내렸다고 우기면서, 양반들을 구타하고 재산을 빼앗고 집을 파손하고 무덤을 파헤치는 등의 횡포를 부렸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는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으로 외국인들의 치외법권이 보장되는 때라, 러시아 국적의 정길녀를 지방 관아에서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문제는 곧 중앙 정부와 러시아간의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된다. 정길당은 상경하여 러시아 공사관에서 조사를 받게 되는데, 다른 죄목들은 인정되지 않고 오직 외국인 신분을 알리는 호조를 지참하지 않고 지방을 돌아다닌 잘못만 인정되어 한 달간 공사관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나 러시아로 돌아갔다. 보고된 행패들에 비하면 사건은 턱없이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당시 열강들의 치외법권의 위력이 나타난 사건이었다.
교회사에서 이 사건은 한국 민중들이 기독교를 외세의 종교로 인식한 예로 꼽힌다. 흔히 이야기되는 한국 기독교 선교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이야기할 때 부정적 측면의 사례로 이야기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기독교가 외부에서 온 새로운 종류의 힘의 표상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정길녀와 그들의 무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재산상의 손해를 보고하는 양반 계층의 우는 소리들 뿐이지, 그들 자신의 목소리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단순히 기독교를 잘못 이해한 ‘무뢰배’들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양반들 입장에서만 본다면 동학교도들 역시 단지 무뢰배들에 다름 아니었다. 사실 정길녀가 무죄 방면되다시피 한 것은 러시아의 힘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서일 가능성도 있다.

정길녀는 도대체 정교회에 대해 어떤 신앙을 갖고 있었을까? 러시아 공사관은 그녀가 러시아 정교회와 공식적으로 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지만, 그 사실로만은 그녀가 어떤 신념 체계를 지녔는지를 알 수 없다. 그녀가 한국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은 무엇이며, 이 노서아 여인의 말은 충남 지역 민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그녀 아래 모인 사람들이 동학 잔당들이라는 데서 관심이 더욱 증폭된다. 동학 혁명의 의지가 꺾인 후에, 그야말로 당시 조선 사회에서 바닥에 위치한 이 아웃사이더들은 정길녀에게서 무엇을 찾은 것일까? 그들 집단에서 이 신비한 여인이 얼굴 마담으로 이용된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메시지가 동학 이념과 화학적으로 결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최소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동학과 정교를 기반으로 하는 신종교 운동 집단을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학과 마찬가지로 군사적으로 무장한 종교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기존 양반 계층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믿고 행했는지에 있어서, 그들이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느냐 하는 식의 질문은 실로 부차적인 것이다.
그녀를 둘러싸고 실제로 일어난 일들은 상상으로 채워넣어야 할 영역에 속한다. 새로운 자료가 기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래서 이것은 논문보다는 영화로 적합하다. 쇄국정책이 끝나지 않은 시기에 러시아에 간 정길당의 아버지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도 연해주가 아니라 쌍뜨 뻬쩨르부르그까지 갔다. 쌍뜨 뻬쩨르부르그, 참 먼 곳이다. 연당님과 날라님님이 공부했거나 하고 있는 곳이며, 얼마 전 아드보카트 감독이 도망치듯이 두 명의 축구선수 데리고 간 곳이라 이제야 웬만한 사람들에게 익숙한 지명. 140년 전 그 먼 데 가서 그는 무얼 했으며, 거기서 태어났을 정길당은 어떻게 조선땅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정길당에게 정교회는 무엇이었으며 그녀가 조선 민중에게 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기 이룬 공동체가 가진 꿈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무산된 이후의 삶은 어떠했을까? 러시아에 돌아간 정길당은 무얼 생각하며 살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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