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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기독교세계

은혜사 책갈피

by 방가房家 2023. 5. 29.

책갈피가 동이 나면, 나는 기독교 서점을 찾는다. 다 못 읽은 책이 있으면 책갈피를 그대로 꽂아두기 때문에 내게는 책갈피가 소모품 개념에 속한다. 그래서 책갈피를 두둑하게 쌓아두고 있어야 총알 넉넉히 준비해 둔 느낌으로 독서에 임할 수 있다. 내가 선호하는 책갈피는 하나에 백원 정도하는, 플라스틱 코팅으로 만든 것들인데 요즘 문구점에서는 이런 제품을 구하기가 힘들다. 요즘의 고급화된 책갈피들은, 가격 때문에도 살 생각이 안 들지만, 무엇보다도 크기가 마음에 안 든다. 너무 커서, 그리고 재질에 따라서는 너무 무거워서, 꽂아두면 책이 힘들어하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든다. 내가 선호하는 고풍스러운(80년대식의) 책갈피들은 아직 기독교 서점에 가면 많이 살 수 있다.

이번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산 제품은 은혜사에서 제작한 12개들이 세트이다. 딱 원하는 크기(4.5cm*12cm)다. 이보다 조금만 커도 나는 불편해진다. 내가 전에 쓰던 것은 광일인쇄에서 제작한 것이었는데, 은혜사 것은 처음 써본다. 주문제작 형태로 공급되는 제품이라 다른 일반 서점이나 문구센터에는 납품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내 책장 곳곳에는 성경 문구들이 박혀있다. 그런데도 인쇄된 문구 내용보다는 그 재질과 크기라는 물질적 조건에만 관심이 있는 나는 그 내용을 들여다보았던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강남고속터미널 맞은편에는 반포쇼핑타운이 죽 늘어서 있고, 이 건물들 2층에는 기독교 서점들과 성물 가게들이 죽 입주해 있어서 종로 5가보다도 큰 개신교 상권을 형성했다. 그랬었다. 한국 기독교 백화점, 엠마오 서적, 요단 서적, 반포교문사, 생명의 말씀사 등이 건물마다 하나씩 자리하며 고속터미널을 굽어보는 구도였다. 이 기독교 서점들은 내 고정적인 답사지였다. 집에 오는 길에, 또는 저녁 먹고 산책 나왔다가 신학 서적들도 보고, 옆의 음반 가게나 문구류 파는 곳에서 개신교가 어떻게 물질적인 형태로 구현되는지를 살필수 있는 코스였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반포교문사를 시작으로 이 서점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어제 찾아가보니, 가장 거대 서점인 생명의 말씀사만 남고 다른 곳들은 모두 문을 닫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신교 상업권의 몰락이다.

올해 초 통계청에서 2005년 종교인구 조사를 발표하였다. 이 조사에서 개신교 인구는 860만(18.3%)으로, 우리나라 주류 종교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나왔다. (이 수치는 500만을 넘기며 70%이상 성장한 천주교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한편, 이 발표 이후 1200만 성도(혹은 1300만 성도)와 같은 구호들은 사라졌다.) 최근 10년 동안 거의 인구가 늘지 않았다는 것은, 젊은층의 개신교 인구 유입이 크지 않다는 점(이 점은 아래의 표에서 잘 나타난다)을 감안해볼 때, 개신교인들의 평균 연령만 올라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추세가 개신교 산업에 큰 제약이 되었으리라. 책, 음반, 팬시 상품 등의 수요층이 되어야 할 젊은 개신교 인구의 감소, 그로 인한 개신교 문화의 위축이 고속터미널 부근 개신교 상권의 축소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추측에 불과한데, 그것은 내가 이들 업체의 사정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신교 인구 변동이라는 큰 흐름보다도 이들 업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요인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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